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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깨비에 푹 빠진 성은정 “필드 밖에선 개구쟁이예요”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양재)=정아름 기자] “(드라마) 도깨비 보셨어요? 완전 재밌어요. 드라마 보면서 든 생각인데 저도 가끔은 도깨비였으면 좋겠어요. 막 나쁜 사람들 혼내주는 거 너무 멋있지 않아요?”

뭇 여성들의 마음을 훔치고 있는 도깨비의 바람이 성은정(17 영파여고2)에게도 불었나보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18세 고교생이다. 타고난 활발한 성격 탓에 좀처럼 우울할 틈도 없다는 그가 유일하게 차분한 곳이 바로 필드 위다. 흥분하는 일이 거의 없기에 표정변화도 없는 편에 속한다. 성은정은 “그래서 필드 밖에만 나오면 이렇게 까부는지도 모르겠다”며 개구진 미소를 지었다.

높아진 관심만큼이나 상처도 늘었다.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주로 부각되다보니 ‘버르장머리 없어 보인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생겼다. “악플들에 상처도 많이 받죠. 덩치는 커도 나름 소녀 감성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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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정은 티샷 입스라는 난관을 극복하고 잊지 못할 2016년을 만들었다. [사진=채승훈 기자]


슬럼프, 터닝포인트, 2016년

올해 초 슬럼프가 찾아왔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티샷 입스(불안감으로 인해 정상적인 스윙을 못하는 상태)’였다. 분해서 우는 날도 많았다. “가장 열심히 했던 시기였어요. 더 잘하고 싶어서 일찍 일어나고 연습도 열심히 했는데 너무 안 맞으니까 진짜 골프에 배신당한 것 같았어요.” 성은정이 태어나 처음 맛 본 가장 큰 ‘실패’였다.

지쳐가고 있을 때 즈음 김주형 프로를 만난 것이 터닝포인트가 됐다. “은정아, 넌 어떤 스윙을 하더라도 타이밍만 맞으면 똑바로 간다.” 장타자로 유명한 김 프로의 말 한 마디가 큰 울림을 줬다. 이후 타이밍에 집중한 성은정은 여자 선수 가운데 사상 최초로 같은 해 US걸스주니어챔피언십과 US위민스아마추어챔피언십을 석권하는 대업을 이뤘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교훈이 딱 들어맞았던 한 해였다.

첫 휴식기 농구장에 푹 빠지다

시즌만큼이나 바쁜 비시즌이었다.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한 초등학교 4학년 이후로 처음 가져본 오프시즌. 성은정은 “지금쯤이면 한창 훈련하고 있을 시기죠. 시즌 때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지 않으면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지 않은 기분이 들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해야 할 것들을 하기는 하지만 편하게 일어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서 좋아요”라며 늦잠의 자유라는 소박한 행복에 감사해했다.

농구선수 출신인 부모님의 영향일까. 최근 성은정은 농구 직관의 매력에 푹 빠졌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가보다. ‘농구선수 성은정’을 상상도 해봤지만 키가 너무 작아서 경쟁력이 없었을 거라고 단호히 평가 절하했다. 창원LG의 팬이라고 밝힌 성은정은 최근 LG와 KGC의 경기를 관람하기 위해 안양실내체육관을 찾았다. 골프장과 사뭇 다른 농구장의 풍경들이 낯설었지만 싫지는 않았던 눈치다. “뭘 먹으면서 경기를 볼 수 있는 게 되게 좋았어요. 골프는 앉아서 볼 수 없는데 앉아서 볼 수도 있구요. 치어리더 분들이 나와서 응원해주시는 것도 재밌었어요.” 홈팀 KGC팬들의 야유가 서러웠다는 성은정은 LG 홈경기를 보러가 이 설움을 풀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무려 9년 만에 스키장도 찾았다. 당초 목적지는 리조트였으나 눈앞에 펼쳐진 설원을 뒤로 한 채로 돌아설 수는 없었다. 부상 위험 탓에 즐기지 못했던 스키를 이 날은 원 없이 탔다. 부츠를 신고 눈 위에 오르니 타는 법을 몸이 기억해냈다. 성은정은 스키를 타면서 다시금 하체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쉬는 순간에도 성은정의 머릿속에는 온통 ‘골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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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망받는 유망주인 성은정도 필드 밖에선 영락없는 10대 소녀다. [사진=채승훈 기자]


골퍼가 아닌 여고생 성은정

세대를 넘나드는 여고생의 최대 관심사는 바로 ‘사랑’이 아닐까. 성은정은 최근 ‘오베라는 남자’를 읽고 연애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정말 인상 깊게 읽은 모양인지 거침없이 줄거리를 요약해서 들려줬다. “사실 전 성격이 나쁜 사람과는 연애를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막, 성격이 나쁜 사람은 연애도 못 할 것 같고. 여튼 그런 선입견 아닌 선입견이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이후로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사랑으로 덮어줄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 근데 뭐 결혼 대상으로는 잘 모르겠어요.” 솔직함이 묻어나는 10대 소녀의 연애관이다.

골프를 하지 않았더라면 성은정은 어떤 학생이었을까. 또래 친구들은 고등학교 3학년 진학을 앞두고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로 가득 찬 일상. 성은정은 “(공부를) 한다면 했겠지만 공부와는 안 맞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사람들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제일 쉽다고 그러시더라구요. 하지만 친구들에게 하루 종일 운동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요. 똑같은 것 같아요.”

어린 시절부터 항상 ‘운동선수’라는 꿈을 꿨던 성은정은 요즘 들어 ‘다른 직업을 가졌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부쩍 한단다. 취업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회사 일이 끝나고 친구도 만나고, 여가생할도 즐길 수 있는 삶을 동경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일 테지만 운동으로 가득 찬 그의 삶에서는 평범함조차 때로는 사치처럼 느껴질 터.

성은정이 좋아하는 노래라며 들어보라고 추천해준 노라조의 ‘형’ 가사가 귓가에 맴돈다. ‘더 울어라, 젊은 인생아. 져도 괜찮아, 넘어지면 어때. 살다보면 살아가다보면 웃고 떠들며 이날은 넌 추억할테니.’ 어쩌면 그는 수없이 지고 넘어지며 한 단계 더 성장해왔는지도 모른다. 짧은 재충전 후 다시 넘어질 준비를 마친 성은정의 ‘2017년’은 어떤 모습으로 추억될까. 다음 시즌을 위해 호주로 떠나는 그의 발걸음이 가볍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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