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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상록의 월드 베스트 코스 기행 5] 스코틀랜드 카누스티, 최고 난이도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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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누스티 1번 홀 그린과 클럽하우스.


스코틀랜드 카누스티골프링크스(Carnoustie Golf Links)에는 18번 홀에서 재앙을 맞았던 프랑스인 쟝 방 드 벨드와 정교한 길을 가르쳐준 벤 호건, 그리고 디오픈의 숱한 전설이 오늘도 쌓이고 있다. 글 김상록

일행은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 라운드를 위해 하루 전날 골프장 근처에 집결해 제비뽑기(Ballot)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예약 없이도 세인트앤드루스로 끌어들이는 고도의 상술이다. 라운드를 원하는 하루 전날 전화로 신청하면 그들 사이의 추첨에 의해 선택된 골퍼만 올드 코스에서의 라운드가 가능하다. 라운드 전날 오후 4시에 발표한다. 그런데 꽝. 떨어졌다.

다들 낙망한 채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카누스티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가능한 티타임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 여행에서 가장 우리를 행복하게 한 사건이 바로 카누스티에서 급조된 라운드였다. 스코틀랜드에서 귀중한 하루를 공치나 했는데 그 유명한 곳에서 라운드를 하게 됐으니 얼마나 큰 반전인가. 1931년을 시작으로 2007년까지 무려 7회에 걸쳐 디오픈을 개최한 코스이니 그 설렘만으로도 밤잠을 설치기에 충분했다.

디오픈 7회 개최한 명소
1999년 디오픈을 TV로 본 골퍼라면 마지막 라운드 18번 홀에 대한 얘기로도 충분히 밤을 새울 것이다. 그런데 그 홀에서 라운드를 한다니, 그것도 챔피언 티에서 말이다.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마지막 홀 승부로 더욱 유명해진 카누스티는 실제 그보다 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공식적인 클럽 창립은 1839년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곳에서 1560년에 이미 골프를 즐겼다는 비공식 기록이 전해진다.

카누스티의 클럽 로고를 보면 잎이 무성한 고목 위로 세 마리의 까마귀가 날아가는 모습이다. ‘카누스티’란 이름은 바위를 뜻하는 ‘카(Car)’와 만을 뜻하는 ‘노우스트(Noust)’란 두 스칸디나비아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지만 현지인의 얘기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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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누스티의 까마귀와 나무 로고.


1010년 피비린내 나는 바리전투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이다. 스코틀랜드 왕 말콤 11세는 카무스 장군이 이끄는 스칸디나비아 침략군을 쫓아냈는데 이에 격분한 노르웨이의 신들이 저주를 걸어 수천 마리의 까마귀가 이 지역에 난입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지역이 크로우네스트(Crow’s Nest) 즉 ‘까마귀 둥지’로 알려졌고 그게 곧 카누스티로 변했다고 한다. 어느 것이든 이름에 관한 유래를 듣고 나니 더욱 흥미롭다.

더 흥미로운 건 이곳에서 열린 1999년 디오픈에서 나왔다. 3타 차 선두로 마지막날 마지막 홀에 선 프랑스의 쟝 방 드 벨드는 더블 보기만 해도 우승이 확정되었고, 프랑스 선수로는 디오픈 사상 첫 우승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트리플 보기를 했고, 스코틀랜드의 폴 로리와 연장전에 들어가더니 패하고 말았다.

카누스티에서는 마지막 홀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18번 홀’이라고 소개한다. 에스(S)자 모양의 개울인 배리번을 두 번 건너야 하는 444야드 파4 홀이다. 드라이버 샷 IP 지점 좌우로 번이 감싸고 있다. 조금이라도 페어웨이를 벗어나면 물로 들어간다. 드라이버가 충분하게 거리를 확보해 260~270야드를 날린다 해도 우측에 똬리를 튼 3개의 벙커가 있다. 물론 그린 앞의 번은 승리를 위한 최후의 통과의례다.

앞바람이 심하게 부는 상황에서 3타 차 선두라면 당연히 웨지로 두 번 레이업 해 안전하게 공략해야 하지만 그는 당시엔 2번 아이언으로 그린을 직접 공략했다. 두 번째 샷은 18번 홀 입구의 갤러리 스탠드 상단을 치고 튕겨서 깊은 러프에 빠졌다. 그래도 3온, 4온이라도 우승이다. 그러나 이게 왠일? 그 러프에서 친 샷이 짧아 그린 앞 번에 빠지고 말았다. 신발을 벗고 번으로 내려가는 쟝을 보는 전 세계 시청자는 그야말로 숨죽였다. 누가 봐도 뒤로 드롭해야 할 위치였지만, 그 볼을 치기 위해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그의 모습이 애처로웠다.

