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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좌충우돌 여자야구 도전기] (8) ‘최초’가 된 그녀들, 한·미·일 여자야구 선수 열전 - 한국편
‘여자가 야구를 해요?’

야구를 시작하고 심심치 않게 들었던 말이다. 전국 47개 여자야구팀이 있는 2016년에도 대중의 일반적인 인식이 이러한데 1990년대는 오죽했을까. 여자가 야구를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대였다. 1996년 삭제되긴 했으나 야구규약에도 ‘의학적으로 남자가 아닌 자’는 부적격 선수로 분류되어 있었다. 금녀(禁女)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던 야구에서 큰 족적을 남긴 한·미·일 여자야구 선수 3명이 있다.

먼저, 한국이다. 요 근래 가장 핫한 여자야구 선수는 김라경(17 후라)이다. 2016 세계여자야구월드컵 호주전에서 그의 눈물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하지만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사람 앞에선 김라경도 여자야구계 라이징 스타에 불과하다. 그녀의 인생에서 ‘야구’와 ‘최초’라는 단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수식어였다. 주인공은 한국여자야구 역사의 산증인 안향미(3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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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야구 역사의 산증인 안향미(왼쪽). [사진=뉴시스]


‘최초’의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동생을 데리고 다니다 야구에 입문하게 된 안향미는 경원중 졸업을 앞두고 첫 번째 고비와 맞닥뜨렸다. 체육특기생 종목에서 야구는 여자 운동경기에서 제외돼 야구부가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할 수 없게 된 것. 수차례 탄원서를 제출한 결과, 서울교육위원회가 체육특기생으로 덕수상고에 진학할 수 있도록 특별 배려해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악바리였던 그녀였지만 운동능력에서 남자 선수들과 점점 차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역사적인 순간도 있었다. 때는 1999년 4월 30일. 제 33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덕수상고와 배명고의 준결승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야구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여자 선수의 전국대회 등판 기록이 쓰여진 역사적인 순간. 결과는 다소 허무하게 끝이 났다. 상대 1번 타자 최순호를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시킨 뒤 곧바로 교체됐다. 공 3개를 던졌고, 최고 구속은 105km를 찍었다. 승계주자 실점으로 안향미의 자책점은 1점이 됐다.

고교 졸업 후 안향미에게 닥친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대학은 기숙사 문제해결에서 난색을 표했고, 프로팀은 기량 부족을 이유로 입단을 거부했다. 미국여자야구팀인 뉴잉글랜드 베이스볼리그 산하 워터버리 다이아몬즈팀과 협상에 나섰으나 계약 성사 직전에 불발되며 아쉬움을 삼켰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 간 안향미는 도쿄 드림윙스에 입단, 4번 타자 겸 3루수로 2년간 활약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탄생한 것이 바로 최초의 사회인 여자야구 팀인 ‘비밀리에’다. 비밀리에를 시작으로 여러 팀들이 생겨났고, 그 결과 2007년 한국여자야구연맹 창립까지 이어졌다. 물론 다시 엘리트 야구로 돌아갈 기회도 있었다. 2005년 감사용 감독이 이끄는 국제디지털대 입단을 타진했으나 숙소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결국은 물거품이 됐다. 안향미의 파란만장한 삶에 영화계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으나 영화 제작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011년 호주 유학을 떠나 현재까지 호주에서 생활 중인 안향미는 우리 팀(서울 W다이노스 여자야구단)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감독님(한재빈)과는 경원중 시절 소프트볼 대표팀 생활을 함께 했으며, 1대 주장(이지은)은 안향미가 감독으로 있었던 선라이즈 팀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이런 인연이 연결고리가 되어 안향미는 W다이노스의 명예선수로 위촉돼 등번호 19번을 받았다. 앞으로 계속해서 야구에 매진하다보면 언젠가 여자야구의 역사와 함께 그라운드를 누비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빠져본다.

*정아름 기자는 눈으로 보고, 글로만 쓰던 야구를 좀 더 심도 깊게 알고 싶어 여자야구단을 물색했다. 지난 5월부터 서울 W다이노스 여자야구단의 팀원으로 활동 중이다. 조금 큰 키를 제외하고 내세울 것이 없는 몸으로 직접 부딪히며 야구와 친해지려고 고군분투 중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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