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이 화끈거린다. 문화체육관광부가 9일 발표한 국립현대미술관 특정감사 결과 때문이다. 주먹구구식 편의주의, 황당한 실수까지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기관에서 벌어진 일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국민소득 3만5000달러 시대 한국 미술의 낮 뜨거운 현주소다.
미술관은 작품 구입의 제안 범위에서 외부 전문가를 대폭 줄이고 내부 권한만 키웠다. 그리고는 전문가 의견을 무시한 채 작품 가격을 자의적으로 수백, 수천만원씩 올리거나 내렸다. 작품 수집 여부를 결정하는 심의위원회나 값을 매기는 가격자문위원회가 객관적 기준도, 운영의 독립성도 의심받는 실정이니 당연한 결과다. 최근 2년간 3000만원 이상 고가 미술품 구매 21건 중 20건이 수의계약으로 이뤄진 것도 이 때문이다. 경매 구입도 마찬가지다. 소수 학예직 직원만 정보를 독점한 채 이뤄졌다. 심지어 작품에 대한 응찰보고서도 없이 낙찰시킨 경우도 16건이나 된다.
사들인 작품을 관리하고 전시하는 과정에서도 허점투성이다. 비디오아트의 세계적 거장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작품 모니터가 고장 난 채 전시됐고 이중섭의 작품 중에는 거꾸로 걸려 관람객을 맞은 것도 있다. 국고 납입해야 할 미술관 내 편의시설 위탁 운영 정산이익 3200만원을 직원 격려금으로 나눠주기도 했다. 지난해 8월 발생한 미술관 유튜브 채널 해킹 사건이나 직원의 외모를 비하한 간부의 갑질 사건을 상급기관인 문체부에 보고도 하지 않았다.
지금 K-컬처는 글로벌한 인기몰이 중이다. K-팝 스타들의 빌보드 차트 진입은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영화는 아카데미상의 벽을 허물었고, 드라마는 에미상 무대를 접수했다. K-콘텐츠가 10대 주력 수출품목에 올라설 날도 머지않았다. 그런데도 한국을 문화강국으로 보는 건 어색하다. 날개 단 듯 나는 건 대중문화 분야뿐이기 때문이다. 순수예술은 걷지도 못하고 바닥을 기는 수준이다. 미술은 특히 더하다.
순수미술의 비상은 좋은 전시를 자주 여는 게 관건이다. 혜안을 갖춘 이들이 뛰어난 작품을 발굴하는 게 전제임은 물론이다. 그래야 시네마 키즈처럼 아트 키즈도 나타난다. 그 역할의 대표 선수가 국립현대미술관이다. 시정 1건, 경고 2건, 주의 6건, 통보 6건, 현지조치 1건 등 16건에 달하는 국립현대미술관 감사 지적 사항들은 사안의 크고 작음, 비리금액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순수미술의 권위와 미래가 고장 난 단초로 받아들여야 한다. 작은 일이라도 근본부터 따지고 철저하게 시정해야 하는 이유다. 미술도 1조원 넘는 시장을 가진 한국 문화의 한 축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