물이 발목까지 찰랑거리는 것을 확인한 그는 번을 나와 벌타를 먹고 드롭했다. 깊은 러프지만 드롭을 해서 5온을 한다면 그래도 우승의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 마지막 러프 샷은 그린 오른쪽 벙커에 빠지고 말았다. 6온을 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연장전을 보장할 수 없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마지막 판토마임은 10야드짜리 퍼팅 성공으로 트리플 보기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연장전에서는 혼이 나간 쟝이 시드도 없이 예선을 거쳐 출전한 폴 로리에게 우승 트로피인 클라렛저그를 넘겨주었다.

쟝이 고국으로 돌아자 ‘왜 마지막 홀 세컨드 샷에 레이업을 하지 않았냐?’는 숱한 질문 공세에 시달렸다. ‘우승을 앞두고 비겁하게 샷을 하고 싶지 않았고 멋있게 마무리하고 싶었다’는 게 그의 답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2타 차 선두였다면 분명 레이업을 택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3타 차 선두여서 ‘볼이 물에 빠져도 더블 보기는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강공을 한 것이라 생각한다. 우승자만이 기억되는 냉혹한 프로 세계에서 다 잡은 우승을 놓친 그가 안타깝다. 샷은 항상 겸허해야 한다. 보여주기 위한 샷은 결국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생의 진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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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번 홀과 그린 앞의 배리 번.


곳곳에 숨은 미로
여느 스코틀랜드 골프장의 소박한 클럽하우스와는 달리 5층의 흰색 건물이 1번 홀 티 박스와 18번 홀 그린 뒤를 감싸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파란 하늘과 주의의 낮은 건물과는 다소 동떨어진 느낌을 주지만, 그렇다고 위압적이지 않다. 그곳에 전 세계 많은 골퍼가 찾아오고 호텔로 쓰고 있다니 이해가 간다.

스코틀랜드 5월의 푸른 하늘은 눈이 시릴 정도의 코발트블루 색깔이 눈부시다. 그 하늘 아래 고스(Gorse)에서 뿜어져 나오는 형광색 진노랑 꽃으로 인해 하늘과 초록빛 페어웨이, 고스로 연결되는 색감이 흥분을 느낄 정도로 아름답다.

1번 홀 티 박스가 번잡하다. 스타터룸이 있어 캐디가 대기하느라 다소 번잡스럽다. 스타터가 다가와 핸디캡을 묻는다. ‘싱글 핸디캐퍼로 챔피언 티에서 치겠다’고 했더니 두 말 없이 허락한다. 퍼블릭 형태로 운영해서 그런지 여느 프라이비트 골프장과는 달리 관대하다(유럽의 골프장 중에는 비지터에게는 챔피언 티에서 치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린이 보이지 않는다. 세컨드 샷 지점에서 긴 폴(방향을 표시한 막대기)만이 그곳에 그린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카누스티는 평지에 자리 잡은 골프장이지만 홀과 홀 사이는 모래 언덕으로 형성되어 치렁치렁 깊은 러프가 클럽을 감아 좋은 스코어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상황을 적절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고통의 골프가 되고 만다.

처음 방문이라면 캐디의 조언이 필수적이다. 티 박스에서 어떤 홀은 우드, 어떤 홀은 드라이버를 권하는 캐디의 조언을 귀담아 들어야 하며 그 캐디의 조언이 어떤 이유에서 나오는 지 분명하게 파악해야 코스 매니지먼트가 가능하다. 코스 맵을 통해 코스의 전체적인 윤곽과 목표 지점 등을 파악한 후 홀에 들어서는 준비가 필요하다.

파5 512야드의 6번 홀은 ‘호건의 오솔길(Hogan’s Alley)’이라는 별칭이 붙어 있다. 좌측 OB 펜스와 페어웨이 가운데 벙커 사이로 드라이버 샷을 날려야만 한다. 강심장이 아니면 감히 하기 어려운 샷이다. 53년 벤 호건은 과감하게 그 라인으로 4일 내내 볼을 보내 우승컵을 들어 올려서 이름 붙여졌다. 티 박스에 서면 어디로 볼을 쳐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우선 좌측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OB 말뚝을 보니 왼쪽을 피해야 하는데 페어웨이는 보이지 않고 페어웨이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벙커만이 고압적이다. 호건의 오솔길이 유일한 출구다.

