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표팀은 필리핀의 밀집수비에 고전했다. [사진=KFA]
경기가 끝나자 승리에도 불구하고 답답했던 경기력이 도마에 올랐다. 예상대로 필리핀은 10명 모두가 내려서는 밀집수비로 나왔고 한국은 이를 쉽게 공략하지 못했다. 에릭손 감독이 이끄는 필리핀의 수비는 라인과 라인 사이를 촘촘하게 좁히며 사전에 준비한 대로 한국을 상대했다.
아시안컵 후반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선수들의 몸 컨디션도 고려해야겠지만, 그럼에도 분명 한 수 아래의 필리핀에게 고전한 것은 상대의 전술을 공략하지 못한 점이 크다.
현대축구에서 상대 밀집수비를 파훼하는 교과서적 방법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페널티 박스 밖에서의 중거리 슈팅을 통해 상대 수비를 끌어내고, 둘째로는 과감한 일대일 돌파 시도로 조직적인 상대 수비에 균열을 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빠른 좌우 전환을 이용한 측면 공격으로 중앙에 밀집돼 있는 수비의 틈을 노리는 것이다.
한국대표팀의 필리핀전 슈팅 위치. [사진=AFC]
과감하게 일대일 돌파에 나선 선봉장은 단연 황희찬이었다. 이 날 경기에서 거의 유일하다 싶은 한국의 ‘돌격대장’이었다. 빠른 발을 앞세워 공을 잡으면 거침없이 상대 공간으로 공을 몰고 갔다. 황희찬은 이날 한국의 유일한 골까지 어시스트하며 임무를 완수했다. 여기에 후반 교체로 들어온 이청용도 왕년의 발재간을 선보이며 필리핀의 수비를 무너트렸다.
문제는 측면 공격이다. 히트맵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벤투호의 전술적 특징은 좌우 풀백이 매우 높은 위치까지 올라간다. 이들에게 측면 공격을 맡기고 2선 공격자원들은 중앙으로 좁혀 들어가며 연계플레이를 통해 기회를 만들어 낸다.
한국(노란색)과 필리핀(파란색) 선수들의 평균 위치. 구자철(13번)은 이재성(10번)과 겹쳐있을 정도로 한국의 2선 자원들은 중앙에 밀집해 있다. [사진=AFC]
반대편에서 뛴 이용은 현재 대표팀에서 최고참이다. 올해로 만 33세가 된 이용은 2018년 K리그와 월드컵을 포함해 1년 내내 쉼 없이 뛰었다. 체력적인 우려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날도 주특기인 크로스는 물론 기본적인 드리블과 패스에서도 실수를 연발했다.
큰 변화가 없다면 이어지는 키르기스스탄 전과 중국전도 비슷한 전개가 유력하다. 상대는 밀집수비로 나올 공산이 크고 한국은 일방적으로 두드리며 역습을 대비할 것이다. 이변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선 빠른 선제 득점과 다득점이 필요하다. 공격력 강화를 위해 남은 2, 3차전에서는 풀백 교체도 고려해야하는 이유다.
복귀가 임박한 홍철. [사진=KFA]
이용의 백업으로 뽑힌 김문환의 경우 경험치의 차이가 크다는 점에서 아직 벤투 감독이 완전한 신뢰를 보내고 있진 않다. 평가전에서도 김문환은 후반 교체로 짧은 시간만 소화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은 이용을 확실한 주전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김문환이 가진 장점은 현재 대표팀에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용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고 정확한 크로스를 갖고 있다면 김문환은 전문 윙어만큼이나 측면에서 상대 수비를 흔들 수 있는 선수다. 탈락에 대한 위험부담이 덜한 조별리그에서 시험해볼 만한 카드다.
보통 대회에 돌입하면 대부분의 팀들은 주전 수비라인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 조직력이 가장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반대로 공격에서 해법을 찾기 위해 수비라인에 변화를 줄 필요는 있어 보인다. 벤투 감독의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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