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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전드 오브 풋볼]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 ‘축구계 참사 WORST 3’

[헤럴드경제 스포츠팀=김유미 기자] 지난 3일 열린 맨체스터시티와 첼시의 프리미어리그 14라운드 경기에서 디에고 코스타와 윌리안은 득점 직후 왼쪽 팔에 두른 검은 띠를 가리켰다. 같은 날 한국에서 열린 FA컵 결승전에서도 조나탄이 선제골을 터트린 뒤 검은 띠에 입맞춤했다. 세 선수는 모두 브라질 출신으로, 비행기 사고로 희생된 브라질 프로축구팀 샤페코엔시를 이렇게 추모했다.

샤페코엔시의 사고는 가장 최근의 일이지만 이미 반세기 전에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1949년 이탈리아 세리에A의 토리노가 포르투갈 원정을 마치고 귀국하던 중 항공기가 추락해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등 탑승자 전원이 사망한 수페르가 항공 참사부터, 1958년 맨체스터유나이티드 선수 대부분을 잃게 만들었던 뮌헨 참사 등 수많은 사건사고들이 축구계를 뒤흔들었다.

이러한 참사는 구단 역사에 있어 커다란 변곡점이었다. 팀이 한창 주가를 올릴 때 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팀들이 트라우마를 딛고 일어섰지만 이는 두 번 다시 일어나면 안 될 끔찍한 비극이다. 레전드 오브 풋볼, 이번 편에서는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최악의 축구계 참사 3건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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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풀 홈구장 안필드에 걸린 헤이젤 참사 추모 사인. [사진=리버풀FC 홈페이지]


리버풀의 첫 번째 비극, 헤이젤 참사

리버풀은 두 번의 큰 참사로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 그 중 첫 번째는 1985년 5월 29일 일어난 헤이젤 참사다. 당시 리버풀은 유러피언컵 결승에서 유벤투스와 만났다. 독일의 분데스리가는 하락세였고, 잉글랜드 풋볼리그와 이탈리아 세리에A가 몸집을 키워가던 시기였다.

이 시기는 훌리건이 기승을 부리던 때였고 그들은 세력을 과시하려 했다. 마침 1년 전 유벤투스 팬들이 리버풀 팬들을 구타한 사건으로 두 팀의 훌리건들은 복수심에 차 있었다. 경기 시작 전부터 유벤투스 팬들이 좌석 사이의 벽 너머로 이물질을 던졌고, 이에 흥분한 리버풀 팬들은 흉기를 들고 서포터 지역을 이탈해 중립 구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훌리건들을 포함한 일반 관중들까지 폭력의 표적이 됐고 관중석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현장을 벗어나려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출구로 몰리면서 7m에 달하는 콘크리트 벽이 무너져 내렸다. 결국 39명이 사망했고 45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폭력사태에도 경기는 계속됐고, 미셸 플라티니의 결승골로 유벤투스가 1-0으로 승리했다. 이 사건 직후 모든 잉글랜드 클럽은 5년 간 국제대회 출전 금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리버풀은 처음 10년을 선고받았지만 이후 7년으로 징계 수위가 낮아졌다. 당시 감독이었던 조 페이건은 감독직을 내려놓았다. 현재 리버풀의 홈구장인 안필드에는 헤이젤 참사를 기억하는 사인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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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4월 리버풀 팬들은 힐스버러 참사 희생자들을 떠올린다. [사진=FIFA 홈페이지]


사상 최악의 사건, 리버풀의 힐스버러 참사

리버풀의 수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1989년 4월 15일, 잉글랜드의 힐스버러 스타디움에서 96명의 관중이 사망한 끔찍한 사고가 일어난다. 바로 힐스버러 참사다. 현재 셰필드 웬즈데이의 홈구장으로 사용 중인 이 구장에서 당시 노팅엄 포레스트와 리버풀의 FA컵 준결승전이 열렸다. 힐스버러 스타디움은 홈 팬과 원정팀 팬을 구분해 격리하는 구조였다. 이 경기에서 리버풀 팬들에게는 경기장 한 쪽 구석만이 할당됐다.

주최 측은 경기 시작 15분 전까지 입장을 완료하려 했지만 이미 30분 전에 5,000명에 해당하는 많은 팬들이 몰려 들었다. 입장 도중 사고가 날 것을 우려한 경찰은 출구 전용 문을 일부 개방했고, 팬들은 이곳을 통해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이미 1,600명의 수용 인원을 다 채운 상황에서 2배 이상의 팬들이 추가로 입장했고 펜스 앞쪽의 사람들이 깔리기 시작했다. 2층 스탠드와 펜스를 타고 오르는 팬들이 생기자 경기는 중단됐다. 펜스 앞쪽 팬들이 문을 열었지만 관중들이 쏟아지면서 94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부상자는 766명이었다. 병원에 실려 간 뒤 사망한 2명을 포함해 총 희생자는 96명으로 늘어났다.

