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를 사실상 받아들이면서 표면적 갈등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일선 수사에 대한 현직 검찰총장의 지휘권이 박탈된 첫 사례로 남게 돼 윤 총장의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때문에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을 비롯한 주요 수사의 향후 처리 결과에 윤 총장 남은 임기 절반의 명운이 달려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언유착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정진웅)는 조만간 이 사건의 피의자인 채널A 이 전 기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할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 장관의 지휘권 발동으로 윤 총장은 수사 상황에 관여할 수 없어졌지만, 되레 윤 총장으로서는 이 전 기자를 비롯한 관련자들의 신병처리 결과가 더 중요해졌다.

앞서 수사팀이 이 전 기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필요성을 주장했지만, 대검은 혐의 소명이 부족하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법조계에선 이 전 기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될 경우 혐의 입증이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수사팀은 강요미수 혐의를 적용하고 있는데, 이 죄가 성립하려면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의 협박이 인정돼야 한다.

이 사건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이 전 기자는 협박 대상이라고 하는 이철 밸류인베스트코리아 전 대표를 실제로 만난 적이 없다. 이 전 기자가 이 전 대표의 대리인을 자처하는 지모씨에게 의사를 전달하면 지 씨가 다시 변호사에게 내용을 전한다. 결국 이 전 대표는 3단계를 거쳐 변호사로부터 전언을 듣는 구조다. 올해 강요죄로 구속된 피고인은 1명뿐이다. 강요미수죄로 단건으로 구속된 사례는 통계도 잡히지 않고 있어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파악된다. 다만 기자가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초기화한 것은 영장심사 단계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만일 구속영장이 발부될 경우, 윤 총장의 조직 장악력은 급속히 떨어질 수 있다. 그동안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을 감싸려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 때문이다. 수사팀은 한 검사장을 이 전 기자의 공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일각에선 수사팀이 이 전 기자를 구속할 경우 한 전 검사장에 대한 신병확보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반면 이 전 기자의 영장이 기각되면 수사팀은 이 사건 수사를 무리하게 진행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대검의 통제가 정당화된다.

윤 총장은 전날 대검을 통해 밝힌 입장문에서 ‘2013년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사건’을 언급했다. 박근혜 정부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말라고 노골적으로 외압을 가했던 사건이다. 장관의 지휘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하면서도, 지시가 부당하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대목이다. 이 언급을 놓고 검찰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에 사활을 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않다.

검찰은 지난 1월 송철호 울산시장 등 총 13명을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기면서 총선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다른 관련자에 대한 사법처리를 4월 이후 결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총선 이후 눈에 띄는 수사 진척이 없다. 주요 피의자로 지목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 등에 대한 기소 여부도 정해지지 않았다.

조만간 단행되는 검찰 정기인사 이후에는 수사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안대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