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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구로 세계를 만난다_in 페루①] (4) 우리가 그를 기억해야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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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배구협회는 새로 지은 실내종합경기장 ‘빌라 데포르티바 리지널 델 칼라오(Villa Deportiva Regional Del Callao)’에 박만복 감독의 이름을 붙이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페루배구협회 페이스북]


지난 2일(이하 현지 기준) 쿠바(아바나)에서 페루(리마)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쿠바에서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던 까닭에 휴식이 필요했다. 도착하자마자 한인 민박으로 향했다. 짐을 풀고 샤워를 한 후 따듯한 밥 한 끼를 먹으니 그제야 숨통이 트였다.

정신을 차린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페루 배구에 대한 정보를 찾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사이트는 물론, 해외 사이트도 두루 검색했지만 경기 결과 이외에는 유용한 정보가 딱히 없었다. 결국 페루에서 오랫동안 지낸 민박 사장님께 여쭤보기로 했다.

다행히 사장님은 배구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갖고 계셨고, “잠시 기다려보라”며 검색을 하시더니 협회 주소와 전화번호 등을 찾아주셨다. 그리고 내게 “혹시 박만복 선생님에 대해 아세요? 페루 배구에서는 정말 유명하신 분이에요”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몹시 부끄러웠다. 한창시절 10년 동안 선수를 한 배구인인데, 이름만 희미하게 기억할 뿐 박만복 선생님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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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에서는 남자축구와 여자배구가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다. 사진은 페루 배구팬들이 여자 대표팀을 응원하는 모습. [사진=페루배구협회 페이스북]


페루의 배구영웅 박만복

1973년 우루과이에서 개최된 제1회 여자배구월드컵에서 한국은 소련과 일본에 이어 동메달을 획득했고, 당시 사령탑이 박만복 감독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페루배구협회장은 한국스타일을 페루 배구에 접목시키고 싶다며 한국으로 찾아와 이낙선 한국배구협회장에게 지도자 파견을 요청했다.

그 시대에 감독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으니 지금 보면 박만복도, 페루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계속된 구애 끝에 1974년 박만복 감독은 승낙을 하고 페루로 향했다. 그런데 페루 여자 대표팀에는 이미 일본인 아키라 가토 감독이 있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국제 관계로 인해 쉽게 끝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던 박만복 감독은 1974년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개최된 제7회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기회를 잡았다. 아키라 가토 감독이 지병으로 쓰러지며 임시 감독으로 부임했고, 그 대회에서 8위의 성적을 거두며 인정을 받았다.

그 이후로 정식 감독이 된 그는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이하 올림픽) 6위, 1984년 LA 올림픽 4위, 1988년 서울 올림픽 2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11위로 페루 여자배구팀을 끌어올리며 돌풍을 일으켰다. 특히 서울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했을 땐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 이후에도 다양한 루트로 페루 배구의 발전을 도왔고, 결국 그는 2016년 배구 명예의 전당에 한국인 최초로 이름을 올리게 됐다.

박만복 감독은 지난 9월 26일(한국시각) 오전 11시 향년 83세의 일기로 영면에 들었다.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까지도 그의 영향력과 흔적들은 페루 배구 전역의 퍼지며 돌고 있다. 타국 사람이 그 국가에서 인정을 받고, 기억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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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배구협회 건물의 외관. 간판도 입구도, 건물도 생각보다 초라했다.


페루 배구협회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택시를 타고 페루 배구협회가 있는 ‘페더레이션 페루아나 발리볼(Federacion Peruana Voleibol)’로 출발했다. 건물은 오래돼 보였고, 규모는 작았다. 쿠바에서 온갖 수난을 겪어서 그런지 그래도 페루에서의 첫 배구탐방은 한결 편안했다.

건물 외부에서 소속을 밝힌 후 페루 배구협회 직원과 만나고 싶다고 했다. 박만복 감독 덕분인지 한국인이라는 걸 확인하더니 경계심이 풀렸고, 간단한 절차를 마친 후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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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배구협회의 아리아나 대표.


나를 맞아준 사람은 페루배구협회 대표인 아리아나(Ariana) 씨였다. 그녀는 신기한 듯 나를 보더니 “당신은 무슨 이유로 인해 이곳을 방문한 건가요?,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죠?”라고 물었다. 나는 내 정보와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을 하고 박만복 감독과 페루 배구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더니 그녀는 “박만복 감독님은 페루에서 유명 인사에 속한다. 페루에는 크게 남자축구와 여자배구가 인기 스포츠인데 88올림픽에서 여자배구팀이 은메달을 딴 후 전 국민에게 각광받는 종목으로 급성장했다. 우리는 모두 그를 존경하고 항상 그리워하고 있다.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오랫동안 페루 국민들에게 기억될 것이다”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현재 페루에서 배구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이 있다. 당신이 원하면 연결해줄 수 있다”라고 말했다. ‘페루에 한국인 배구 지도자가 또 있다고!’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 이럴 것이다. 사실이라면 페루 배구 취재는 이제 끝난 것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 장도영은 대학 1학년까지 배구선수였던 대학생입니다. 은퇴 후 글쓰기, 여행, 이벤트 진행 등 다양한 분야를 적극적으로 체험하면서 은퇴선수로 배구인으로 미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장도영의 세계 배구여행은 연예기획사 PNB가 후원합니다.
*** 현지 동영상 등 더 자세한 세계 배구여행의 정보는 인스타그램(_dywhy_), 페이스북(ehdud1303), 유튜브(JW0GgMjbBJ0)에 있습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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