용기와 결단 그리고 실행! 그건 매홀 요구되며 그 결과에 일희일비한다. 많은 세월동안 그러한 용기가 수반된 실천이 실패를 거듭하면서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이다. 인생도 다르지 않음을 골프에서 배운다. 세컨드 샷 또한 왼쪽으론 OB, 우측은 페어웨이와 나란히 흐르는 번으로 주의가 요망된다. 그야말로 똑바로 쳐야 좋은 스코어가 보장된다.

카누스티의 특징이라면 코스가 평지에 놓여 있고 여느 링크스와 달리 바다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파크랜드에 있을 법한 아름드리 나무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링크스로 불리기에는 다소 핸디캡이 있다. 그 핸디캡을 뛰어넘는 것이 바로 고스 꽃이다.

첫 방문이 5월 중순이었으니 진노랑의 고스꽃이 8번 홀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푸른 하늘, 형광 진노랑의 고스의 물결, 그리고 그린의 초록색이 주는 색감은 골퍼를 감동시키고도 남는다. 언젠가 한국에서 받은 달력에 이 8번 홀이 진노랑의 형광색 꽃으로 둘러져 있는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감동했다. 167야드로 길지 않지만 감동만 하다간 큰 일이 난다. 짧지만, 그린이 이른바 솥뚜껑이니 조심해야 하고 왼쪽이 OB임을 감안해 어깨에 힘을 빼야 한다.

파5 483야드인 14번 홀은 핸디캡 1번이다. 요즘 그 거리면 파4도 많은데 파5 홀인 데다 가장 어려운 홀이라니 분명 어딘가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 것 같다. 실제 티 박스에 들어서면 답답함에 마음이 무겁다. 내 키만한 고스가 둘러싼 티 박스에서 바라보는 페어웨이 방향은 고스만 보이지 페어웨이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악명높은 18번 홀, 그것도 챔피언 티에서 나는 파를 잡고서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것도 세컨드 샷을 3번 우드로 물을 넘겨 투온에 성공해서 파를 잡았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챔피언 티에서의 내 스코어는 79타였다. ‘아마추어로는 너무 좋은 스코어를 기록했다’는 캐디의 감탄에 고무되었다. 쟝의 마지막 트리플 보기 장면과 오버랩 되면서 스스로 대견해 했다.

카누스티는 디오픈 개최지 중에서도 어렵기로 소문난 코스다. 99년 디오픈에서 4라운드를 통틀어 2오버파가 베스트 스코어였다. 박세리와 박인비는 이곳에서 한 라운드 64타로 레이디 코스 레코드를 가지고 있다. 남자의 베스트 스코어는 2007년 던힐링크스챔피언십 2라운드에서 피터 오말리가 기록한 64타다.

나는 이듬해 7월에 두 번째로 카누스티에서 라운드를 했다.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거센 비바람으로 인해 드라이버 샷이 150야드 이상 나가지 않았다. 손이 시려 더 이상 라운드를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방한모, 방풍 장비와 비옷으로 중무장을 하고 필드에 나갔다. 거기서 89타를 치고 말았다. 한 여름에 방한모를 쓰고 라운드 했으니 역시 스코틀랜드에서 스코어를 좌우하는 것은 바로 날씨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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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하단에서 시계방향으로 코스가 시작해서 ㄷ 자를 간 뒤에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 오는 경로다.


Info
위치 : 스코틀랜드 카누스티 DD& 7JF 20 링크스 퍼레이드. 던디공항에서 30분.
개장 : 1839년, 54홀(챔피언십 코스 옆으로 퍼블릭 번사이드(Burnside), 부돈링크스(Buddon Links)가 있다.
설계 : 올드 톰 모리스, 제임스 브레이드.
이용 : 끄는 카트 버기 사용 불가, 캐디 가능. 디오픈 개최 7회.
문의: ++44 (0) 1241 802 270 www.carnoustiegolflinks.co.uk

글을 쓴 김상록 씨는 전 세계 수많은 베스트 코스를 라운드 한 구력 26년 핸디캡 6인 골퍼다. 영국과 싱가포르를 번갈아 거주하는 김 씨는 쿠알라룸푸르 트로피카나 회원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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