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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종훈의 빌드업] (46) ‘165cm’ 박상혁은 선입견에 늘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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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고려대에서 박상혁은 동기 조영욱이 달던 등번호 10번을 물려받았다. [사진=정종훈]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정종훈 기자] 2015 FIFA(국제축구연맹) U-17 월드컵 TV 중계를 통해 처음 축구팬들에게 얼굴을 비췄다. 이승우를 보기 위해 TV를 켠 이들에게 퍽 진한 인상을 남겼다. 이승우보다 작은 신장(163cm)으로 자신보다 최소 10cm는 큰 브라질, 기니, 잉글랜드 선수들과 싸웠으니 말이다. 이로부터 약 4년이 지난 2019년 박상혁(21)이 수원 삼성에서 프로 커리어 첫 발을 내딛는다.

박상혁의 신장에 혼란(?)이 있었다. 프로필상 신장으로 작게는 163cm, 크게는 167cm까지 오간다(수원은 165cm로 발표했다). 헌데, 오차 범위에 큰 의미는 없다. 신장이 ‘평균 이하’라는 사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라운드 위에서 부딪히는 수비수보다 최소한 머리 하나는 작다.

신장이 작은 선수들은 선입견과 싸운다. 아마 무대에선 통할지 몰라도 프로로 옮겼을 때 ‘뛸 수 있겠냐?’라는 평가가 꼬리표처럼 따른다. 선수가 도전하기도 전에 외부에서 미리 한계를 긋는다. 박상혁도 이런 평가를 피해갈 수 없었다. 그는 “어렸을 땐 스트레스였다. 하지만, 이제는 많이 들어서 덤덤해졌다”면서 “사실이라 이제는 딱히 기분이 상하지 않는다”고 웃음지었다.

도리어 작은 신장 덕에 강한 승부욕이 생겼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기 싫어했다”던 박상혁은 “한편으로는 작아서 더 지기 싫었다”고.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표현처럼 겁 없이 상대에게 덤볐다. 작은 선수에 약이 오른 상대팀은 종종 박상혁을 향해 의도적으로 강하게 파울을 하거나 침을 뱉으며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박상혁은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등학교 중반까지는 자신을 담근(의도적으로 비신사적인 행동할 때 표현되는 속어) 상대 선수를 향한 보복성 행위 때문에 지도자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고3 이후엔 개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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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FIFA U-17 칠레 월드컵에 나섰던 박상혁. [사진=대한축구협회]


축구팬에게 박상혁의 포지션은 왼쪽 측면 공격수가 익숙하다. U-17 대표팀 시절의 포지션이었기 때문. 대표팀과 달리 매탄고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공을 찼다. 고3 시절 주승진 감독의 지휘 아래 왼쪽 측면으로 잠시 눈을 돌리긴 했으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박상혁이 가진 재능은 중원에서 가장 빛났다.

작고 빠른 왼발 드리블러에겐 수식어가 붙는다 ‘OOO 메시’라는 식상한 표현이 대표적이다. 박상혁도 그랬다. 키가 작고 드리블에 능하다는 이유로 매탄고 메시 혹은 고려대 메시라고 불렸다(왼발잡이는 아니다). 하지만, 조목조목 박상혁의 플레이를 뜯어보면 메시와는 스타일이 다소 다르다. 세계적인 스타로 굳이 비유하자면 안드레 이니에스타가 더 가까웠다.

공이 없을 땐 수시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간접 시야’를 텄다. 이를 토대로 상대보다 먼저 움직이고, 먼저 생각했다. 지도자들이 미드필더에게 강조하는 ‘사이 공간’을 찾아다녔다. 공을 소유할 때는 요리조리 압박을 피해 다녔다. 좁은 공간에서 공을 지키고 드리블로 운반하며, 번뜩이는 센스로 수비를 허무는 재능이 그랬다. 득점보다는 공격수와 합이 맞아 도움을 기록할 때 더 짜릿했다.

폭발적인 스피드로 압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실제로 100M 기록은 13초대로 빠른 편이 아니다. 단순 주력보다는 순간적인 스피드로 상대의 타이밍을 뺏었다. 신장이 작은 대신 낮은 무게중심을 이용해 볼을 지킬 줄 알았다.

단, 아쉬움도 분명 존재했다. 고려대에서의 2년 성장 폭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물음표가 따랐다. 오히려 장점보다는 단점이 두드러지는 상황을 관찰할 수 있었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매우 솔직한 편인데, 그라운드에서 그대로 묻어나왔다. 쉽게 설명하자면 기복이 있었다. 잘 풀리지 않을 때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표출했다. 물론 반대의 상황에서는 축구 자체를 즐길 줄도 알았다. 여기에서 창의성이 발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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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혁은 지난 2016년 후반기 왕중왕전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매탄고를 우승으로 이끌었다. [사진=정종훈]


장점이 단점이 되기도 했다. 중원에서 드리블로 볼을 끌다가 빼앗기는 장면이 여러번 연출됐다. 상대팀 진영에 무게중심이 쏠려있는 상황에서 카운트 어택을 맞아 위험을 초래하기도 했다.

박상혁이 수원에서 곧바로 자리 잡는다?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다만 상황적인 측면에서 타이밍이 잘 맞아떨어지고 있다. 지난해보다 올시즌 선수단 평균연령이 더 젊어졌다(28세→25세). 이임생 감독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구단의 방향성에 동의했다. 여기에 K리그 내 의무출전제도가 U-23에서 U-22로 하향 조정됐다.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리기보단 자신의 방식대로 꿋꿋했다. 고집이 셌다. 이 때문에 자신의 색깔은 분명했지만, 때론 지도자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한 발자국 물러나 서로를 이해했을 때 시너지 효과로 이어졌다. 고3 시절 주승진 감독을 만났을 때가 딱 그랬다. 자신을 온순하게(?) 만들어준 스승을 다시 만나게 됐다. 매탄고 감독이 아닌 수원 코치로 시즌을 함께 한다. 그래서 더 지켜볼 만하다.

이제 프로라는 새로운 시험 무대에 도전장을 낸다. 더 많은 이들에게 평가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한 단계 한 단계씩 전진할 때마다 선입견에 맞섰다. 그리고 늘 아무렇지 않은 듯 색안경을 벗겨냈다. 박상혁은 다시 한 번 자신을 향한 선입견을 깰 준비에 여념이 없다.


영상=메이킹풋볼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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