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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축구 그 이상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 올드 트래포드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맨체스터)=정종훈 기자] 다소 우중충했던 날씨가 경기 당일이 되자 거짓말처럼 맑아졌다. 이날은 26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 선덜랜드의 프리미어리그(PL) 18라운드 경기가 있는 날이었다. 거리에는 붉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활보했고, 맨체스터의 이동수단 중 하나인 트램에는 사람이 북적였다. 트램 안에서부터 응원가는 시작됐다. 맨유의 상대 팀인 선덜랜드 소속이었던 아담 존슨을 희롱하는 구호를 외쳤다(아담 존슨은 미성년자 성매매로 징역 6년 형을 선고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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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트래포드에 들어서기 전에 머플러를 파는 트럭들이 쭉 서있다.


올드 트래포드와 제일 가까운 익스체인지 퀴이(Exchange Quay) 역에 내린 뒤 사람들은 작은 다리를 건넜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음식을 가득 채운 푸드 트럭들이 즐비했다. 이뿐만 아니라 직접 매치데이 머플러를 제작해 파는 자영업자들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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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늘 소지품 검사를 철저히 한다. 최근 독일 베를린에서 일어난 테러 때문인지 더욱 더 민감하게 진행하고 있다.


최근 유럽은 어느 곳이든 테러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경기 입장 전, 가방 및 물품 검사는 철저했다. 교도소와 같은 작은 통로를 통과하면 수많은 계단이 기다렸다. 조금 힘드는가 싶었을 때 정상에 도착했다. 그리고 많은 축구팬들이 북적이며 먹을거리와 술 한 잔을 즐기는 모습을 접했다.

또 한 번의 작은 통로로 관중석으로 들어서자 웅장한 올드 트래포드가 반겼다. 피치 위에서 선수들이 몸 풀 때는 관중석 곳곳에 빈자리가 보였지만, 경기가 시작하자 이내 모든 좌석이 꽉 들어찼다. 올시즌 하위권을 달리고 있는 선덜랜드와의 경기지만 맨유 팬들은 여지없이 그라운드를 찾아와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경기 시작 4분 전, 선수단이 입장하자 아나운서가 힘찬 목소리로 방송했다. 관중은 모두 기립하여 박수를 쳤다. 선덜랜드 팬들이 먼저 응원 구호를 외치자 이에 질세라 맨유 팬들은 더 큰 목소리로 응수했다. 재밌는 장면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아나운서가 오늘의 주심을 소개하자 관중은 약속이나 한 듯이 야유를 퍼부었다. 심판까지 속속 알고 있는 관중이 경기 전 '조금이라도 잘못 불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엄포를 놓는 모양새였다.

선덜랜드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됐다. 경기는 예상대로 맨유가 경기를 지배했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를 필두로 선덜랜드를 서서히 압박했다. 경기 중반, 선덜랜드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골문 앞에서의 헛발질로 아쉬움을 삼켰다. 조금씩 맨유의 팬들은 조용해졌고, 선덜랜드 팬들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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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좌측 수비수 블린트(우)가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선제골을 뽑아냈다. [사진=AP 뉴시스]


맨유가 다시 한번 분위기 반전에 나섰다. 폴 포그바의 크로스바 강타에 이은 드롭슛이 살짝 벗어났다. 전반 38분 결국 선제골을 맨유가 뽑아냈다. 즐라탄의 패스를 받은 블린트가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골문을 흔들었다. 조용했던 맨유 관중석은 모두 일어나 블린트의 이름을 연호했다. 마타의 아까운 프리킥이 빗나가며 전반은 맨유의 1-0 리드로 끝났다.

