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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전드 오브 풋볼] “아, 옛날이여!” 전성기 체코를 이끈 3인방
[헤럴드경제 스포츠팀=김유미 기자] 피파랭킹 40위, 전 세계 축구 리그 순위 15위…. 이 타이틀의 주인공은 한 때 유로 준우승과 피파랭킹 2위에 빛났던 체코다. 1990년대 중후반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 체코는 유로 1996 결승에서 독일과 맞붙어 1-2로 패해 준우승을 거뒀고, 8년 뒤 유로 2004에서 강력한 우승후보였지만 4강에서 돌풍의 그리스를 만나 0-1 석패했다. 이듬해 체코는 피파랭킹 2위에 랭크됐는데, 이 기록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은 체코의 역대 최고 성적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체코의 축구 리그가 유럽 10대 리그에 겨우 속할까 싶을 만큼 쇠락했지만, 그들이 유럽축구를 이끌던 시절도 있었다. 체코의 바로 그 ‘리즈 시절’은 대회 3위를 차지했던 유로 2004에서 정점을 찍었다. 이번 레전드 오브 풋볼에서는 체코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현역에서 물러났거나 선수 인생의 말년을 보내고 있는 체코의 에이스 3인방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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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cm의 장신 공격수 얀 콜레르는 공중볼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사진=UEFA 홈페이지]


얀 콜레르 - 골키퍼 출신의 고공 폭격기

얀 콜레르는 체코 국가대표 사상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한 공격수다. 202cm의 장신으로, 스킨헤드가 인상적인 선수였다. 공중볼에 능했고, 개인기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클럽 커리어에서 547경기 232골, A매치 91경기 55골을 기록했다.

콜레르는 5세의 어린 나이에 체코의 스메타노바로타에 입단해 축구를 시작했다. 16세에는 밀레프스코의 유소년 팀으로 소속을 옮겼다. 이때까지 콜레르는 큰 키를 발휘해 골키퍼로 활동했다. 1995년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공격수로 전향해 프로 데뷔를 치렀다. 갑작스런 포지션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지 못하면서 첫 두 시즌 동안에는 29경기에 출장해 5골에 그쳤다. 이후 벨기에의 로케런을 거쳐 1999년 벨기에 명문 구단 안더레흐트로 이적했다. 안더레흐트에서의 마지막 시즌에 기량이 상승하면서 1부 리그 득점왕과 골든슈를 수상했다.

99-00시즌이 끝나고 콜레르는 분데스리가의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로 이적했다. 01-02시즌 도르트문트가 리그 우승을 차지하던 당시 콜레르는 리그에서 11골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흥미로운 점은 콜레르의 골키퍼 경력이 10대에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 02-03시즌 바이에른 뮌헨과의 리그 경기에서 골키퍼가 퇴장 당하자 교체 카드가 없었던 도르트문트는 콜레르에게 골키퍼 장갑을 떠넘겼다. 이 때 남은 30분가량을 무실점으로 이끈 콜레르는 분데스리가 위클리 베스트11에 골키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06년 팀을 떠나기 전까지 콜레르는 도르트문트에서 137경기 59골을 기록했다.

이후 AS모나코와 뉘른베르크를 거쳤지만 기량이 떨어지면서 제대로 된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2008년 러시아 1부 리그인 소베토프로 이적했고, 다시 3부 리그 AS칸에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콜레르의 국가대표 경력은 1999년부터였다. 안더레흐트에서 날개를 펴기 시작한 시점에 대표 팀에 처음 발탁됐고, 유로 2000 지역예선에서 6경기 6골을 터트리는 활약을 선보였다. 비록 체코는 유로 2000에서 유럽 강호 네덜란드, 프랑스, 덴마크와 한 조에 속하면서 1승 2패로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콜레르의 활약이 없었다면 본선 진출조차 어려웠을 상황이었다.

