시커멓게 그은 얼굴의 막냇동생 면회 가는 길인가. 설레는 맘을 휴게소 우동 한 그릇으로 다독이고 38선 넘어 산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강원도 농촌 마을로 접어든다. 군부대며 헌병 검문소 여럿이 반기니 6ㆍ25 때 격전지 ‘펀치볼’을 품은 이곳이 강원도 양구다. 더 들어가 차를 멈춘 곳은 동면 팔랑리.
겉보기에 작은 산간 농촌 마을인 이곳에 3일 동안 연인원 20만명이 다녀간 것이 지난 2009년이다. 향이 근사한 봄나물 곰취를 ‘면회’하기 위해 이 큰 인파가 몰렸다. 곰취는 향이 좋아 고기에 싸먹어도 좋고 여느 봄나물처럼 데쳐 먹어도 맛있어 인기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지금은 가장 성공한 지역 축제로 자리잡았지만 양구 곰취의 시작은 소박했다. 인근 대암산 기슭에서나 채취하던 곰취를 노지 재배하기 시작한 지가 채 30년이 안됐다. 김봉선 위원장을 위시해서 당시 마을 토박이 청년 여남은 명이 의기투합했다. 곰취란 게 남한에서는 양구 대암산이나 인제 방태산 같은, 강원도 일부 군의 큰 산에서만 나는데 그 향이 독특하고 몸에 좋아 재배만 성공하면 상품성이 충분해 보였다.
곰취는 쉽사리 산 아래 정을 주지 않았다. 기후나 토질이 다르니 기르는 족족 죽었다. 화학성 비료를 주다 200평 농사를 다 죽이고 손수 액체 비료도 만들어 뿌려봤지만 안됐다. “앞으로는 친환경이 유행할 것”이라는 예견과 기대 뒤로 시작한 도전은 현실 앞에 무너졌다. 할 수 없이 곰취를 포기했다. 그래도 미련이 남았다. 갖은 노력 끝에 겨우 좀 키워냈다 싶었다. 봄에 분갈이를 하려고 칼과 드라이버로 강제로 잘랐더니 단면에 쇳독이 올라 모두 죽었다. 비닐하우스에 길러 출하 시점을 앞당기되 손으로만 따는 원칙은 지켜야 했다. 어느새 곰취 재배는 면적 대비 매출에서 논농사의 10배에 달하는 주 수익원이 됐다. 토박이 박순덕(50ㆍ여) 씨의 기억이다. 여전히 친환경 무농약 원칙을 지키다 보니 많게는 한 포기에 10마리씩 들러붙는 달팽이들 솎아내는 게 일과가 됐다.
곰취 재배가 자리잡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이걸로는 부족했다. 김봉선 위원장은 안되겠다 싶어 손수 기르던 흑돼지 한 마리를 잡았다. “마을회관 앞에 천막 하나 쳐놓고 쌈 싸먹고 곰취 이용한 음식 시식회도 하고 했죠. 군수나 기관장들도 모셔다놓고.” ‘제1회’ 곰취축제는 이렇게 시작됐다. 2003년의 일이다.
한 해를 건너뛰고 본의 아닌 ‘부활’을 맞게 된 올해 곰취축제는 14일부터 16일까지 예년처럼 팔랑리 팔랑계곡 일원에서 열린다. 팔랑팔랑 바람이 잘 분다고 해서 팔랑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정설은 ‘전설’에 힘이 쏠린다. 조선시대, 함경도에 살던 한 관리가 살기 좋은 곳을 찾아 남하하다 이곳에 닿아 폭포에서 목욕하던, 젖가슴이 네 개인 기이한 미녀와 결혼했다. 네 쌍둥이를 연달아 두 차례 낳아 아들만 여덟(八)을 키워내 모두 벼슬자리(郞)에 내보내니 그 이후로 이곳이 팔랑리(八郞里)라 불리게 됐다.
올해 축제에는 방문객 체험 프로그램을 더 늘리는 등 다양한 행사를 새로 추가했다. 김수진 한류음식문화연구원장의 쿠킹 클래스로 곰취로 만드는 다양한 요리법을 배우고, 대암산 일대에서 예쁘고 큰 곰취를 채취하는 ‘미션! 곰취를 찾아라’에 참가할 수 있다. 곰취 카페테리아에서는 다양한 곰취 요리를 즐길 수 있고, 곰취를 상징하는 어린 반달곰과 토끼도 볼 수 있다. 판매ㆍ전시 행사와 요리 경연대회, 지역 문화 예술단체가 벌이는 콘서트, 양구팔경ㆍ산양 사진전 등도 펼쳐진다.
올해는 날씨가 추워 곰취 수확량이 줄어든 게 다소 걱정이다. 김 위원장은 “외부 판매량을 줄여서라도 축제장을 찾은 이들이 곰취의 진한 향을 풍부하게 맛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지막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했다.
<임희윤 기자 @limisglue> imi@heraldcorp.com
사진=김인수 선임기자/kinsu@(사진제공=곰취축제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