희생자의 연령은 10세의 어린 소년부터 60대 후반의 노인까지 다양했다. 10대와 20대가 총 78명이었고, 자매와 형제, 부자 관계였던 가족들도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다. 당시 가장 어린 희생자였던 10살의 소년은 훗날 리버풀의 캡틴이자 레전드가 되는 스티븐 제라드의 또래 사촌형이었다. 제라드는 이 사고로 프로선수의 꿈을 키웠다고 전해진다.

사고 후 영국 전역에서 추모 물결이 일었다. 리버풀은 모든 경기를 연기했고, 아스날 등도 경기를 취소하며 희생자들을 기렸다. 유러피언컵에서 AC밀란의 팬들이 리버풀의 응원곡 ‘You’ll Never Walk Alone’을 합창한 일도 있었다. 리버풀은 힐스버러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의미에서 엠블럼의 새(리버 버드) 양 옆에 참사 기념비의 성화를 본뜬 두 개의 불꽃을 새겨 넣었다. 정부는 사고를 훌리건의 탓으로 돌렸지만, 20여 년 후 경찰 등 관계자들의 부주의에 의한 사고로 밝혀졌다.

지난 13-14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는 힐스버러 참사 25주기를 맞이해 특별한 추모행사를 가졌다. 참사 당시 전반 6분에 경기가 중단됐던 것을 기억해 해당 라운드의 모든 경기 킥오프 시간을 7분대로 맞췄다. 선수들은 6분 동안 입장, 1분 간 묵념을 진행했다.

두 번의 큰 참사를 겪은 리버풀은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6년 현재까지 26년 넘게 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지 못하고 있으며, 2000년대 초반 챔피언스리그에서의 활약 역시 리그 부진으로 퇴색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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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잔해의 처참한 모습. 사고 당시 샤페코엔시 선수단이 탑승해있었다. [사진=AP 뉴시스]


한 팀의 날개를 꺾은 인재(人災), 샤페코엔시 참사

‘하늘도 무심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사고였다. 지난 달 29일, 브라질의 축구팀 샤페코엔시는 코파 수다메리카나 결승전을 치르기 위해 콜롬비아로 향하는 길이었다. 4부 리그에서 시작해 1부 리그로 승격하는 기적을 이룬 샤페코엔시 선수들에게 이 경기는 꿈의 무대였다. 하지만 그들은 경기를 치르지도, 고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했다. 항공기 추락사고 때문이었다. 이 사고로 81명의 탑승자 중 71명이 사망했다.

결승 상대였던 콜롬비아의 아틀레티코 나시오날은 샤페코엔시에 우승을 양보했다.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은 3일 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전 세계 축구장에서는 경기 전 묵념이 행해졌고, 많은 선수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희생자들에게 추모의 메시지를 전했다.

브라질에 남아 코파 수다메리카나 결승 2차전 홈경기에서 자신의 통산 300번째 경기이자 선수 은퇴 경기를 치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던 골키퍼 니발도는 곧바로 은퇴를 선언했다. 샤페코엔시는 당분간 유소년 선수들로 팀을 꾸려갈 예정이라고 전해졌다. 이에 호나우지뉴, 리켈메 등의 은퇴 선수들이 샤페코엔시에서 대가 없이 선수로 뛰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브라질 축구팀 코린치안스는 2017 시즌 선수 무상 임대와 향후 3년 간 2부 리그 강등 면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단순 사고인줄 알았던 항공기 추락이 연료 부족으로 인한 인재였음이 드러나면서 전 세계 축구계는 더욱 큰 충격과 분노에 빠졌다. 라미아 항공 최고경영자를 비롯해 정비사 등의 관계자들은 조사 끝에 구속된 상태다.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 축구계 참사 WORST 3’에 대해서는 ‘축덕들이 만드는 팟캐스트 해축야화 43화’를 통해 자세히 들을 수 있다. 해축야화는 매주 금요일에 1부가, 토요일에 2부가 업로드 되며, 팟캐스트 어플 ‘팟빵’을 통해 들을 수 있다.

* 레전드 오브 풋볼은 축구 팟캐스트 ‘해축야화’의 한 코너입니다. 아래 URL을 클릭하면 바로 방송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0698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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