체코는 유로 2004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독일, 네덜란드, 라트비아와 같은 조에 묶였고, 이 조는 대회의 ‘죽음의 조’가 됐다. 하지만 체코는 조별예선에서 전승을 거두며 8강에 진출했다. 8강에서는 덴마크를 상대로 3-0 완승을 거뒀는데, 이 때 콜레르는 선제골을 기록했다. 준결승 상대는 그리스였다. 당시 4경기에서 10골을 터트리며 공격 축구를 구사하던 체코와, 4실점으로 수비에 강한 그리스의 맞대결이었다. 많은 이들이 체코의 우세를 예상했지만 파벨 네드베드의 이른 부상으로 인해 공격에 차질이 생겼고, 결국 체코는 그리스에 0-1로 패하며 3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체코를 꺾고 결승에 진출한 그리스는 우승을 차지했다. 이 때 체코에서는 페트르 체흐 골키퍼, 파벨 네드베드, 밀란 바로시가 대회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당시 체코의 투톱은 ‘투 타워(two tower)’로 불렸고, 콜레르의 별명은 ‘인간 등대(human lighthouse, 공교롭게도 머리가 민머리였다)’였다.

콜레르는 2006 독일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예선 첫 경기에서 득점포를 가동했지만 활약은 여기까지였다. 부상을 입어 이후에는 출전이 어려웠고 결국 체코는 예선에서 탈락했다. 유로 2008에서도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면서 부진이 이어졌다. 콜레르는 2010 남아공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국가대표 복귀를 선언했지만 슬로바키아와의 맞대결 후 다시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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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바로시는 소속팀에서의 활약보다 대표 팀에서의 활약이 뛰어난 애국자 선수였다. [사진=UEFA 홈페이지]


밀란 바로시 - 애국 스트라이커, 화려한 국가대표


체코의 스트라이커 바로시는 비간티체, 로즈노프 p. 라드호슈템, 바니크 오스트라바 유스에서 성장했고, 1998년 18세의 나이에 체코의 바니크 오스트라바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체코 대표로 출전했지만, 당시에는 무명이었다. 바로시는 2002년 그의 재능을 주목한 당시 리버풀의 감독 제라르 울리에의 눈에 띄면서 리버풀로 이적했다. 초기에는 쟁쟁한 선수들에 밀려 벤치를 지켰지만, 02-03시즌 27경기에서 9골을 넣으며 시즌을 마쳤다. 그 다음 시즌에는 심각한 무릎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오랜 공백기를 보냈다.

바로시는 2004년 체코 국가대표로 유로 2004에서 출전해 5골을 기록하며 득점왕과 대회 베스트 11에 올라 빅클럽의 러브콜을 받았다. 04-05시즌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가 관심을 보였지만, 리버풀에 남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바로시는 이 시즌에 리버풀에서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라파엘 베니테스와 마찰을 일으키면서 독일에서 개최되는 FIFA 월드컵을 앞두고 잉글랜드의 아스톤 빌라로 이적했다. 이적 후 부진으로 그의 활약을 기대하던 많은 팬들의 실망을 샀다.

그런데 2006 독일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5골을 터트리면서 체코의 본선 진출을 견인했다. 이후 2007년 욘 카레브와 트레이드 되면서 리그앙의 올림피크 리옹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소속팀에서의 부진은 계속됐다. 06-07시즌 12경기 4골, 07-08시즌 12경기 3골에 그쳤으며, 2008년에는 포츠머스에 임대로 이적됐지만 이곳에서도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는 못했다.

2008년 8월에는 터키의 갈라타사라이로 소속을 옮겼다. 08-09시즌 팀은 리그 5위에 그쳤으나, 바로시는 20골을 터트리며 득점왕을 차지했다. 2009년 4월 매춘부와 함께 레스토랑에서 파티를 한 사실이 발각되면서 토마시 우이팔루시, 마레크 마테요프스키, 라도슬라프 코바치, 마르틴 페닌, 바츨라프 스베르코시 등과 함께 대표 팀에서 추방됐지만 A매치에서 어려움을 겪던 체코는 그 해 8월 벨기에와의 친선 경기에서 바로시를 다시 불러들였다.

