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국립현대미술관장으로 A씨가 물망에 오른다면서?”, “아니 B씨도 아직 살아있는 카드라던데?”, “C씨는 어떻게 된거야?”
하마평의 바다에서 일치된 답을 찾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 구설의 향연이지만, 상당히 구체적이라는 게 대화의 원동력이다. A씨에겐 불투명한 예산 집행의 과거가, B씨에겐 포용력 없는 리더십이, C씨는 시대착오적 미감이, D씨에겐 실력보다 부풀려졌다는 평이 따라 붙는다.
각 인물의 행적을 좇다보면 ‘이렇게 사람이 없나, 한국미술의 위기란 바로 지금이 아닐까’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10월이면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공모가 시작한다. 미술계는 3년전처럼 ‘과열의 계절’을 맞았다. 관장의 조건으론 많은 것이 거론된다. 한국미술을 잘 알아야한다, 미술 전문가여야 한다, 아시아 최대규모 미술관을 이끌어야 하니 리더십이 있어야 한다, 미술관을 혁신해야 하니 뚝심과 비전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경영능력ㆍ정무감각도 필요하다, 국제적 네트워크가 우선 조건이다 등 열 손가락이 버겁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면, 지금이야말로 ‘일시정지’를 누를 시점이다. 다시 ‘미술관’이란 무엇인지, ‘국립현대미술관은 무엇인지’, ‘관장이란 무엇인지’ 근본적인 고민할 기회다.
특히나 현 정권을 탄생시킨 2016년의 촛불이 1980년의 민주화 운동이 아니듯, 한국사회도 과거 한국사회가 아니다. 한국 현대미술도 과거 리얼리즘 미술도, 단색화로 대표되는 미니멀리즘으로 묶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미술관의 역할도 과거의 그것이 아니다.
아무리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이 ‘연임 결격’이라고 해도 후임 관장은 그가 다져놓은 ‘디폴트’를 뛰어 넘어야 한다. 그가 천명한 미술관의 성공 조건인 ‘안정성’과 ‘연속성’은 사실 미술인들의 오랜 바람이기도 하다. 실제로, 마리 관장은 부임 전 44개였던 전시를 24개로 줄였다. 자연스레 전시 질이 높아졌고, 그만큼 관객 눈높이도 올라갔다. 한국미술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연구출판기획팀도 만들어졌다. 세계 주요 미술기관에서도 이를 기억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미술의 정체성 확립에 초점을 둬야한다”를 이유로 마리 관장에게 연임불가를 통보한 문체부는 “한국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 “미술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2018년 현재의 답을 준비해야 한다.
그 답이 “미술관이 별거냐, 많은 사람들이 와서 편하게 그림 보고 가면 되는거 아니냐. 어려운 것 말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적 전시하면 된다”보다는 깊이 있길 바란다. 고작 ‘나급 고위공무원’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다. 저지를 수 있는 해악은 그보다도 크다. 미술이 그렇다. 그래서 인맥과 논공행상, 권력욕이 넘봐선 안되는 자리다.
“단순히 값비싼 작품을 담은 곳이 아닌 도시와 공동체, 국가의 지식을 담는 곳이어야 한다”
“미술관은 어떤 곳이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이다. 오는 12월이면 임기가 종료되는, 마리 관장의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