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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체육계의 ‘꺼삐딴 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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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사상계' 7월호에 발표됐고, 같은 해 제7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전광용의 '꺼삐딴 리'. [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 교수작가인 전관용(1919~1988)은 철저한 취재를 바탕으로 한 군더더기 없는 문체로 유명했다. 제자들이 쓴 글의 단어 하나하나까지 따졌다. 이렇게 원칙주의자라고 해도, 1956년 그가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 이강석의 부정행위를 크게 호통쳐 결국 학교를 그만두게 만든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1973년 9월 12일자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의 양자이고, 실권자 이기붕-박마리아의 아들인 이강석은 부정편입 논란 속에 서울법대에 들어왔고, 교수들이 눈치를 보는 존재였다. 국문과 교수였던 전광용은 시험 때 이강석의 고교동문들이 조직적으로 그를 돕는 것을 보고, 호통과 함께 내쫓았다. 그리고 이강석은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육사로 재입학해 14기로 졸업, 1960년 419혁명 이기붕 박마리아, 동생을 권총으로 쏜 뒤 자신도 자살). 전관용의 대표작은 현대문학 시험에 단골로 나오는 <꺼삐딴 리>다.

# 탄핵정국을 넘어 바야흐로 대통령선거의 시대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다 보면 하루에도 수 차례 대선후보에 대한 얘기를 접하게 마련이다. 정치와는 좀 거리를 두고 있는 체육계도 마찬가지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한 지인은 A후보가 고향선배라며 당내경선을 통과하면 소매를 걷어부치고 선거운동에 나서겠다고 했다(A후보는 경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또 다른 지인은 창업컨설팅 일을 하는데, 문재인과 안철수 쪽에 동시에 줄이 닿아 있다며 “누가 되도 나는 좋다”며 흥얼거렸다. 젊은 보수를 자청하는 한 후배는 “탄핵사태에 책임이 있는 자유한국당의 홍준표보다는 유승민을 지지한다. 하지만 당선가능성 때문에 문재인을 막기 위해 안철수에게 쏠리고 있다”고 속내를 밝히기도 했다. 자신이 종사하는 직업과 관련된 유불리를 따지고, 정치적 소신은 물론 아주 막연한 학연, 지연까지 동원해 지지후보를 고민하고, 이에 대해 나름의 논리로 치장해 한 마디씩 하는 것은 우리네 일상사인 듯하다.

# 체육계에 한쪽 발을 들여놓고 있는 사람으로 대선후보 5명의 체육공약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지난 9일 열린 ‘2017 체육인대회’를 유심히 지켜봤다. 대한체육회를 비롯한 13개 체육단체가 유력 대선후보를 한 자리에 모아 체육계 현황을 알리고, 또 그들로부터 체육정책을 듣는 자리였다. 문재인 유승민 심상정 후보가 참석해 체육발전에 대해 나름 청사진을 내놨다. 모두 기록이 된 만큼 이들 중 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약속실천을 지켜보고, 그렇지 않으면 따져야 할 것이다. 안철수 홍준표의 불참이 언짢아 대한체육회의 체육정책센터에 속사정을 취재했다. 행사 주최측이 각당의 대선후보 확정을 기다린 까닭에 행사참여요청이 4일 전인 지난 5일에야 이뤄졌다고 한다. 3명은 일정을 조정하고, 달려왔지만 2명은 그러지 못한 것이다. 서운함은 남지만 야박하게 ‘체육인을 무시했다’고 따지고 싶지는 않다. 대신 조만간 2명도 체육정책에 대한 비전을 내놓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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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 유승민, 문재인 후보(왼쪽부터). [사진=정의당, 바른정당,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 울화통이 치민 것은 10일이었다. 제법 유명하고, 체육계에서는 입김이 센 200여 명의 체육인들이 11일 한 자리에 모여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피력하는 것이니 이건 탓할 일이 아니다. 아니, 정치적 목소리가 작은 편인 체육계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라는 점에서 긍정적이기까지 하다. 문재인 말고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체육인들도 이벤트를 열면 그만이다. 문제는 두 가지다. 먼저, 11일 지지선언에 참가하는 체육단체 중 한국여성스포츠회(회장이 문재인을 지지한다고 한다)와 한국엘리트스포츠지도자연합회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를 공개 지지했다. 이번 대선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에 따른 조기대선이다. 그렇다면 문재인 지지에 앞서 최소한 자기반성 정도는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 더 뿔이 난 이유는 문재인 지지를 위해 뛰고 있는 일부 체육인들 때문이다. 그들 중 일부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의 외곽캠프에 속해 있었던 사람들이다. 지도자, 교수, 스타플레이 출신 등 다양하다. 4년 전 문재인을 깎아내리며 박근혜를 띄웠던 이들은 마치 과거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이번에는 문재인을 찍으라고 한다. 2012년 박근혜에게 석패했던 문재인은 지금 ‘박근혜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걸었고, 그 내용에는 ‘인적 청산’도 포함돼 있다. 그러니 몇몇 체육인의 경우 청산의 대상자가 청산을 주창하고 나선 꼴이다. 당신들이 종사하는 스포츠에서 오늘은 두산을, 내일은 LG를 응원하는가? 그들이 누구인지는 스스로 가장 잘 알 것이다. 물론 문재인 캠프에만 폴리페서가 1,000명이 넘고, 정치철새들은 그렇게 산다고들 한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180도 돌아서려면 최소한 철저한 자기반성과 최소한의 자숙은 꼭 필요하다.

# 심리학에 '단순 보상 효과(simple reward effect)'라는 게 있다. 사람은 보상을 추구하기 마련이어서 승자, 강한 자, 권위, 일류 등에 약하다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여당’, ‘이기는 쪽을 응원한다’와 같은 속물근성이 여기에 기인한다. 하지만 그렇게만 살면 안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건 차치하고 교과서가 우리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꺼삐단 리>의 주인공 이인국 박사는 일제시대에는 일본, 이어 러시아-미국에 자신을 맞춰가며 개인의 안락만을 추구했다. 우리 학생들은 교과서와 시험을 통해 ‘꺼삐단 리’처럼 살면 안 된다는 걸을 배우고, 확인한다. 그런데 현실의 어른들이, 그것도 지지선언을 할 정도로 잘난 사람들이 그래서야 되겠는가? 이 점에 있어 동의하지는 않지만 지조를 지켜 ‘우리 근혜가 불쌍하다’는 우리 어머니와 같은 태극기집회 참석자가 더 낫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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