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3대 경매사 역대최대 매출 기록
서울옥션·케이옥션 낙찰률 70% 안팎
국내 개인컬렉션 공개 꺼리는 분위기
최근 한국작가 작품가 급등 반작용도
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의 1874년작 ‘유진 마네(Eugene Manet)’를 들고 있는 소더비 직원들. 조셉 호퉁 경의 컬렉션 중 하나로 12월 런던 경매에 출품됐다. [AP] |
한쪽에선 축하의 샴페인이 터졌다. 그러나 다른 쪽에선 분위기가 싸하다. 글로벌 경매사와 한국 경매사 이야기다. 경제는 이미 글로벌 단일 시장으로 움직이고, 초고가 시장인 미술시장도 마찬가지일텐데 유독 국내와 해외의 온도 차가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
▶글로벌 경매 빅3, 역대 최대 매출 ‘축포’=크리스티, 소더비, 필립스 등 글로벌 빅3 경매사는 올해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크리스티는 84억 달러(한화 약 11조원), 소더비는 80억 달러(10조4000억원), 필립스는 13억 달러(1조7000억원) 등 전대 미문의 실적을 발표했다. 폴 앨런 컬렉션과 같은 이벤트성 경매, 부동산·자동차 등 경매 영역의 확장, MZ(밀레니얼+Z)세대 신규고객 발굴 등이 주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반면 국내 시장은 상반된 분위기다. 지난 20일과 21일 올해 마지막 메이저 경매를 진행한 서울옥션과 케이옥션은 냉랭한 분위기 속에 경매를 마쳤다.
서울옥션은 경매 전 45억원의 높은 시작가로 화제를 모았던 김환기의 푸른 전면점화가 경매 시작 직전 취소됐고, 이우환 150호 크기 다이얼로그도 경매를 시작해보지도 못하고 끝났다. 케이옥션 역시 박수근의 ‘우산을 쓴 노인’(1960)은 시작가인 4억원에 낙찰됐고, 유영국의 ‘워크’는 유찰됐다.
주요 경매사의 낙찰률도 서울옥션은 69%, 케이옥션은 74% 등으로 낮아졌다. 지난 1월만 해도 90% 이상의 낙찰률을 자랑했던 국내 경매시장이 1년도 안돼 분위기가 반전된 것이다.
303.10 캐럿에 달하는 황금색 카나리 다이아몬드. 전 세계 가공 다이아몬드 중 가장 큰 크기를 자랑한다. 뉴욕 소더비 12월 7일 경매에 출품돼 1238만9000달러(약 158억2000만원)에 낙찰됐다. [EPA] |
▶경기불황에 미술시장 조정 불가피, 하지만...=전문가들은 금리인상에 따른 유동성 축소로 미술시장이 조정기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고 본다. 부동산, 주식 등은 물론, MZ컬렉터들의 주요 자산이었던 가상자산 시장까지 축소되면서 미술 시장이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미술 시장이 아무리 초고가 상품을 다루는 시장이라 할지라도 전반적인 시장 흐름을 역행할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글로벌 메이저 경매 3사가 아직도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것은 달아오른 시장이 식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올해 글로벌 미술시장이 성장하긴 했지만, 올해를 정점으로 성장세가 꺾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NFT(대체 불가능 토큰) 연관 미술시장이 올해 가상 자산시장과 맞물려 이미 역성장하고 있고, 해외 경매사 역시 하반기 들어 매출이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어서다.
이를 대비한 해외 경매사들은 전략을 다변화 했고, 그 전략은 주효했다. 크리스티는 폴 앨런과 같은 유명인의 컬렉션 경매만으로 16억2000만 달러(2조1100억원)를 벌어들였다. 소더비는 데이비드 M 컬렉션을 비롯해 솔린저, 조셉 호퉁 컬렉션이 각각 1억 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이와관련 크리스티 지오바나 베르타쫀 20·21세기 부회장은 “향후 수 년간 폴 앨런과 같은 우수한 컬렉션의 세일즈가 이어질 것”이라며 “컬렉터들이 이른바 ‘컬렉팅 사이클’의 후반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2월 케이옥션 메이저 경매에 출품된 김환기의 ‘새와 달’. 낮은 추정가가 22억 이었지만 시작가인 16억원에 팔렸다. 해당 작품은 2014년 11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11억 2000만원에 낙찰된 기록이 있다. 8년 사이 5억원 넘게 올랐지만, 시장이 좋았다면 추가 상승여력을 기대할 수 있는 작품이다. [연합] |
▶한국 경매 “빨리 달아오른 만큼 빨리 식는다”=그렇다면 한국 경매시장은 왜 이렇게 빨리 식은 것일까. 한국 경매시장에선 해외처럼 유명인의 컬렉션을 경매하는 이벤트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개인 컬렉션을 공개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컬렉터들이 수집한 대가들의 작품들을 국내에서는 구경하기가 사실상 어렵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이건희 컬렉션 등 개인 이름을 건 컬렉션은 그 이름값 때문에라도 가치가 더 올라가는데, 국내 컬렉터들은 이처럼 드러나는 것을 꺼려해 이벤트성 진행이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공개된 이건희 컬렉션 외에 개인 컬렉션을 경매에 붙이는 사례가 거의 없었다. 지난 2013년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작품이 경매장에 나온 전두환 컬렉션 정도가 그나마 컬렉터의 이름이 밝혀진 경매였다.
이와 함께 최근 2~3년 새 한국 작가 작품이 급격하게 오른 데 대한 반작용도 있다는 분석이다. 대표적 단색 화가로 꼽히는 이우환의 경우 지난 6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선으로부터’(1978)가 9억원에 낙찰됐지만 1년 반만인 지난 2020년 12월에는 이보다 147% 급등한 6억1000만원에 팔렸다. 김선우, 우국원 작가의 작품도 이 기간 두 배 이상 가격이 뛰었다.
작품가 인상을 견인하던 MZ컬렉터들이 금리인상 이후 경매에 소극적으로 돌아선 것도 가격 조정의 원인으로 꼽힌다. 시작가가 높은 것도 부담이다. 서울 한남동에서 프라이빗 딜링을 하는 A딜러는 “산 가격이 있어 그 아래로는 내놓지 않으려한다. 호가만 있고 거래는 멈춘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한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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