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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수정의 장체야 놀자] 철인 3종, 이주영 ‘나머지 1/3을 채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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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클 훈련을 하고 있는 이주영.


철인3종을 하는 이주영(36) 선수를 인터뷰하기 위해 필자는 미팅 장소에서 미리 나가 출입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주영 선수의 모습은 한눈에 들어왔다. 왼쪽 의족 때문이었다. 그런데 묘하리만큼 당당함이 풍겨져 나왔다. 절단장애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몸을 가진 체육인 그 자체였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이주영은 웃음을 잃지 않으며 몸에 밴 여유를 보였다. 인터뷰 장소가 좌식테이블이었던 관계로 의족을 빼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귀찮았을 텐데 얼굴 한 번 구기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의족을 신발장 옆에 정리했다.

“전국장애인체전을 준비하다가 팔에 부상을 당해 제대로 훈련을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는 일시적이에요. 오서코리아의 의족모델로 달리기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좀 힘든 면도 있습니다. 의족이 있다고 해서 다 뛸 수 있는 것이 아니더군요. 환부의 통증이 심해 의족으로 달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선수다웠다. 부상으로 운동을 마음껏 못하는 상황이 불만이라는 말투였다.

좌절의 연속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겠네요. 2013년(33살) 9월 1일, 고 장진영 배우의 기일. 정말 이날 저도 죽고 싶었습니다(개인적으로 고 장진영 배우 팬입니다). 해병대를 제대한 저는 물에서 노는 것을 아주 좋아했죠. 그래서 친구를 도와 시즌이 되면 2달간 래프팅 강사를 하고, 쉬는 날은 피자배달을 하며 하루하루 즐겁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영월에서 손님을 태워주고 오다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산재보상을 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개인과실이 있어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라 했던가? 이주영이 더 견디기 힘든 사건이 이어졌다. “20대부터 보험을 든든하게 들었는데 사고 2주 전 고등학교 절친이 보험을 한다며 연락을 왔고,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사고 하루 전에 보험을 해약했지요. 그런데 바로 그날 사고가 난 겁니다.” 이 정도면 심한 불운이다. 지금은 담담하게 그때를 회상하지만 당시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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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충남 보령에서 열린 철인3종 대회의 수영에 참가한 이주영.


잠시 부정적인 생각도 했지만 이주영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재활을 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으로 접한 재활운동은 미니발(자전거)이었다. 탄천에서 미니발을 타며 운동을 통해 장애를 치유하고 있는데, 모르는 분이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것이 제법 화제가 됐다.

페이스북을 통해 의족전문업체 오서코리아가 관심을 보였다. 마침 2016년 그때 사이클 선수로 활동하면서 오른쪽 무릎에 통증이 있어 오서코리아에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은 이가 바로 이주영을 찾던 담당자였다. 이렇게 오서와의 관계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2017년 오서코리아 의족모델로 활동하며, 의족을 지원받게 됐다. 사실 당시 경쟁업체에서도 연락이 왔었다.

이주영은 “두 의족 전문업체에서 관심을 가져준 것에 정말감사합니다. 첫 인연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오서코리아와 함께 하는 것에 만족합니다. 중요한 것은 몸을 제대로 만들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러닝클리닉 강사

오서코리아는 지난 10월 21일 ‘제1회 절단장애인을 위한 러닝클리닉’을 한국체육대학교에서 개최했다. 절단장애인 20명이 참가한 이번 행사는 신체의 일부인 의족을 통해 스포츠를 할 수 있도록 의족 사용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구성돼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이주영은 의족모델로 시연을 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얘기했다.

“20명의 절단장애인이 한 자리에 모이기도 힘듭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다들 의족을 사용하는데 저처럼 의족을 자신있게 보이지않고, 최대한 감추기 위해 노력들을 하는군요. 의족의 기능보다 티가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가요? 의족을 꼭 가려야 하는 것인지는 각자의 취향이겠지만, 한 번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조금 더 당당하게 의족을 보이면 어떻습니까? 오히려 주변의 의식도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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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절단장애인을 위한 러닝클리닉에 참여한 이주영이 의족을 이용한 운동프로그램을 시연하고 있다


이주영의 짧은 강연은 이어졌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 의족으로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세분화됐고, 더 편안해졌어요. 예전에는 내리막길을 걷는 것은 생각도 못했지만 지금은 내리막길도 거뜬하게 내려갈 수 있지요. 과학의 위대함에 놀라움을 표합니다. 의족을 통해 삶의 질이 향상되고 있지만, 우리의 의식은 과거에 머물고 있습니다. 많은 변화가 필요합니다.”

이번을 계기로 향후 절단장애인을 위한 러닝클리닉이 확대될 예정이라고 한다. 이는 많은 절단장애인들이 개선된 의족 덕에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시련은 있어도 좌절은 없다

“저는 인생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요. 이틀 후에 양성종양 혹을 떼는 수술이 있습니다. 보험도 없고, 제가 수술비를 다 지불해야 하지만 더 열심히 운동하고, 돈을 아끼며 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수술이라는 말에 필자는 일 년에 몇 번 수술하는지 질문을 했다. 대답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었다. 이주영은 상의를 탈의하며 몸에 난 수백 개의 수술자국을 보여주었다. 양성종양이지만 언제 암으로 변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몸은 그 동안의 고통을 말해주고 있었다. 잠시 숙연해졌다.

이런 경험이 많았던 것일까, 이주영은 금세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철인3종을 하는데 수영과 사이클만 완주하고, 마라톤은 포기해야 하는 ‘2/3의 기쁨’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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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인3종 경기의 사이클에 참여하여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이주영


“철인3종 경기는 올해부터 시작했어요. 박인화(49) 선수와 이준하 철인1호 장애인 선수와 함께 대회를 출전하며 수영과 사이클을 했죠. 비장애인과 함께 겨루는데 수영은 중상위권이고, 사이클은 하위권입니다. 평균등수를 내면 중간 정도일 겁니다. 수영 750m, 사이클 10km(장애인코스)는 스프린트 코스라고 합니다. 비장애인과 함께 경기하면서 포기하지 않는 제 모습이 자부심을 느낍니다.”

지금도 이주영은 아픈 몸을 이끌고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부지런하게 살아와서 나태한 모습을 용납하지 않는다. 수영과 사이클을 넘어 달리기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최근에는 조심스럽게 동계 종목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장애인이 체육을 하면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무시를 받는 경우를 간혹 보게 됩니다. 장애인 모두가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하면서 운동에 참가하기를 바랍니다. 주눅들지 않고 각자 기량에 맞게 목소리 높여 운동을 즐겼으면 좋겠습니다.” 이주영이 장애인 체육에 던지는 키워드는 ‘당당함’이었다. 이주영처럼 수술과 재활을 병행하면서도 운동을 포기하지 않는 모든 장애인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곽수정 객원기자 nicecandi@naver.com]

*'장체야 놀자'는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에게도 유익한 칼럼을 지향합니다. 곽수정 씨는 성남시장애인체육회에서 근무하고 있고, 한국체육대학에서 스포츠언론정보 석사학위를 받은 장애인스포츠 전문가입니다. 장애인스포츠와 관련된 제보를 기다립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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