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컬쳐아고라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 시민들이 서로 만나 정치를 논하고, 논쟁을 벌이고, 시장을 형성했던 자유분방한 공적 의사소통 장소인 ‘아고라(Agora)’처럼 문화예술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칼럼입니다.]
코로나 19가 발생한 이후 지난 몇 달 동안 ‘잠정 휴관으로 인해 저자 초청 강연이 취소됐다’는 문화시설 담당자의 전화를 자주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의문이 생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왜 미술관, 박물관, 도서관 등 국가문화기반시설을 ‘중위험시설’로 분류하고 무기한 휴관연장을 결정했을까?
문화기반시설은 방역조치와 단체관람 사전예약제를 철저하게 지킨다면 감염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곳이다. ‘전시실에서는 작은 소리도 크게 울려서, 타인에게 방해가 될 수 있으니 눈으로만 감상해주세요’ 라는 관람예절 안내문이 말해주듯 침방울(비말)이 다른 곳으로 튀어 나갈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그런데도 정부가 문화시설을 매우 위험한 다중시설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일까? 다음 두 가지를 가정해볼 수 있겠다. 첫째,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문화시설이 잠정적으로 문을 닫아도 국민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 즉 국민적 저항이 적다. 전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긴박한 전시상황에서 한가롭게 문화생활을 즐기는 분위기는 자제해야한다는 인식이 은연중 깔려 있는 것이다.
둘째, 국민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지 않다고 봤다. 생계의 위협을 받는 문화예술인들의 고통이나 문화시설 관련 업체들이 입은 경제적 피해의 심각성을 실감하지 못했다.
필자는 이러한 가정이 타당하다는 전제하에 문화시설의 장기 휴관은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침해하고 문화콘텐츠 산업을 과거로 후퇴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예를 들면 국공립미술관의 휴관 장기화는 직간접적으로 사립미술관들에게도 휴관 압박을 가하게 되고 그 결과 미술관 전시들이 축소되거나 취소된다.
이는 작품 발표의 기회를 박탈당한 작가들뿐만 아니라 전시 관련 인력 및 각종 사업체 (도슨트, 테크니션, 디자이너, 도록인쇄업, 미술전문잡지, 작품운송업체, 홍보사, 전시기획사, 광고제작사, 전시설치업, 미술재료상 등)에서 다양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코로나 팬더믹 직전까지도 정치인, 정책담당자들은 ‘문화가 국가 경쟁력’, ‘문화콘텐츠 산업은 굴뚝 없는 공장’, ‘문화예술이 미래의 먹거리’ 라며 문화산업을 예찬했다. 그런데 코로나 발생 이후에는 문화시설이 마치 코로나 감염 전파 온상인양 취급하고 있다.
필자는 문화시설의 무기한 휴관조치가 포스트 코로나시대 문화산업이 대표적 몰락산업이 될 수 있다는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는데 일조한다고 생각한다.
때맞춰 지난 4일 통과된 3차 추가경정예산에 공연·전시를 비롯한 6대 문화분야 할인소비쿠폰(716억원) 지원사업이 포함됐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시설 방역체계를 보다 강화하는 동시에 할인소비쿠폰사업을 조기 집행해 가상뮤지엄이나 온라인 채널 등 비대면서비스가 충족시켜줄 수 없는 문화예술현장의 감동을 국민들에게 되돌려줘야 한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