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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1인 4역’ 이색 프로복싱협회장 이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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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미녀는 괴로워’(왼쪽)와 그 원작인 일본만화 ‘칸나 씨 대성공입니다!


# 2006년 크게 히트한 영화 ‘미녀는 괴로워’는 일본만화 ‘칸나 씨 대성공입니다(カンナさん大成功です)!’가 원작이다. 직업이 가수와 대학식당 조리사로 다를 뿐 두 작품은 못생긴 아가씨가 전신성형수술을 받은 후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원하는 사랑까지 얻는다는 전형적인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다. 2008년에 나온 동명의 뮤지컬도 국내외에서 흥행에 성공했다. 인간개조에 가까운 전신성형수술. 그야말로 영화 같은 얘기로, 현실에서는 비용과 부작용, 의술의 한계 등으로 쉽지 않다고 한다.

# 비슷한 시기인 2008년 1월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최요삼이 링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그리고 이 사고는 한 사람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주인공은 당시만 해도 주먹의 세계에 몸담고 있었던 이향수 씨(1969년 생). 그는 전남 장성중학교 때 복싱에 두각을 나타냈으나, 쉽게 출혈이 멎지 않는 혈액질환으로 링을 떠났다. 원래 격투기 종목은 주먹세계와 가까운 법. 복싱의 꿈을 잃은 이향수는 이후 건달세계에 몸을 담았다. 이후 최요삼과 친분을 갖게 됐고, 세계챔프로부터 “형님은 복싱을 했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주먹세계를 떠나 복싱을 하세요”라는 조언을 들었다. “나이 마흔에 무슨 복싱선수를 하느냐”며 고개를 저었던 이향수는 최요삼의 비극적인 죽음에 자극을 받아 25년 만에 다시 글러브를 끼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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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수 회장의 비포-애프터. 왼쪽은 주먹 세계에 몸 담았을 때, 오른쪽은 최근 복싱을 하는 모습.


# 체중이 100kg이 넘게 나가던 이향수는 혹독한 복싱 트레이닝으로 70kg대로 감량했다. 예전에 알았던 사람은 몰라보는 경우까지 생겼다. 프로복서로 활동하고 싶었으나 당시는 만 37세 이상은 프로데뷔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활체육 선수로 뛰었다. 총 15번을 치렀는데 첫 경기만 패했을 뿐 나머지는 모두 이겼다. 특히 2013년, 2014년 국내 최고 권위의 생활체육대회인 KBI의 최요삼 추모대회에서 거푸 우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중요한 것은 운동을 통해 몸이 바뀌니 정신도 바뀌었다는 점이다. 복싱에 전념하면서 주먹세계를 떠났고, 삶의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게 되면서 이전과는 180도 다른 ‘바른생활의 사나이’가 된 것이다.

# “체중이 30kg나 줄었으니 얼마나 힘들게 운동을 했겠습니까? 이 과정에서 인생이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건달생활을 청산했고, 가장 먼저 지역사회에서 나눔과 봉사에 나섰어요. 그런데 이게 진짜 감동이었어요. 남을 도우면서 제가 얻은 게 더 많아요. 무엇보다 제 스스로가 완전히 변했어요.” 코로나로 중단되기는 했지만 캄보디아에 100개 우물파기는 40개까지 진행했고, 고향 순천 일대를 중심으로 기회가 올 때마다 봉사활동을 펼쳤다. 가장 최근인 지난 10일도 폭우 피해가 컸던 곡성에서 하루종일 봉사활동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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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지난 8일 ‘KPBF 전국신인발구 및 빅라이벌전’의 기념사진. 위쪽 가운데가 이향수 회장. 오른쪽은 지난 10일 수재가 난 전남 곡성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이향수 회장. [사진=KPBF 제공]


# ‘봉사왕’이 된 이향수 회장은 복싱 쪽으로도 관심을 기울였다. 2018년 12월 한국프로복싱연맹(KPBF)의 회장을 맡았다. 현재 국내 프로복싱 기구는 KPBF를 비롯해 한국권투위원회(KBC), 한국권투연맹(KBF), 한국권투협회(KBA), 복싱M(KBM) 등으로 사분오열돼 있다. 이향수 회장은 “기구가 난립하면서 프로복서들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시장이 침체돼 있다. 선수들에게 제대로 파이트머니를 지급하고, 안정적인 대회 개최를 하는 데 미력이나 보태기 위해 나서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향수 회장은 지난 8일 순천에서 ‘KPBF 전국신인발구 및 빅라이벌전’을 열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연초부터 프로복싱이 전면 중단된 시점에서 어떻게라도 선수들에게 무대를 마련해야겠다는 사명감에 철저한 방역조치와 함께 대회를 마련한 것이다. 이향수 회장은 최근 격투기 인기가 높아진 것에 감안해 “이제는 프로복싱이 격투기와 적극적으로 교류해야 한다”며 로드FC 호남지회장도 맡고 있다.

# 사회사업가에 프로복싱단체 회장. 이향수 회장은 자신이 좋아하는 봉사와 복싱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연예계 문도 두드리고 있다. 절친인 배우 이정용 씨의 권유가 계기가 됐다. 2019년 ‘단심가’, ‘사나이의 길’ 등의 노래를 담은 앨범을 내며 트로트 가수로 활동을 시작했다. 여기에 2020년 5월부터는 전문가의 권유를 받아 모델 아카데미를 다니며 ‘50대 프로 패셔니스타’를 꿈꾸고 있다. 개성 강한 외모에, 복싱으로 단련된 보기 좋은 체형의 덕을 보고 있다. “가수와 모델은 좀 부끄럽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봉사와 프로복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 시작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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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가수, 오른쪽은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이향수 회장의 모습.


# 이향수라는 사람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몸은 물론 정신까지 바꾼 전신성형수술을 한 셈이다. 복싱이라는 운동을 통해 말이다. 진정한 스포츠의 가치는 이런 데 있는 것이다. “원래 운동신경이 좋았어요. 20대에는 수상스키를 탔는데, TV에 ‘달인’으로 보도될 정도로 전국적으로 유명했지요. 그런데 그때는 구체적인 취재에 응하지 않았어요. 제가 주먹세계에 있다 보니 당당하지 못했던 것이죠. 봉사를 하면서도 ‘저 사람 예전에 건달이었다’라고 폄하할까봐 공개적으로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 어두운 과거를 있는 그대로 얘기합니다. 2019년 아침마당에 출연해 속내를 털어놓은 것이 계기가 됐죠. 한 번 잘못 살았지만 지금은 그 서너 배로 열심히 살고 있거든요.”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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