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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완장 앞에 주눅 드는 스포츠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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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피아 경영학>이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번역서가 하나 있다. 저자부터가 ‘V’라는 익명을 쓴다. 실제 마피아 조직에 몸을 담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는데, 어쨌든 책 내용은 제법 구체적이다. 실제 범죄 사례가 다수 나오고, 폭력조직에서 살아남는 방법과 조직을 운영하는 방법을 기업의 세계와 비교해서 묘사했다. 책 내용 중 아주 인상적인 대목이 하나 있다. ‘섹스보다 짜릿한 것은 남에게 명령하는 것이다.’ 권력과 그에 대한 인간의 갈망을 드러낸 윤흥길의 소설 <완장>이 절로 떠올랐다.

# 얼마 전 한 대학교에서 ‘김영란법 바로알기’라는 특강을 들었는데, ‘하급자는 상급자에게 선물이나 향응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눈길을 끌었다. 학교를 예로 들면 교장, 교감이 평교사에게 제공하는 식사는 금액 제한이 없지만, 반대인 경우 사교·의례의 목적이라 해도 3만 원 이내에서만 허용된다. 법 정신이 상급자 즉, 명령하는 사람을 엄격히 다루고 있는 것이다. ‘섹스보다 짜릿한 명령(권력)’이 부당하게 사용돼선 안 된다는 취지인데, 역설적으로 현실에서는 그런 경우가 많다는 반증일 것이다.

# ‘혜실 게이트’가 스포츠계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최순실 씨 일당이 스포츠를 부정한 치부의 수단으로 삼고, 특정종목을 대학진학 및 부당한 학사관리에 이용한 것이 드러나 공분을 사고 있다. 이어 ‘체육계 소통령’이라는 김종 전 문체부차관이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됐다. 실제로 김종은 체육계에서 ‘마피아 보스’ 같았다(마치 대통령이나, 최순실처럼). 그가 공부한 한양대, 뉴멕시코대학 출신들은 영전했고, 그의 말 한 마디면 웬만한 일은 술술 풀렸다. 심지어 그가 박태환(수영)을 겁박하고, 김연아(피겨스케이트)를 싫어한 것도 알려졌다. 손연재(리듬체조)는 생뚱맞은 체조행사에 참여한 것 때문에 구설에 올랐다. 국민적인 스포츠영웅들도 쥐락펴락했으니, 체육계 소시민은 그 쩌렁쩌렁한 명령 앞에서 오금을 못 폈을 게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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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으로부터 올림픽 출전 포기를 종용받은 박태환(오른쪽). 왼쪽은 노민상 감독. [사진=뉴시스]


# 수영감독 노민상 씨와 21일 저녁 제법 긴 시간을 통화했다. 그는 박태환을 발굴하고, 지금도 가르치고 있는 지도자다. 올해 환갑을 넘기는 노 감독은 김종 전 차관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그 X들’이라며 거친 표현을 써가며 분개했다. “태환이는 물론, 나까지 죽이려고 했다.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다.” 그렇게 부당한 처우를 받았는데 왜 그동안은 가만히 있었느지를 물었다. “태환이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수영 영웅이지만, 금지약물 복용으로 국민적 비난을 받지 않았는가? 올림픽에 출전시켜 달라고 무릎 꿇고 비는 상황이었는데 어떻게 부당함에 항의를 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 시국이 이러니, 스포츠계에서 먹고사는 까닭에 “왜 하필 (그들이 건드린 게)스포츠냐?”는 얘기를 종종한다. “만만해서 그렇겠지”라며 우문우답을 주고받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지난 주 그 자명한 기본원리를 접했다. 한체대의 하웅용 교수는 “스포츠는 기본적으로 규칙을 중시한다. 다른 문화 영역에서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는 게 창조적이고, 의미 있는 행위지만 스포츠에서는 규칙을 지키는 것이 생명과도 같다. 기본적으로 보수적”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한 실기교수는 “운동세계에서는 명령을 내리고, 받는 것에 아주 익숙하다”고 말했다. 그럴 듯하다. 어쨌든 부인할 수 없는 것이 한국에서 스포츠는 정치의 하위영역이다. 정치권력의 완장에 기를 못 편다. 그렇다면 김영란법처럼 스포츠가 정치에 나서는 것은 허용해도, 정치가 스포츠를 흔드는 일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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