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 신고·납부 기한 내달까지
물납 대상 부동산·유가증권 한정
관련법 개정까진 상당 시간 소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상속인들이 내야 할 11조원에 이르는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대납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상속세를 미술품으로 납부하는 미술품 물납 제도가 도입되기 위해서는 관련 세법 개정이 우선돼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상속세는 사망일로부터 6개월 이후 가산세가 부과되기 때문에 이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일가의 상속세 자진 신고·납부 기한은 다음달 말까지로 그 사이에 관련법이 개정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만, 정부는 문화계에서 주장하는 미술품 물납제 도입에 대해 심도있게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10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상속세의 문화재·미술품 물납제’ 도입을 살피고 있다. 물납이란 현금이 아닌 다른 자산을 정부에 넘기고 해당 자산의 가치만큼을 세금납부로 인정받는 제도인데, 현재는 물납 대상은 부동산과 채권·주식 등 유가증권으로 한정돼 있다. 물납 대상 확대는 세법 개정 사안이다.
앞서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말 미술품 물납제 도입을 뼈대로 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현재 소관 상임위원회인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하지만 담당부처인 기재부가 관련 사항을 검토하는 단계로 관련 세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는 적어도 1년이상 소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앞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한국미술협회·한국박물관협회 등 문화계 단체와 인사들은 지난 3일 대국민 건의문을 발표하고 ‘상속세의 문화재·미술품 물납제’ 도입을 호소했다. 개인 소장 미술품이 상속 과정에서 급히 처분되고 일부는 해외로 유출되면서 문화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고 전성우 전 간송미술관 이사장 별세 이후 유족들이 고인의 보물급 불상 2점을 경매에 부친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물납이 조세 회피 수단으로 악용되거나 국고 손실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도 제기된다. 예컨대 주식과 부동산으로 우선 물납한 뒤 나중에 납세자의 이해관계인인 제3자가 싼 가격에 이를 되사는 식으로 세금을 회피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물납 재산을 현금화하는 과정에서 매각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 정부가 손해를 볼 수도 있으며, 극히 일부이긴 하나 현금 세수가 감소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또 물납제 도입 이전에 문화재·미술품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시스템이 구축돼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술품의 가치산정 오류로 인해 국고에 손해를 미치게 될 가능성이 높기에 신중한 검토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편, 고 이건희 회장 주식 상속에 따른 상속세는 11조366억원으로 역대 최고치이자 2019년 국내 총 상속세 납부액(3조6000억원) 3분의1에 이르는 금액이다. 배문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