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베니스)=김아미 기자] “전시를 봤다면 백남준이 무척이나 좋아했을 것 같다.”
영국 런던 서펜타인(Serpentine)갤러리 공동 디렉터이자 예술계 파워맨으로 꼽히는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참여작가 문경원(45), 전준호(45) 작가의 영상 설치 작품을 둘러본 후 밝힌 소감이다.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개막식에 많은 관람객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
오는 9일(현지시간) ‘제 56회 베니스비엔날레(전시 총감독 오쿠이 엔위저)’ 개막을 앞두고 전세계 언론과 미술관계자, VIP들에게 전시를 먼저 공개하는 프리뷰 행사가 6일 베니스 아르세날레(Arsenale)와 카스텔로 공원(Giardiniㆍ자르디니)에서 동시에 열렸다.
베니스비엔날레는 29개 국가가 자체적으로 상설 운영하는 국가관 전시(National Participation), 총감독이 직접 큐레이팅하는 국제전(International Exhibitionsㆍ본전시), 그리고 비엔날레 재단의 승인하에 약 2만유로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참가하는 병행전시까지 크게 3개 파트로 나뉘어진다. 한국관은 지난 1995년 처음 국가관에 입성,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한국관 참여작가인 문경원(맨 왼쪽), 전준호(맨 오른쪽), 그리고 한국관 큐레이터 이숙경. 사진=김아미 기자/amigo@heraldcorp.com |
한국관이 공식 개막하기도 전에 세계 미술계 주요 인사들이 잇달아 전시장을 다녀갔다. 한국관에 대한 평가는 ‘백남준이 좋아했을 전시’ 그 이상을 뛰어 넘었다. 찬사가 쏟아졌다.
가장 먼저 한국관을 찾은 홍라희 삼성미술관 관장은 “아름다운 작품”이라는 말로 강렬한 인상을 전했다.
프랑스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의 장 드 르와지(Jean de Loisy) 관장은 “전시관 실내와 실외의 경계를 허물면서 이처럼 영상이라는 미디엄(Medium)의 한계를 뛰어넘은 작품은 처음이다”라고 평가했다.
‘축지법과 비행술’ 영상 스틸 컷. [사진제공=한국문화예술위원회] |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였던 김승덕씨 역시 “역대 한국관 중 가장 좋았다”고 극찬했다.
이 밖에도 미국 라크마(LACMA)미술관 관장, 네델란드 국립미술관인 스테델릭미술관 관장, 그리고 행위예술의 대모로 불리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1991년 터너상 수상자인 인도 출신 세계적인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도 소문을 듣고 전시장을 찾았다.
미술계 인사들이 극찬한 한국관은 외관이 타원형 유리로 만들어진 건축적 한계 때문에 그간 미술 전시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그 한계를 뛰어넘는 것은 물론, 건축물로써의 한국관을 더욱 화려하게 빛냈다.
7개 채널(외부 2개, 내부 5개)로 이루어진 한국관의 영상 설치 작품은 ‘장소 특정적 프로젝트’라는 콘셉트로 제작됐다. 한국관 건축물 그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됐다.
특히 바깥 쪽으로 휘어진 디스플레이를 건물의 타원형 유리벽에 설치해 외부에서도 작품을 볼 수 있게 했다. 한국 중소기업인 ‘베이직테크’에 의뢰해 제작한 디스플레이다.
타이틀은 ‘축지법과 비행술(The Ways of Folding Space & Flying)’이다. 10분 30초짜리 이 영상설치 작품은 알쏭달쏭한 제목만큼이나 많은 암시와 상징들을 담고 있다. 문경원, 전준호 작가의 대표작 ‘뉴스프롬노웨어(카셀도큐멘타ㆍ2012)’에 출연했던 배우 임수정이 이번에도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영상의 배경은 한국관을 실물 크기 모형으로 만들어 재현한 것으로, 남양주 세트장에서 촬영됐다.
온통 하얀색으로 채워진 실험실. 이 폐쇄적인 공간은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고 있다. 여기에 남성도, 여성도 아닌 인류 마지막 생존자가 등장한다. 미래의 신인류인 이 주인공은 과거 인류가 갖고 있던 모든 기억을 내재하고 있는 유일 존재이자 ‘아키비스트(Archivist)’지만, 그저 하루 하루만을 살 뿐, 자신이 누구인지, 어제 있었던 일이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시스템 오작동이 발생한 실험실에서 오류의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하루 동안 다양한 실험을 한다. 그 과정에서 지난 문명의 흔적들을 발견하고, 기억하지 못했던 과거 자신의 모습들을 찾아낸다. 늘 봐 오던, 유리창 바깥의 폭풍우 몰아치는 풍경은 어느 순간 풀과 나무가 무성한 정원으로 바뀐다. 바로 베니스 비엔날레가 열리는 이 곳, 한국관의 바깥 풍경이다. 지금 이 순간, 이 공간,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Realization)이 이뤄지는 순간이다.
올해 베니스비엔날레의 주제인 ‘모든 세계의 미래(All the World’s Futures)’에 걸맞게, 인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미술 언어로 담아냈다. 작품 타이틀로 쓴 ‘축지법과 비행술’은 이러한 시간의 중첩과 전환을 풀어내는 기술적인 장치다.
외형적인 큰 틀은 인류의 이야기이지만, 그 액자 안은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물음으로 채워졌다. 작품 속 주인공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풀기 위해 실험하는 주체이자, 대상자다. 특히 실험실 바깥에서 자꾸만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음을 느끼는 장면은, 그가 현재 실험 당하고 있는 당사자, 즉 실험실의 쥐와 같은 존재임을 암시한다.
한국관 큐레이터인 이숙경(영국 테이트모던 큐레이터)씨는 “작품의 스토리는 타인의 기억을 이식할 수 있다는 과학적 가설에 근거했다”면서 “과학유전학 분야에서 기억이식에 대한 실험이 실제 이루어지고 있으며, 현재 쥐를 대상으로 이와 같은 실험이 끝난 상태”라고 설명했다.
시상식은 9일 토요일이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서 한국관이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터라 올해 미술전은 어느해보다도 한국관 수상 여부에 이목이 집중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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