이후 터키를 떠난 바로시는 바니크 오스트라바, 안탈리아스포르를 거쳐 다시 바니크 오스트라바로 돌아갔고, 최근에는 슬로반 리베르츠에서 선수 생활 말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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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 네드베드는 체코와 유벤투스의 '심장'이었다. [사진=FIFA 홈페이지]


파벨 네드베드 ? 체코 전성기의 시작과 끝

체코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꼽히는 파벨 네드베드는 1972년생으로, 선수 시절 주로 윙어와 공격형 미드필더를 소화했다. 두클라 프라하에서 프로 데뷔를 했고, 체코 명문 구단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자신의 가치를 알리기 시작했다. 20살부터 스파르타 프라하에서 4시즌 동안 98경기 23골을 기록한 네드베드는 체코의 현재이자 미래로 평가받으며 성장을 거듭했다. 소속팀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1994년부터 체코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게 됐다. 유로 1996에서 맹활약하는데, 네드베드는 체코의 준우승에 큰 공을 세웠다.

유로에서의 활약은 당시 유럽 최고의 리그였던 세리에A 이적으로 이어졌다. 세리에A 7공주 중 한 팀이었던 라치오로 이적했는데, 그곳에서 알렉산드로 네스타, 에르난 크레스포,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등의 스타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체코의 유망주에 불과했던 네드베드는 라치오에서 월드클래스 선수로 발돋움했고, 1996년부터 2001년까지 138경기에 출장해 33골을 기록했다. 우승컵도 4번이나 들어 올리면서 라치오의 전성기에 일조했다.

많은 빅클럽들이 네드베드를 원했다. 당시 지네딘 지단의 이적으로 공백이 생기면서 유벤투스가 4,120만 유로라는 거액의 이적료를 제시했고, 네드베드는 라치오에 끝까지 좋은 인상을 남기면서 유벤투스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첫 시즌에는 다소 부진했지만 이내 적응한 네드베드는 유벤투스의 아이콘으로 성장했다. ‘두 개의 심장’이라고 불릴 정도로 왕성한 활동량을 자랑했고, 왼발 오른발 가리지 않는 스타일 덕에 그는 유벤투스의 심장이 됐다.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 네드베드는 2004년 체코의 주장으로 유로 2004에 나섰다. 죽음의 조였지만 연승으로 준결승에 올랐다.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체코는 준결승에서 0-1로 패했고, 이 경기에서 네드베드는 전반 33분 무릎 부상으로 교체아웃 됐다. 대회에서 무득점에 그쳤지만, 공수에서 보여준 활발한 움직임으로 그는 대회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다.

유로 2004 직후 대표 팀 은퇴를 선언한 네드베드는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유럽예선을 치르기 위해 대표 팀에 복귀했다. 위기의 체코를 구해낸 네드베드는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 팀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대표 팀 은퇴 후에는 유벤투스에서 계속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팀이 승부조작 혐의를 받고 2부 리그로 강등됐을 때에도 그는 잔루이지 부폰과 함께 팀을 지키는 의리를 보여줬다. 그리고 다시 유벤투스를 세리에A로 올려놓는 데 기여했다. 유벤투스에서 244경기에 나서 51골을 기록한 네드베드는 2009는 은퇴했다. 현재 그는 유벤투스의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체코의 전성기 유로 2004의 핵심 3인방에 대해서는 ‘축덕들이 만드는 팟캐스트 해축야화 37화’를 통해 자세히 들을 수 있다. 해축야화는 매주 금요일에 1부가, 토요일에 2부가 업로드되며, 팟캐스트 어플 ‘팟빵’을 통해 들을 수 있다.

* 레전드 오브 풋볼은 축구 팟캐스트 ‘해축야화’의 한 코너입니다. 아래 URL을 클릭하면 바로 방송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0698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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