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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최순실 때문에... 삼성탁구와 유승민의 이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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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1997년)와 강준만 교수의 <이건희 시대>(2005년)


# 한국 최고의 부자인 이건희(75)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책은 참 많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삼성전자가 일본의 소니 등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전자회사로 우뚝 서자 ‘삼성 배우기’ 열풍이 불었고 당연히 그와 삼성에 대한 책이 쏟아졌다. 그런데 의외로 이건희 이름으로 나온 책은 1997년 나온 에세이집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가 유일하다. 직접 썼고, 둘째 사위(김재열 제일기획 스포츠사업 총괄사장)의 집안인 동아일보사가 펴냈으니 당연히 듣기 좋은 얘기들이 가득하다. 이 책 앞 부분에 ‘셰이크핸드형 공격 탁구’라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이 회장이 가끔 자녀들과 탁구를 치는데, 하루는 아들(이재용 삼성전자부회장)이 평소 사용하던 펜홀더형 탁구채를 셰이크핸드형으로 바꿔서 경기에 임했다. 그리고 평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점수 차로 이 회장이 졌다. 펜홀더는 공격형, 셰이크핸드는 수비형이라는 고정관념을 뒤짚어 셰이크핸드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공격을 한 것이 주효했다는 설명. 기업도 어려울 때일수록 공격적으로 변신해야 한다는 교훈이란다.

# 그런데 이게 좀 억지스럽다. 아마도 대필이나 윤문을 한 사람이 탁구를 잘 몰랐던 것 같다. 먼저 기본적으로 이건희 회장의 탁구실력은 거의 선수 수준이다. 1970~1980년대엔 탁구인 출신 박성인 삼성스포츠단 전 고문, 김충용 대한탁구협회 부회장에게 탁구를 배웠다. 강준만 교수(전북대)의 <이건희 시대>(2005년)라는 책을 보면 이건희 회장은 ‘제일 모직 소속 국가대표 선수와 겨룰 정도의 탁구실력을 가지고 있고, 근성도 좋아서 선수들이 지쳐서 그만두자고 할 정도까지 탁구를 쳤다’. 이런 그가 아들에게 졌다? 그것도 아들이 갑자기 펜홀더에서 셰이크핸드로 바꿨는데? 생활체육 동호인만 돼도 이게 얼마나 엉터리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전국 1부(생활체육 최고 수준)라고 해도 라켓전형을 바꾸면 3부 실력도 발휘하기 어렵다. 라켓을 바꿔 기존 이상의 경기력을 발휘하려면 최소 1년 이상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는 법이다. 정황상 ‘갑자기’가 아니라 ‘수 년만에 아들과 탁구를 쳤다’와 같은 부연설명이 있어야 자연스럽다.

# 디테일의 문제를 떠나 탁구를 통해 ‘신경영(1993년 이건희 회장이 선포)’을 강조하려고 했으니 어쨌든 이건희 회장의 탁구사랑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회장은 1978년 11월 제일모직 여자탁구팀, 1979년 2월 제일합섬 남자탁구팀을 잇달아 창단했다(현 삼성생명 탁구단). 1983년 삼성생명배 전국 초등학교 탁구대회를 시작해 지난해까지 33회나 개최해왔다. 이 대회 초대 우승자가 현재 삼성생명 남자팀의 이철승 감독이다. 역시 삼성생명배에서 우승한 ‘탁구신동’ 유승민을 전폭적으로 후원해 2004 아테네 올림픽 남자단식 우승을 일궜다. 지금도 삼성생명 대회에서는 학년별 1위에게 ‘유승민장학금’이 주어진다. 체육인으로 삼성임원이 된 사람은 김응용(야구) 신치용(배구) 김세혁(태권도) 등 종목별 한 명꼴이지만 탁구는 박성인, 김충용, 강문수 등 3명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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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IOC선수위원이 삼성퇴사를 밝힌 다음 날 페이스북에 올린 셀카 사진. 유 위원은 '새로운 마음으로'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 “(유)승민이가 IOC선수위원이 됐으니, 아마 이건희 회장이 건강했다면 ‘난리’가 났을 겁니다. 그런데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삼성까지 정국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으니... 승민이가 운이 없죠.” 삼성을 잘 아는 한 탁구인은 얼마전 이렇게 말했다. 이유는 지난해 리우 올림픽에서 IOC 선수위원으로 당선된 유승민이 2016년을 끝으로 삼성을 떠났기 때문이다. 사실 탁구계도 삼성과 유승민의 결별에 많이들 놀랐다. 삼성이 키운 탁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삼성생명 여자코치 신분으로 이건희 회장과 같은 IOC 위원이 됐으니 삼성이 ‘임원 승진’ 등 파격적인 지원을 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기 때문이다. 언론의 관심도 받지 못한 가운데 유승민은 지난달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삼성퇴사를 알렸다. ‘지난 17여 년간 몸담았던 삼성생명 탁구단과 아쉽게도 결별하게 되었습니다.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그리고 IOC위원이 되기까지 그 동안 많은 사랑 보내준 구단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끝까지 함께하지 못해 선수들에게 미안합니다. 어디서나 우리 선수들 응원하겠습니다.’

# 이 대목에서 한 탁구인은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나름 탁구를 좋아하는 이재용 부회장이 유승민 IOC 위원을 이렇게 쉽게 내보냈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여부가 국민적인 관심사로 등장한 까닭에 아마도 삼성그룹 내에서 그 누구도 유승민 IOC 위원에 대해 제대로 된 보고를 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아요. 나중에 ‘유승민 IOC 위원 어디갔어?’라며 한바탕 난리가 나고, 누군가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겁니다.” 최순실 때문에 경황이 없는 삼성이 얼떨결에 유승민을 내보냈다는 것이다. 삼성 일가의 뿌리깊은 탁구사랑도 모른 채 말이다. 발상 자체가 참 웃프다. 어쨌든 삼성은 상당액의 전별금을 주며 유승민 IOC 위원을 내보냈다. 그리고 삼성생명 여자탁구단은 유승민 코치의 자리에 급히 주세혁을 낙점했다. 주세혁은 스폰서 계약 등의 문제로 2017년까지 선수생활을 하기로 했지만, 당장 유남규 감독을 보좌할 코치가 없자 14일 끝난 국가대표선발전에서 벤치를 보는 등 ‘플레잉코치’ 역할을 고려하고 있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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