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소 인증을 받은 자두 [인터넷 캡처] |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지구를 사랑하는 저탄소 과일, 플리스틱 쓰레기와 함께 드려요.”
정부가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친환경 농산물. 저탄소로 지구온난화를 줄일 수 있다는 식품들이다. 일반 과일보다 당연히 더 비싸다.
지구를 아끼고자 큰 맘 먹고 저탄소 과일을 사는 순간, 플라스틱 쓰레기도 같이 살 수밖에 없다. 돈 더 들여 저탄소 과일을 사고, 동시에 수백년 간 썩지 않는 플라스틱 쓰레기도 구매한다.
과포장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친환경 농산물조차 과포장으로 판매된다는 건 더 뼈아픈 현실이다.
환경부는 설 명절을 앞두고 친환경 실천수칙을 발표했다. 성묘 갈 때 다회용 접시 챙기기, 고향 떠나기 전 콘센트 뽑기, 귀성·귀경길 친환경 운전하기, 산불 예방하고 산림 보호하기, 저탄소 인증마크 획득한 농축수산물 구매하기 등이다.
[출처 환경부] |
그 중 낯선 게 하나 있다. 바로 ‘저탄소 인증 마크’다. 저탄소 농축수산물은 우리 몸에도 좋을 뿐 아니라 지구에도 ‘착한’ 식재료다. 잘 알려진 유기농, 무농약, 농산물우수관리제도(GAP) 등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산물 중에서도 탄소배출량을 줄인 농산물(전국 5년 평균치 이하)에 부여된다. 제품에 저탄소 인증마크가 표시돼 있다.
이같은 인증을 받은 농산물은 벼, 보리, 옥수수, 감자 등 곡물을 비롯해 멜론, 파프리카 등 채소에 이르기까지 65가지로 다양하다. 특히 사과, 배, 대추, 밤, 고사리, 취나물 등 설 제사상에 올라가는 식재료도 다수다.
일단 문제는 과포장이다. 실제 일선 판매처에선 상당수 저탄소 인증 농산물들이 플라스틱 트레이에 담겨 판매 중이다. 스티로폼 등으로 꾸며놓은 제품도 상당수다.
저탄소 인증 농산물은 일반 농산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다. 고가 농산물인 탓에 낱개 포장까지 더 신경을 쓰고 판매하는 것. 지구를 아끼고자 저탄소 농산물를 구매하면, 플라스틱·스티로폼 쓰레기 배출로 지구를 헤치는 셈이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의 매대에 농림축산식품부의 저탄소 인증을 받은 쌀이 진열돼 있다. 5kg 기준으로 저탄소 인증 제품이 미인증 제품보다 2000~3000원 더 비싸다. 주소현 기자 |
이는 저탄소 인증제가 유통·수송 등까진 관여하지 않는 데에서 기인한다. 생산 과정의 탄소배출량만 측정해 인증을 부여하니, 이후 유통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이나 쓰레기 배출 등은 반영되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작 저탄소 인증 제품이 플라스틱 등에 과포장돼 소비자로 넘어오고 있다.
정부가 저탄소 인증이 부여된 후 사후 관리하는 항목들은 ▷비인증 농산물과의 혼합여부 ▷인증표시 사항 적정성 여부 등이다. 이후 과포장 여부 등은 관리 대상이 아니다.
이와 관련,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저탄소 농산물이 어떻게 유통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과포장도 문제이지만, 저탄소 농산물 존재 자체를 아는 이들도 많지 않다. 이춘수 순천대 농업경제학과 교수가 수도권·6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30~59세 성인남녀 1000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저탄소 농산물 인증제를 모른다고 답한 비율이 78.8%에 이르렀다.
구매해본 적 없다는 이들도 83.7%였고, 그 이유론 ‘저탄소 인증에 대해 잘 몰라서’란 답변이 72.2%로 압도적이었다. ‘주 구매처에서 판매하지 않거나’(38.6%), ‘상대적으로 비싸서’(14.8%) 순이었다.
[출처 그린피스] |
저탄소 인증이 농산물에 멈춰 있는 것도 한계다. 정작 탄소배출은 농산물보다 축산물이 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탄소배출량을 따지자면 농산물보단 축산물, 수산물이 더 시급하다. 예를 들어, 토마토는 1㎏당 1.4㎏, 쌀은 4.0㎏의 탄소가 배출된다.
소고기는 1㎏에 59.6㎏로 토마토보다 40배 이상 많다. 돼지고기(7.2㎏), 가금류(6.1㎏), 양식 물고기(5.1㎏)들도 농산물을 웃돈다.
축산물 저탄소 인증제는작년 온실가스 감축량을 분석하고 인증 기준을 마련하는 내용의 연구 용역을 시작, 이달 중에나 마무리될 예정이다. 수산물도 도입하겠다는 계획 수립만 나온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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