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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칼럼] 4개월만 일하는 사람들과 전관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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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하산 인사는 고도의 전문이 요구되는 골프장 경영에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 “우리는 4개월을 일해서, 4년을 먹고 살지요.” 5년여 전 한 지방선거 현장에서 들은 말이다. 나쁘게 표현하면 ‘선거꾼’, 좋게 말하면 ‘선거전문가’ 혹은 ‘정당인’쯤 되는 사람들이 있다. 직접 선출직 공무원으로 출마하지는 않지만 이래저래 연이 있는 사람의 선거를 돕고, 그가 당선되면 그의 영향력을 통해 직업을 얻는다. 아니, 보다 직접적으로는 낙선한 정치인도 유사 ‘밥그릇 챙기기’가 가능하다.

# ‘전관예우’는 판검사, 고위공직자 등으로 좁게 해석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더 광범위하고 위력으로 발현된다. 국가기관은 물론이고, 대기업이나 공공기관, 유력 언론사 임원 등 힘이 있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퇴직하면 그 뒤를 봐주는 문화가 우리네에는 뿌리 깊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아주 높은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권력의 중간이나 끝자락을 잡았던 이들에게도 ‘작은’ 전관예우가 작동하기도 한다.

# 선거전문가든, 전관예우든 서양에도 비슷한 예가 있으니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영향력 있는 자리에 올랐던 사람이면 능력과 경험치가 뛰어날 확률이 높고, 이런 휼륭한 인재를 재활용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나쁘지 않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는 있을 법한 케이스’라고 눈감아주는 분위기도 있다.

# 문제는 정도의 문제다. 업무연관성이 전혀 없는, 즉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곳에 이들이 치고들어와 ‘이 자리는 내 몫이니 내게 보장된 임기를 잘 누리고 가겠다’고 하면 곤란해지는 것이다. 이러면 사회악에, 구조적 비리가 돼 버린다. 중요한 것은 낙하산 인사로 인해 해당기업이 망가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 경상도의 A골프장은 최대주주가 사실상 정부다. 2003년 설립 이래 6명의 대표이사가 있었다. 1~4대는 정부의 입맛에 맞는 대표이사가 선임됐다. 해당 주무처인 산업통상자원부 고위공직자 출신이거나, 지역 정치인이 골프장 사장이 된 것이다. 당연히 경영실적은 엉망이었다. 5대는 지역 출신의 전문경영인이었고, 이전에 비해 경영이 조금 좋아졌다. 이에 3년 전인 2017년 11월 정치권도, 전관예우도, 심지어 지역성도 배제한 진짜 골프장전문가 B씨를 사장으로 뽑았고, 그 실적은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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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골프장의 전경. 비가 그친 후 무지개가 뜬 사진인데, 마치 이 골프장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사진=문경 골프&리조트 홈페이지]


# A 골프장은 2017년 100억 매출에 30억 원 이익을 냈고, 지난해도 100원이 넘는 매출에 27억 원을 남겼다. 처음으로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고, 이익금의 일부를 주주들에게 배당하기도 했다. 올해도 비슷한 경영성과가 예상된다. B씨는 민간기업의 골프장에서 익힌 경영노하우를 십분 발휘했다. 큰돈을 들이지 않으면서 코스관리를 철저히 했고, 직원들의 서비스 품질을 확실히 높였다. 대도시의 골퍼들이 좋아할 만한 1박2일 상품을 만들어 크게 성공했다.

# “저는 몇몇 대기업에서 골프장 전문가로 일을 했어요. 여러 이유로 빠른 은퇴를 하고 택시운전을 배우고 있다가 A골프장으로 왔죠. 그래서 욕심이 없어요. 3년간 열심히 일했고, 좋은 성과를 냈으니 예정대로 물러나려고 했죠. 그런데...” 경영 성과가 워낙 좋은 까닭에 지역사회가 움직였다. 시장을 비롯해 지역 원로와 사업가, 유지 들이 한 번 더 사장공모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3년 만 B씨가 우리 골프장을 맡아주면 혁신이 뿌리를 내릴 것 같다. 우리가 인사권이 없어 장담할 수는 없지만 최선을 다해 돕겠다’며 말이다. 이렇게 지역 연고가 전혀 없는 B씨는 지역대표주자가 됐다.

# 상황은 어떨까? 총 8명이 지원해 9월 중순 1차 서류심사에서 3명이 탈락했다. 이어진 면접에서 다시 2명일 떨어져 현재 B씨를 비롯해 3명이 최종후보로 남았다. 10월 내로 산업통상자원부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주총회에서 3명 중 한 명이 사장으로 선임된다. 나머지 두 명 중 한 명은 지역에서 3번이나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다가 떨어진 정치권(당연히 여당) 출신이다. 다른 한 명은 산자부 고위공무원을 지냈다.

# A골프장과 구조가 비슷한 동강시스타 골프장은 2018년 민간에 매각됐고, 보령 웨스토피아(대천리조트)는 현재 같은 수순을 밟고 있다. 낙하산 인사, 마케팅 부재, 부실 경영 등으로 공공기관이 최대주주로 있는 골프장들이 갈 때까지 갔다가 민간으로 넘어가는 일은 현재진행형이다. 당연히 그 사이 혈세가 낭비되고, 부조리와 불합리가 골프장에 판을 친다. 그리고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정말 못된 일이다. A골프장은 문경 골프&리조트다. 4개월을 일해 4년을 먹고 사는 사람들, 그리고 못된 전관예우 문화와 한바탕 싸우고 있는 문경사람들과 B씨의 선전을 기원한다. 사실 골프의 도전정신은 못된 환경을 극복하는 데 있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편집장]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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