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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록의 월드 베스트 코스 11] 라힌치, 파도가 조각한 아일랜드 링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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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힌치 스타터(왼쪽 두번째)와 함께 선 필자(맨 왼쪽)일행, 흰색 자갈이 티박스다.


아일랜드의 라힌치 올드 코스 예약을 위해 여러 해를 노력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항상 풀 부킹이며, 대회가 있다는 등 여러 이유로 우리를 거부했다. 그래서 단념할까 생각도 했다. 그 기다림의 세월이 무려 7년이나 흘러 드디어 부킹을 얻었다.

부킹을 잡은 그 날도 처음 골프장에서는 ‘지역 아마추어 챔피언 대회가 있기에 티타임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나는 클럽 지배인에게 편지를 썼다. ‘지난 7년간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고 이번에도 기회가 주지 않는다면 내가 쓰는 골프책에 라힌치는 빠질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어렵사리 선수들 뒷조에 3티를 얻은 억지 행운을 가지고 우린 스러지는 아일랜드의 석양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차를 몰았다. 라힌치 골프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저녁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순식간에 방으로 사라졌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일행은 모두 퉁퉁 부은 얼굴로 호텔을 떠나 5분 만에 골프장에 도착했다. 마치 동네 골프장 마냥 거대한 출입문도 없다. 입구에 산양이 그려진 로고에 ‘라힌치 골프클럽 1892’라고 적히 벽면을 보고서야 진정 ‘여기가 라힌치구나’ 할 정도로 평범했다. 아마추어 선수들의 캐디백이 프로샵 앞에 즐비하게 늘어져 있고 순서가 되면 호명하지 않아도 알아서 티박스로 올라가 샷을 하고 백을 메고 총총 걸음으로 페어웨이로 나간다.

시합인데도 불구하고 블루 티박스를 닫고 화이트에서 치니 우리도 화이트 티에서 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선수들의 샷을 보는 순간 우리는 급 주눅이 들어 블루에서 치자고 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티박스를 표시하는 마크가 바닷가에서 주워온 자갈에 색을 입혀 블루, 화이트 색을 칠해 티박스 표식으로 쓰는 것이 친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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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힌치의 프로숍과 클럽하우스는 아주 소박하다.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감동
클럽하우스의 위용도 명문코스가 주는 첫 홀의 압도감도 없다. 웃으며 ‘당신들 차례니 티 샷을 하라’는 스타터의 권유와 함께 사진을 찍고 우리는 범상해 보이는 첫 홀 티 샷을 했다. 이 코스는 1892년에 이 코스를 디자인한 브리티시오픈 4승의 톰 모리스가 이 코스에 ‘가장 자연스럽고 매력적인 링크스’라는 칭호를 붙였다. ‘미국의 오거스타내셔널을 설계한 알리스터 매킨지가 재설계를 했던 명품인데 평범하다’는 탄식은 3번 홀에 이르러 씻은 듯이 사라졌다.

티 박스에 오르는 순간 좌측 주차장 뒤로 펼쳐진 대서양의 갯내음이 코로 느껴진다. 순간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위로 번지는 포말 행렬을 보며 언젠가 어릴 적의 귀에 익은 노래가사 “밀려오는 파도 소리~”의 선율이 입가에 넘친다. 세컨드 샷 지점에서 바라보는 그린 뒤편 갈색의 모래사장 그리고 대서양의 넓은 바다, 그 뒤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언덕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코스가 아니라도 감동의 물결이 일렁거렸을 텐데 더구나 초록빛 그린과 어우러진 이곳을 고스란히 가슴에 담는다.

역시 링크스는 바다, 백사장 그리고 듄스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음률과도 같은 매력이 있다. 게다가 파란 하늘이 받쳐준다면 그것은 덤으로 얻는 큰 행운이다. 우리가 7년간을 기다려 달려간 그 날엔 보기 드문 따가운 햇볕에 놀랐다. 눈부신 포말이 백사장과 어우러져 더욱 큰 감동으로 기억된다.

애초 설계자인 모리스 이후로 1927년 매킨지가 3단 그린을 만들고 난이도를 아주 높게 설계했었다. 그러나 그가 1935년 보비 존스와 함께 오거스타를 만들기 위해 미국으로 간 이후 라힌치 커미티에서는 ‘아마추어 골프들의 그린치고는 너무 어렵다’며 그린은 평평하게 수리했다.

