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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로복싱] 한국에서 세계챔피언에 가장 가까운 복서, 김황길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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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복서 김황길이 훈련 도중 찍은 사진.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한국은 12년째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이 없는 ‘노챔프’ 국가다. 한때 미국에 이어 세계 2대 시장이었고, 현재 일본이 6명의 세계챔프(4대기구 기준)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 한국에서 세계챔피언에 가장 가까운 복서는 누구일까?

많은 복싱인들이 김황길(28 한남체)을 꼽고 있다. 묵직한 펀치에, 자기관리가 뛰어나 지금의 발전속도라면 1~2년 내에 한국 세계챔프의 계보를 이을 것으로 기대한다. 프로통산, 아니 아마추어를 하지 않았기에 복싱통산 10승(5KO)1패의 전적. 현 WBA 아시아 라이트급(-60kg) 챔피언으로 1차방어 성공. 이쯤이면 외견상 기대주로 충분하다.

그런데 김황길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연이 있다. 복싱을 늦게 시작했고, 잠시 배우의 꿈을 접어두고, 복서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김황길은 2016년 초까지도 배우를 꿈꾸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서울 보광동 토박이로 어렸을 때부터 연기자의 꿈을 가졌고, 대학도 방송연기학과로 진학했다(2010학번). 대학시절에는 연기로 상도 받았고 재학중 광화문에서 시위에 대응하는 의무경찰로 병역의무를 마쳤다. 2016년 2월 대학을 졸업했고 극단생활이나 방송연기자를 준비하던 가운데 90kg이 넘는 과체중과 술 담배에 찌든 몸 때문에 고민하다가 집 근처 한남체육관을 찾았다. 몸을 좀 만들기 위해서였다. 또래 젊은들이처럼 가끔 축구와 농구를 즐길 뿐 특별히 운동과 상관이 없는 만 25살의 청년이 처음 복싱글러브를 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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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자의 꿈을 키우던 대학시절 김황길의 모습.


그런데 이 복싱이 그의 청춘을 바꿔놨다. 1달 만에 10kg이 빠지자 스스로 놀랐다(지금은 30kg까지 감량). 복싱기술에 매료돼 스파링(연습경기)을 했는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짜릿한 매력을 느꼈다. 물론 이미 원하던 몸을 만들었고, 연기자를 위한 프로필 사진도 찍었다. 그런데 자신의 프로필에 ‘복서’라고 적어놓았는데, 이왕이면 제대로 된 전적을 가진 진짜 복서가 되고 싶어졌다. 이에 실력파 지도자인 한남체육관의 김한상 관장에게 “프로선수가 되고 싶다”고 청했다.

일반관원이지만 복싱기술을 흡수하는 속도가 빠르고, 타고난 펀치 등 복서로서의 자질을 내심 높게 평가했던 김한상 관장은 “제대로 할 자신이 있다면 받아주겠다”고 답했다. 이후 김황길은 누가 봐도 인정할 만한 성실함으로 김 관장의 인정을 받았고, 복서 트레이닝을 받기 시작했다. 프로테스트에 합격하고, 2016년 10월 3일 데뷔전을 치렀다. 3-0 판정으로 이겼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그달 29일 2차전도 치렀다. 크게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거꾸로 판정으로 졌다. 충격이었고, 이게 되레 자극이 됐다. 이후 복싱훈련 강도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로 높였다.

이후 김황길은 2017년 12월 6전 만에 한국권투위원회(KBC) 라이트급 한국챔피언에 올랐고, 올해 2월에는 동급 WBA 아시아 챔피언이 됐다. 5월 1차방어까지 성공하며 이제는 본격적인 세계챔피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강력한 펀치로 경기초반 강력한 KO승도 자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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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A 아시아 라이트급 챔피언에 오른 김황길이 김한상 관장의 무등을 타고 있다.


“원래는 한국챔피언이 목표였어요. 프로필에 한 줄 넣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복싱을 하다보니 생각이 달라졌어요. 이왕 하는 것인데 할 수 있는 나이일 때 세계챔피언까지 한 번 도전해보고 싶어졌죠. 연기자의 꿈요? 당연히 아직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연기자의 길이 알고보면 참 춥고 힘들어요. 무명배우들에게는 정말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세계챔피언이 돼서 일단 돈을 좀 벌고 싶어요. 그 돈으로 극단을 만들어서 저도 연기하고, 마음에 맞는 선후배들과 보다 좋은 여건에서 연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복서이고, 지금의 꿈은 세계챔피언입니다.”

지난 6월 25일 김황길과 함께 한국의 세계챔프 유망주로 꼽히던 차정한(19)이 일본 원정에서 KO패를 당했다. 많은 복싱인들이 실망했다. 그리고 그 실망은 김황길에 대한 더 큰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김황길은 지난 4월 차정한과 스파링을 가졌고, 나름 한 수 위의 기량을 선보였다. 이 경기를 담은 유투브 동영상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김황길은 “(차)정한이는 펀치도 세고, 좋은 선수에요. 제가 더 잘했다고 칭찬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나이도 많고, 복싱훈련도 더 열심히 했거든요. 어쨌든 한국복싱이 침체돼서 몹시 안타까워요. 빨리 세계챔피언이 될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김한상 관장은 “(김)황길이의 장점은 두 가지다. 타고난 자질과 성실함이다. 이렇게 열심히하는 선수를 본 적이 없다. 이런 일화도 있다. 황길이가 초창기 일찍 복싱을 시작한 선배에게 스파링 때 워낙 많이 맞아서 울기도 했다. 그런데 1년이 안 돼 거꾸로 그 선배를 링 위에서 갖고 놀았고, 그 선배는 이후 복싱을 그만뒀다. 발전속도가 정말 빠르다. 그래서 기대가 크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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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황길의 복서 프로필 사진. 그는 이 프로필에 '세계챔피언' 다섯 글자를 넣고 싶어한다.


어쩌다 보니 배우가 복서가 됐는지, 아니면 지금 복서가 배우가 되려고 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이병헌 송강호 등 선이 굵은 배우를 좋아한다는 김황길은 “연기는 접은 상태기이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복서로서의 경험이 나중에 배우로도 좋은 자산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훈련을 하며, 경기를 하면서 정말 많은 감정을 느끼거든요”라고 말했다. 이쯤이면 이 복서배우, 아니 배우복서의 꿈은 응원할 만하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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