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미술작가 도록사업 예술경영지원센터 1차 공개 논란

이중섭 ‘물고기와 아이들’ 2006년 위작논란불구 설명 없고

기존도록 1958년경 박수근 ‘빨래터’ 정정이유 없이 ‘1950년대’로 수록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도종환)가 위작논란을 예방하겠다며 야심차게 출발한 한국 근현대미술 대표작가 ‘전작도록 발간 지원 사업’이 곳곳에 구멍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작 논란이 일었던 작품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게재되고, 제작연도가 기존 도록과 다르게 수정된 경우도 상당수다. 제작연도 수정은 그 ‘견해’만으로도 연구논문을 써야할 만큼 중요한 사안임에도 수정의 근거가 되는 자료나 연구자 설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015년 11월 전작도록 발간사업을 시작하고 박수근, 이중섭을 첫 대상작가로 선정했다. 작가의 모든 작품에 대한 연대, 크기, 상태, 이력, 소장처 변동, 비평, 전시기록을 총 망라하는 전작도록을 발간해 위작논란을 사전에 막겠다는 복안이었다. 예술경영지원센터(대표 김선영ㆍ이하 예경)가 주관하는 이 사업은 오는 12월까지 총 두 차례에 나눠 지난 3년간의 연구결과와 함께 전작도록에 실릴 두 작가의 전 작품이 공개될 예정이다. 지난달 30일에는 ‘이중섭ㆍ박수근 전작도록’이 온라인 상(http://www.gokams.or.kr/catalogueraisonne/)에서 1차 공개됐다.

맨 위부터 아래로 이중섭·박수근 전작도록 온라인 페이지 캡쳐와 열화당 작품해설 참고도판6(1985년 출판)에 수록된 ‘빨래터’

1차 공개된 작품중에는 이중섭의 ‘바닷가의 아이들’도 포함됐다. 이 작품은 지난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의 ‘근대의 꿈:아이들의 초상’전에 ‘물고기와 아이들’이란 이름으로 출품, 당시 위작시비가 있었다. 다수의 매체가 크게 보도하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바 있다. 그러나 예경의 전작도록 사이트에서는 이같은 히스토리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 이럴경우, 위작논란이 이는 작품 혹은 위작이 공공연하게 진작으로 둔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제작연도가 수정된 작품도 상당수다. 이번 1차 공개에 포함된 총 3점의 박수근 ‘빨래터’중 열화당 작품해설 참고도판6(1985년 출판)에 수록된 ‘빨래터’는 도판에는 ‘1958년경’으로 기재됐으나, 예경의 전작도록 1차공개에선 1950년대로 정정됐다. 박수근의 또다른 작품 ‘맷돌질하는 여인’도 열화당 ‘박수근 1914-1965’(1985년 출판)에는 1940년대 후반으로 적혀있으나 1950년대 초로 수정됐다. ‘나물캐는 여인들(봄)’도 마찬가지다. 열화당 ‘박수근 1914-1965’(1985년 출판)에는 1940년대 후반이나, 전작도록에선 1950년대 초로 바뀌었다.

제작연도 혹은 사이즈 등 작품의 기초정보 수정이 중요한 이유는 작품의 진위를 가를때 가장 중요한 정보 중 하나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특히 지금까지 도록과 기사 등에서 적시한 제작연도와 다르게 표시한다면 그에 합당한 자료나 설명, 연구논문이 첨부돼야한다. 예경 관계자는 “지난 2년간 문헌이나 도록, 전시이력 등을 연구하며 정정한 것”이라며 “정정 이유를 밝히는 연구자노트가 일부 빠진 것은 확인했고 앞으로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도록공개를 1, 2차로 나누는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예경에 따르면 이번 공개는 작품이 2000년 이전에 전시 등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작품만을 대상으로 했다. 따라서 지난 2007년 45억2000만원에 낙찰되며 당시 한국현대미술품 최고가를 기록했던 박수근의 ‘빨래터’는 이번 공개대상에서 제외됐다. 이 작품은 위작시비에 시달렸던 작품이기도 하다. 해당 ‘빨래터’를 경매에 부친 경매사와 위작임이 의심된다고 보도한 잡지사간 30억원 규모의 소송은 지난 2009년 “‘빨래터’가 진품인 것으로 추정되나, 잡지가 의혹을 제기한 것은 정당하다”며 사건을 기각, 소송비용은 원고가 부담하라는 서울중앙지법의 판결로 일단락 된 바 있다.

한 미술계 전문가는 “전작도록 발간이 우리보다 활발한 일본이나 미국 등 해외사례를 보면 작품을 나누는 기준이 임의 시점이 아니라, 작가의 작업스타일 변화에 맞춰 1기, 2기, 3기 등으로 나눈다”며 “행정편의적 발상이거나 혹은 위작시비가 본격적으로 일어난게 2000년 이후라 (구설을 피하려고)그렇게 정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뿐만아니라 ‘연도미상’ ‘재료미상’ ‘현소장처 미상’ ‘크기 미확인’ 등 작품 관련 정보가 누락된 것이 상당수, 위작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박수근의 수채화ㆍ드로잉 수백 점은 향후 원본이 아닌 목록만 공개할 예정이다. 상황이 이쯤되자 단기간에 졸속으로 정부 전작도록을 밀어붙치는 것을 이제라도 전면 백지화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 관장은 “해외에서 전작도록을 발간할 경우 10~20년은 기본이다. 앤디워홀도 워홀재단에서 30년 넘게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며 “애초 3년만에 박수근과 이중섭이라는 한국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하고 작품이 방대하게 퍼져있는 작가를 발간하겠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다. 전형적인 성과 보여주기다”고 지적했다.

전작도록사업 진행방식 대한 비판도 나온다. 작고작가 작품의 진위 여부나 제작연도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는데 이를 단 두 달간의 ‘인터넷 공개를 통한 의견수렴’으로 갈음하는 것이 적합한가 하는 지적이다.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은 “전문가들의 의견이 다를 수 있는 작품에 대해선 치열한 토론과 검증과정을 거쳐야하고, 그 사실을 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전작도록은 한 번 발간되면 ‘기준’이 돼기에 이같은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전작도록 사업엔 작가당 각각 4억1000만원씩, 총 8억2000만원의 예산이 들었다.

이한빛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