1999년에 오늘날 유럽 코스의 거장인 마틴 호트리에 의해 과거의 어려운 그린으로 다시 복원되었다. 그래서인지 도대체 그린을 읽을 수가 없다. 시합 날이라 전문 캐디가 부족해 동네 청년의 미숙한 도움을 얻어 라운드를 하자니 가이드가 제대로 안 된다. 더구나 시합을 위해 그린스피드를 빠르게 세팅했으니 3퍼트는 기본이고 심지어 5퍼트를 한 동반자는 탄식을 토했다.

파5에 475야드인 4번 홀은 130년동안 톰 모리스의 설계 원형을 한 번도 손대지 않고 그대로 간직한 유일한 홀이란다. 다소 난해하다. 듄스와 듄스 사이에 홀을 만들려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치 한반도 지도 같은 페어웨이는 영어 ‘S’ 자를 두 번 연결한 모양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반드시 3번 우드 티 샷으로 안전하게 페어웨이를 고수하는 것이 최선이다. 페어웨이만 지킨다면 재차 우드로 2온을 노려볼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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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힌치 7번 홀.


블라인드 그린을 가진 파3

5번 홀에 이르니 지금껏 만나본 파3 중 가장 재미나는 홀이다. 파3인데 그린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해야 칠 수 있는 파3 블라인드 홀. 그린 뒤에 높게 펼쳐진 모래언덕인 듄스 위 하얀 돌이 그 아래에 그린이 있다고 표시한다. 그린 앞을 가로막고 있는 듄스를 넘겨 그린에 올려야 하는데 방향을 잡을 수가 없다. 전 세계 약 16만여 개의 파3홀 중 가장 큰 웃음이 나온다. 좋다 나쁘다는 평가를 떠나 1892년에 올드 톰 모리스에 의해 이런 개방적 상상력으로 골프장을 만들었다는 자체가 존경스럽다. 그런 상상력이 그가 브리티시오픈을 4번이나 제패하게 한 원동력이 되었을 것 같다.

서쪽은 대서양과 접하고 북쪽에서 이나 강물이 흘러내려와 형성된 삼각지에 세모 형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서쪽은 바다, 북쪽은 강을 접하고 동쪽은 육지에 닿아 있다. 바다와 강을 모두 접하니 듄스와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주는 것은 자연스럽다. ‘어느 홀 하나 버릴 것이 없다’는 마틴 호트리의 표현이 제격이다. 그는 ‘아일랜드와 영국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코스’라는 찬사도 아끼지 않았다.

6번 홀은 대서양을 향해 달리는 호쾌한 홀이다. 급하지 않은 좌 도그레그지만 수평선을 바라보며 날리는 샷은 링크스를 제대로 느끼게 한다.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어깨에 힘을 불어 넣어준다. 멀리 보이는 북서쪽 언덕 위 하얀 집들이 대서양을 바라보면서 달리듯 서 있다. 그 절벽 아래로 번지는 파도와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이 앞으로 또 다른 많은 세월 동안 그 절벽을 갈고 닦아 더 가파르게 만들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자연의 힘에 고개가 숙여진다.

많은 홀들이 고스란히 예술이지만 7번 홀은 티박스부터 그린까지 온전히 하나의 파노라마다. 티박스 왼쪽으로 그린을 향해 나란하게 달려가는 모래사장은 골프장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배우라기보다 오히려 페어웨이를 조연으로 몰아낸다. 드라이버 샷은 오른쪽 페어웨이로 공략을 하되 가능한 길게 치는 것이 세컨드에 유리하다. 홀 전체가 길지 않지만 그린 좌우로 포진한 벙커는 이 홀의 아름다움을 놓치기에 충분한 고통이다. 그린 뒤로 펼쳐진 백사장과 파도를 보면 탄성이 터진다.

단언하건데 어느 홀 하나 버릴 것이 없다는 말을 실감한다. 이어지는 감동의 연속이다. 11번홀 파3 170야드, 대서양을 바라보며 샷을 날린다. 마틴 호트리가 새롭게 만든 이 홀은 시그니처 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 멀리 바라보이는 해안선 끝자락의 절벽이 아스라하게 보인다. 그 좌측이 우리가 에이밍 해야 할 목표다. 그린을 감싸는 3개의 벙커가 가마솥 같은 그린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그린에 올리지 않고 파를 할 확률은 없어 보인다. 아마도 버디 확률보다 낮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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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힌치 12번 홀 건너편으로 보이는 평화로운 집들.


