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업 찾는 글로벌 기업의 ‘니즈’

투자자 찾는 미술기업과 결합

미술계 슈퍼컬렉터 네트워크로 ‘윈-윈’

밀레니얼 시장 선도…지속성장 기대감

경매시장 2004년부터 5배 이상 성장

컨텐츠비즈니스·아트 시너지 창출 관건

글로벌 미디어그룹 ‘미술 투자’ 큰 그림 왜?
지난해 프랑스 통신·언론재벌 패트릭 드라히에게 37억달러(약 4조4000억원)에 인수된 세계적 미술품 경매회사 소더비. [연합]
글로벌 미디어그룹 ‘미술 투자’ 큰 그림 왜?
아트바젤이 미디어 재벌인 머독가(家)에 편입될까. 아트바젤의 모회사인 MCH그룹은 지난 10일 홈페이지를 통해 루퍼트 머독의 4남인 제임스 머독이 투자 패키지를 제안했다고 밝혔다. 오는 8월 3일 예정된 임시주총에서 투자제안이 통과되면 제임스 머독은 ‘루파 시스템즈’를 통해 최소 30%에서 최대 44%의 MCH지분을 확보하게 된다. [아트바젤 공식 홈페이지]

글로벌미디어 그룹의 신사업은 미술 산업일까.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의 차남인 제임스 머독이 최근 세계 최대 아트페어인 아트바젤의 모회사 MCH그룹에 투자를 제안했다. MCH그룹이 이를 받아들이면, 루퍼트 머독은 MCH그룹의 주식을 최대 44% 보유, 1대주주로 등극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6월에는 프랑스 통신·미디어 재벌인 패트릭 드라히 알티스 설립자 겸 대표가 글로벌 경매사 소더비를 인수했다. 그는 총 37억달러(4조 4000억원)를 지불하고 일반주를 매수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사들였고, 1988년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던 회사는 비상장회사로 전환했다.

글로벌 미디어 재벌들의 잇단 미술계 진출을 놓고 신사업을 찾는 기업의 니즈와 유동성 위기로 투자자자를 찾던 미술기업의 당연한 매칭이라는 분석이다. 또한 미술기업의 핵심자산 중 하나가 ‘슈퍼 컬렉터 네트워크’인 만큼 양 사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파이낸셜타임즈는 드라히 대표의 소더비 인수에 대해 “소더비가 돈을 만들어내는 브랜드는 아니지만 부유하고 유명한 사람들 사이에서 인지도와 협상력을 제공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투자처로 놓고 보아도 미술산업은 미래 성장성이 크다. 레이첼 포우날 마스트리흐트대 교수가 정리한 ‘미술경매사 30년 매출추이 1989-2019’에 따르면, 미술경매시장은 2004년 이후 5배 넘게 성장했다. 2014년엔 25조 9000억원에 이른다. 2019년엔 20조원 수준으로 조정됐지만, 지난 30년동안 우상향 곡선을 그려왔다.

특히 최근엔 밀레니얼 세대가 미술시장을 선도하면서 지속적 성장에 대한 기대도 커진 상태다. 아트바젤과 UBS가 공동발간한 ‘아트마켓 2020’에 따르면, 전세계 고액자산가 콜렉터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세대가 밀레니얼(23~38세)이다. 전체 콜렉터의 49%를 차지하는 이들은 가장 활발하게 작품을 수집한다. 지난 2년간 작품구매에 쓴 비용은 300만달러(35억 7000만원)에 달한다. 부모세대격인 베이비부머(50~60년대생)의 6배가 넘는 규모다.

김상훈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최근 젊은 사람들이 미술작품을 구매하기 시작하는 등 미술시장 성장에 대한 기대가 크다. 또한 아트페어나 옥션회사나 경쟁이 격화되면서 ‘빈익빈 부익부’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소더비, MCH그룹 모두 온라인 전환 등 대대적 투자가 필요한 상황이라 신규자본에 대해 반기는 상황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제임스 머독의 MCH그룹 투자는 말 그대로 투자적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제임스 머독은 본인이 설립한 ‘루파 시스템즈’라는 민간투자사를 통해 증자에 참여할 예정인데, 이 회사는 트리베카 엔터프라이즈, AWA 스튜디오, 부미디어, 모닝컨설팅, 노트플라, 데일리헌트 등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IT, 지속가능한 환경을 고민하는 스타트업 등에 투자하고 있다.

최승호 이화여대 경영대 교수는 “투자사들은 언더 벨류된 회사를 찾아 투자하고, 적정 주가가 되면 차익을 실현한다. MCH그룹이 보유한 아트바젤은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나 유동성 문제로 신규 투자자를 물색하고 있었다. 머독이 MCH그룹의 경영에 뛰어든다기 보다 투자를 위한 서로의 니즈가 맞아 떨어진 것”이라고 봤다.

실제로 제임스 머독은 주당 10프랑 50센트로 최대 7450만 스위스 프랑(956억원) 규모로 증자에 참여할 계획이다. 신주투자가격은 최근 30일 평균 주가에서 25%할인한 것으로, 52주 신저가인 11프랑 60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5년간 매매제한조건이 붙지만, 상당히 낮은 가격에 투자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제임스 머독이 소더비(2010~2012년)와 디아 파운데이션(2016년)에서 이사회 멤버로 활동하며 미술산업과 동향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이같은 투자가 가능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이제 남은 숙제는 시너지 창출이다. 두 개의 케이스를 산업 전체로 일반화 할 순 없으나 각 산업에서 선도기업의 움직임이라 시장에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단순 투자로 시작했지만, 미술시장 재편의 트리거가 될 수도 있어서다. 김상훈 교수는 “컨텐츠비즈니스와 아트라는 일견 통하는 부분이 있지만, 서로 다른 산업이기 때문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