후반 시작도 관중들의 기립 박수로 시작됐다. 맨유가 전반의 흐름을 그대로 가져와 후반에도 적극적인 공격을 펼쳤다. 즐라탄과 포그바의 슈팅은 연이어서 영점 조절에 실패했다. 후반 17분 조제 무리뉴 감독이 첫 교체 카드를 빼 들었다. 주인공은 헨리크 미키타리안. 그는 지난 15라운드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부상을 당한 뒤 약 2주만의 복귀였다. 그의 맹활약이 맨유의 최근 상승세를 이끌었기 때문에 팬들은 그의 복귀를 열렬히 환영했다. 미키타리안은 들어오자마자 본인의 장기인 스피드를 살려 맨유의 공격 템포를 끌어 올렸고 적극적인 슈팅까지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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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1골 2도움의 맹활약을 펼쳤다. [사진=AP 뉴시스]


잠잠했던 경기 분위기가 두 번째 골로 달아올랐다. 후반 37분 포그바가 선덜랜드로부터 공 소유권을 빼앗은 뒤 즐라탄에게 찔러줬고 이를 즐라탄이 실수 없이 마무리했다. 이날 경기에서 즐라탄의 골 결정력이 다소 아쉬웠지만. 중요할 때 그의 능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웃기면서도 슬픈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안데르 에레라가 벤치로 들어가자 기립하여 박수를 쳐줬고, 대신해서 들어온 마루앙 펠라이니가 피치를 밟는 순간 팬들은 야유를 퍼부었다. 최근 펠라이니가 저조한 경기력으로 언론과 팬들의 질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맨유가 고삐를 더 당겼다. 즐라탄이 오른쪽 측면에서 올린 것을 미키타리안이 환상적인 스콜피온 킥으로 쐐기를 박았다. 관중석에서는 “Unbelievable(믿을 수 없다!)”는 소리가 연신 터져 나왔다. 선덜랜드가 간신히 영패를 면했다. 후반 막판 보리니의 환상적인 드롭슛으로 만회골을 뽑아냈다. 맨유가 선덜랜드를 3-1로 꺾고 리그 4연승을 질주하며 팬들의 응원에 회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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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용품을 파는 메가스토어에서 볼 수 있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커다란 사진.


경기에서 이겨 신이 난 팬들은 메가스토어로 향했다. 이날 1골 2도움을 기록한 즐라탄의 유니폼이 쉴 새 없이 팔려나갔다. 메가스토어 안에도 즐라탄의 얼굴을 찾아볼 수 있었다. PL에서의 첫 시즌이지만, 그의 입지가 팀 내에서 얼마큼 단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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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안드레 에레라가 장애인들에게 싸인을 해주고 있다.


발걸음을 돌려 선수들이 나오는 곳으로 향했다. 박지성과 맨유의 마케팅 탓인지 여타 구장보다 더 쉽게 아시아인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선수들이 나올 때 마다 팬들은 그들의 이름을 크게 외치며 사인을 요청했다. 그중 다소 인상적인 모습을 포착했다. 장애인들을 위한 존을 따로 설치해 좀 더 수월하게 싸인 및 사진을 받을 수 있었다. 선수들은 몸이 불편한 그들을 찾아가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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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후안 마타가 자신을 기다린 팬들을 위해 사진 촬영 및 사인 요청에 모두 응했다.


이날 가장 많은 팬의 사랑을 받은 것은 후안 마타였다. 마타는 자신을 기다려준 팬들을 위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 명, 한 명 모든 이들의 사인 및 사진 요청에 응해줬다. 사진을 찍은 어린 팬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펄쩍펄쩍 뛰기도 했다. 먼 곳에서 맨유의 경기를 보러 온 한국인들도 “하나 건졌다”며 기뻐했다.

맨유는 최근에 알렉스 퍼거슨이 은퇴한 뒤로 다소 침체기를 겪고 있다. 하지만, 팬들은 즐겁다. 비단 최근 상승한 경기력과 성적이 전부가 아니다. 축구 자체만이 아닌 그 이외의 것을 즐길 수 있는 올드 트래포드가 있기 때문이다. 맨유는 무리뉴를 필두로 조금씩 과거의 명성을 찾고 있고 팬들도 이에 묵묵함으로 기다리고 있다. 맨유는 올드 트래포드와 함께 다시 일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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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올드 트래포드를 찾아주는 팬들과 함께 조금씩 일어서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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