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옥션·K옥션 고객성향 분석
지금 한국미술시장은 이른바 ‘불 장’이다. 메이저 양대 경매사 낙찰률은 90%가 넘고, 매번 최고가 기록이 경신된다. 아트페어는 작품을 내 놓기가 무섭게 팔린다. 예전 같았으면 20% 디스카운트를 해준다고 해도 살까말까 고민했던 수요자들이 이제는 작품을 보지도 않고 웨이팅리스트에 이름을 올린다. 전형적인 공급자 주도 시장이다. 오죽하면 “오늘이 가장 가격이 싼 날”이라는 푸념까지 나온다. 그러나 시장은 여전히 배고프다. 부동산과 주식, 암호화폐 거래로 생겨난 막대한 유동성이 몰려들면서 다운 사이드는 닫혔고, 업 사이드만 열려있는 상황이라서다.
▶한국미술시장 주도하는 X세대=현재 미술시장을 주도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이전에 없던 젊은 신규 컬렉터 층이 대거 유입됐다고 판단하는데, 정말 이들이 누구인지 헤럴드경제가 양대 경매사의 고객정보를 바탕으로 페르소나 분석을 했다. 그 결과는 기존 시장에서 짐작하던 고객상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가방 대신 그림 산다’는 MZ세대(10~20대)보다는 30대 중후반 이상인 X세대(1970년~80년 초반생)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이번 분석 대상은 지난 1년간 새로 가입한 고객들 가운데 실제 미술작품을 구매한 이들로, 가장 작품구매가 두드러졌던 연령대는 40대 였다.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은 서울이며, 국내외 현대미술작가의 작품을 주로 사들였다. 젊은 작가의 원화나 블루칩 작가의 판화가 주요 대상이다. 국내 작가 중에서는 이우환, 김환기, 김창렬의 작품을 가장 선호했다. 가장 많이 구매하는 작품 가격대는 1000만원 내외였지만 최고 구매 금액은 수 억원을 호가했다. 이들은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 경매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윤석 서울옥션 상무는 “경매 프리뷰 전시장을 찾는 고객층을 보면 확실히 이전보다 젊어졌다. 시장이 변화하고 있다는 시그널”이라고 설명했다. 손이천 케이옥션 이사는 “가장 구매를 많이하는 건 40대지만, 30대 고객의 비중이 최근 급격하게 늘었다. 젊은 고객의 유입이 활발해 진 만큼 한국미술시장의 장기적 성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계미술시장도 젊은 컬렉터 ‘파워’=젊은 컬렉터의 약진은 세계적 현상이다. 세계 최대 아트페어인 아트바젤과 글로벌 금융사 UBS가 발간한 보고서 ‘미술시장 2021(The Art Market 2021)’에 따르면, 지난해 가장 활발하게 컬렉션을 한 고액자산가는 밀레니얼(23~38세)세대와 X세대(39~54세)다. 고액자산가 컬렉터 중 52%를 차지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지난해 평균 22만8000달러(2억5700만원)를 미술작품을 사는데 썼고, 이들 중 30%는 100만달러(11억 3000만원) 이상을 지출했다. 바로 윗 세대인 X세대는 컬렉터중 32%를 차지하며, 이들 중 23%가 100만달러 이상 작품을 구매했다. 보고서는 밀레니얼세대의 약진에 대해 기성세대보다 투자적 성향이 강해 적극적으로 구매하며, 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구매가 많아진 것이 영향을 미친것으로 봤다. 실제로 온라인 거래 비중은 2019년 9%에서 2020년 25%까지 3배 가까이 성장했다.
세계미술시장의 컬렉터들과 한국 컬렉터가 정확한 페어링이 일어나진 않더라도, 젊은층이 미술품 구매에 몰리는 것은 사실이다. 시장에서는 풍부해진 유동성을 그 원인으로 꼽고 있다. 한 증권사 PB는 “몇 년 전에는 부동산, 그리고 최근에는 주식과 암호화폐에서 큰 돈을 번 젊은 고객들이 명품을 지나 미술품 투자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최근 1~2년 사이 미술투자교육 프로그램이 큰 인기다. 자산가들이 미술지식도 많이 쌓았고, 유동성도 풍부하니 적극적 투자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이들이 급작스레 두각을 드러낸 이유로는 코로나19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금까지는 해외 아트페어가서 구매하거나 직구하는 등 국내시장에서 드러나지 않았는데, 현재는 이같은 구매방식이 쉽지 않다. 국내 갤러리나 딜러에게 수수료를 지급하더라도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타나면 바로 구매해야하는 상황이다. 또한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자 인테리어용으로도 미술작품이 각광받고 있다.
▶블루칩 작가는 안전자산·세금 메리트도 커=이들이 선호하는 작가는 김환기, 이우환, 박서보, 김창열 등 국내 유명작가들이다. 이른바 ‘블루칩’ 작가로 작품가격이 꾸준히 우상향곡선을 그려 안전자산으로 인식된다. 더구나 절세효과도 미술품 투자의 큰 매력이다.부동산은 살 때 취득세, 보유시엔 재산세를 내야하고 평가가치가 큰 경우엔 종합부동산세 대상이 되기도 한다. 또한 매각시 차익에 대해선 양도소득세를 내야한다. 주식은 매각시 증권거래세가 부과된다. 2023년부터 주식투자 소득이 5000만원을 넘으면 양도소득세(금융투자소득세)도 납부해야한다.
반면, 미술품은 미술품은 양도시에만 세금을 낸다. 기준은 양도차익이 아닌 양도가액이다. 판매금액의 80%까지 경비로 인정해주고, 양도가액이 1억원 미만이거나 10년 넘게 보유했을 경우 90%까지 그 인정비율이 높아진다. 판매금액에서 경비를 뺀 나머지 금액만 세금 대상인데, 세율은 22%다. 양도가액을 기준으로 2.2~4.4%만 세금으로 내는 셈이다. 심지어 양도가액 6000만원 미만은 비과세다. 국내 생존작가라면 가격과 상관없이 비과세다.
한국미술시장의 활황은 당분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글로벌 브랜드 아트페어인 프리즈가 내년 한국시장에 진출하고, 해외 유수갤러리들의 서울 진출이 잇달아 확정되면서 굳이 해외에 가지 않아도 유명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됐다. 미술시장 관계자는 “아예 어린 세대들이 아니라 30~40대가 유입된다는 것은 이들이 장기적 고객이 될 수 있다는 뜻”이라며 “올해 한국미술시장은 퀀텀점프를 앞두고 있다. 그러나 폭발적 성장은 플레이어가 많아져, 경쟁이 심해진다는 뜻도 된다. 양적·질적 변화가 동시에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