강 건너 마을이 주는 평화로움
가장 오랫동안 가장 아름다운 홀로 기억된 12번을 소개하려니 가슴 벅차다. 라힌치의 명물이라면 역시 12번 577야드 파5 일 것이라 생각한다. 티 박스에 올라서면 마치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면서도 시선을 제대로 두지 못하는 남정네와도 같다. 티 박스 발 아래로 흩어진 갈색 모래사장이 페어웨이와 나란히 그린까지 길게 누워 있다. 그 곁을 짙푸른 강물이 스며든다. 어떻게 강물이 저렇게 푸를 수 있는지? 아마도 저 강이 시작하는 산자락에 푸른색 요정이 있을 것 같은 상상을 한다. 그 강물 뒤 강둑을 따라 어깨를 나란하게 줄지어 형형색색 지붕으로 단장한 방갈로들이 있다.

그 평화로움은 우리가 그간 살아온 삶이 평화도 행복도 없는 고통이었다는 것을 자각시키듯 고스란히 아름답다. 저곳에서 매일 강 건너 골프장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당신들의 삶이 진정한 평화요 행복이다. 언제쯤 저런 곳에서 평화를 찾을까 하는 꿈을 지니게 하는 홀이다. 그 집들의 끝자락 강물 위로 이곳과 그곳을 연결하는 붉은 벽돌 다리가 놓여 있다. 그 다리 옆에 그린이 있다. 그리고 그린 오른쪽으로는 더 이상 쓰러질 것도 없을 것 같은 고성이 반쪽 흔적만 남아있다. 티 박스 위에서 그 많은 광경을 무아지경에서 바라본다.

좌측 페어웨이 옆 러프와 백사장 경계는 OB말뚝이 박혀있다. 아이러니다. 저 강물 넘어 이상향은 우리가 넘볼 수 없는 곳인 양 흰 말뚝이 아주 촘촘하다. 그 모래사장으로 내려가 그린을 향해 샷을 하는 것도 큰 즐거움일 듯한데. 왜 그렇게 경계선을 그은 것일까? 그런 상념으로 인해 결국 나의 드라이버는 그 경계선을 넘고 만다. 아득한 미지로 가는 느낌이다.

13번 홀은 그 다리를 기점으로 다시 대서양으로 돌아간다. 12번 홀의 반대 방향이다. 블루티에서 279야드 파4이니까 바람이 적은 날이면 강한 드라이버로 원온 후 버디를 노릴 수 있다. 그러나 그린 좌측 입구가 급한 경사로 볼이 흘러내려 가고 그곳에 2개의 벙커가 과욕에 대한 징벌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14번에서 17번 홀을 지나는 동안 내륙 쪽 언덕에 즐비한 고즈넉한 집들의 평화로움을 감상하며 18번 홀에 이른다. 534야드 파5, 라힌치 마을의 낮은 언덕이 좌측 페어웨이를 따라 길게 펼쳐져 있다. ‘좌로는 OB라 페어웨이 우측으로 공략하라’는 캐디의 조언이다. 그러나 그 조언이 귀에 맴돌 뿐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그건 이제 이상향으로 떠나 저 빼곡한 집들 사이 내가 온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기 때문이다. 홀을 마무리하고 그 상쾌한 기네스 맥주도 마시지 못하고 서둘러 공항으로 향한다. ‘다시 오마’는 약속과 아쉬움을 남겨두고 떠나는 우리의 한쪽 가슴이 시린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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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해 보이는 톰 모리스와 알리스터 매킨지의 걸작 라힌치.


연락처: www.lahinchgolf.com
위치: 아일랜드 클레어 카운티 라힌치 Lahinch, County Clare, Ireland
전화: ++ 353-(0)-65-7081103
가는 길: 새논 Shanon 공항에서 약 54.2Km 46분 소요
골프장: 올드 Old 코스 전장 6950야드, 파72, 캐슬 Castle 코스 18홀

글을 쓴 김상록 씨는 전 세계 수많은 베스트 코스를 라운드 한 구력 26년 핸디캡 6인 골퍼다. 영국과 싱가포르를 번갈아 거주하는 김 씨는 쿠알라룸푸르 트로피카나 회원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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