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김상록의 월드 베스트 코스 기행 2] 로크로몬드, 메리 여왕과 스코티시오픈의 명소
이미지중앙

로몬드 호수에 위치한 로크로몬드.


스코티시오픈을 15년간 개최한 로크로몬드(Loch Lomond)는 스코틀랜드가 자랑하는 프라이비트 멤버십 코스다. 중세 성곽같은 클럽하우스에 산과 호수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스코티시오픈의 대명사
1972년에 시작한 유러피언투어의 대표적인 대회인 스코티시오픈은 브리티시오픈이 개최되기 일주일 전, 즉 7월 두 번째 주에 개최되어 브리티시오픈과의 시너지를 내는 대회다. 지금은 스코틀랜드의 명 코스를 순회하지만 하지만, 지난 1996년부터 무려 15년간 한 코스 로크로몬드에서만 개최했었다.

지난 1993년 개장해 역사가 비교적 짧은데도 이 코스의 명성이 빠르게 확산된 것은 스코티시오픈 코스라는 이름과 함께 프라이비트 클럽으로 멤버가 동반되지 않으면 라운드가 불가능 한 규정,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빼어난 경관 덕분이다.

로크로몬드 회원 중에는 콜린 몽고메리, 닉 팔도 등이 있다. 몽고메리는 두 번째 부인 게이너와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어니 엘스는 “전 세계 골프장 중 아름답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면서 “세계 어딘가 골프 여행을 떠난다면 바로 이곳”이라고 상찬했다. 그만큼 시골 깊은 산속 호수가 주는 안정감과 평온함이 묻어나는 곳이라는 의미다.

골프장 입구부터 프라이비트 골프클럽의 전형을 보여준다. 굳게 닫힌 철문 앞에서 경비가 ‘몇 시에 누구 이름으로 예약되어 있는지’ 확인한 후에야 문을 열어준다. 절차가 꽤나 짜증스럽지만 그런 절차가 골퍼를 더욱 설레게 하는 것 아닐까? 잘 정돈된 좁은 내부 도로를 따라 들어가면 높고 곧은 침엽수 나무숲 사이로 코스가 어렴풋 스치고, 넓은 호수가 드문드문 보인다.

하지만 이곳도 유럽의 경기 불황을 피해가진 못했다. 멤버를 동반하지 않는 비 회원 내장객을 받지않는 원칙 때문에 금융 위기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면서 운영에 어려움에 처했다. 한때는 파산 위기까지 몰렸으나 전 세계의 800여 명 멤버가 뭉쳤다. 각각 2만파운드(3700만원)씩 갹출해 골프장을 오너인 미국의 부동산 거물 라일 앤더슨으로부터 인수했다. 가격은 약 3500만파운드(65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미지중앙

메리 여왕이 연애편지를 썼다는 클럽하우스.


산과 호수가 주는 평화로움
나는 로크로몬드에서 첫 라운드를 한 후 그 아름다움에 반해 이듬해 거래처 손님을 그곳으로 초청해 2박3일 동안 골프 대회를 개최하면서 프로젝트 설명회를 가졌다. 참석자에게 특별히 설명하지 않아도 프로젝트에 동참을 하는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그만큼 자연과 어울린 이 코스는 인간에게 넉넉한 마음을 갖도록 하는 능력을 가졌나 보다.

영국 대부분의 골프장은 구릉은 있어도 산이 없는 특징을 가졌는데 로크로몬드는 산이 병풍처럼 한 쪽 면을 가리고 있으며, 스코틀랜드에서 보기 드문 레이크 코스다. 스코틀랜드어로 로크(Loch)가 ‘호수’이니 로몬드호수가 골프장의 이름이고, 그 이름에 맞는 호수가 코스 전반을 지배한다. 호수와 산 그리고 푸른 잔디가 어우러진 시인의 코스라 해도 좋을 정도의 고즈넉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지녔다.
골프보다는 다정하게 연인과 산책을 하는 것이 어울릴 것 같은 풍광이다. 실제 낭만주의 시대 때 유명한 시인 로버트 번스와 월터 스콧이 시와 신화로 이곳을 노래했다. 아울러 많은 화가들이 이 지역의 빼어난 경관을 화폭에 담았는데 특히 에드윈 랜서가 이 지역의 경치와 사슴 그림을 많이 남겼다.

클럽하우스는 마치 대저택이나 성을 연상케 하는 회색 석조 건물로 자연 친화적이고 소박한 여느 스코틀랜드 골프장과는 다르게 규모가 크다. 깊은 역사성을 간직한 이 건물은 애초 15세기부터 코크훈족 추장의 집이었다.

불에 타 폐허가 된 건물을 1773년 재건축했고, 94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해 클럽하우스로 사용하고 있다. 과거 스코틀랜드 최초의 여자 골퍼였던 메리 여왕이 연애편지를 이곳에서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만큼 사람의 감성을 풍부하게 하는 경관을 가졌다는 얘기일 것이다.

클럽하우스의 좁은 입구를 들어서면 오른쪽 프로숍을 지나 탈의실로 향하게 된다. 직원의 친절이 낯선 이방인을 맞는다. 탈의실 가운데 소파와 탁자가 있는데, 거기서 옷을 반쯤 벗은 골퍼가 맥주를 마시는 이채로운 광경도 연출된다. 아마도 성격 급한 승리자가 반나체로 한 잔 사는 듯하다. 라운드가 끝난 후 뒤풀이에 목소리가 높아지기는 동서양이 차이가 없다.

클럽하우스 뒤편으로 호수와 산이 어우러져 고요한 적막이 낮게 드리워진다. 잿빛 하늘과 어울려 금방이라도 하늘이 요동칠 것만 같다. 스코틀랜드 골프는 날씨와의 연관성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기상 예보가 정확한 편인 영국도 변화무쌍한 스코틀랜드의 국지성 또는 일시적으로 내리는 비에는 대비해야 한다. 한 번에 내리는 비의 양은 많지 않아 라운드에 큰 지장은 없지만 바람이 동반되면 온도가 급감하면서 체감 온도가 떨어져 자칫 감기로 다음 일정을 망칠 수 있다.

이곳에서 비옷과 따뜻한 옷을 미리 캐디백에 준비하는 것은 필수다. 심지어 여름에도 방수와 보온이 되는 모자를 넣어 대비하는 게 좋다. 한여름 7월에 비바람으로 라운드를 그만 둔 적이 있기 때문이다. 손이 시려 그립을 잡기 어려울 정도였다면 상상이 가시는가? 영국에서는 이렇게 기상 악화로 운동하다 중단하면 프로숍에서 레인 체크(Rain Check)를 준다. 비로 인해 끝내지 못한 라운드를 다음에 마무리할 수 있는 증명서를 받아 다음에 쓰면 된다.

이미지중앙

로크로몬드는 코스내에 사슴이 많아 로고에도 그대로 응용되었다.


사슴이 많은 자연 보호 코스
로크로몬드의 로고는 흰 뿔이 길게 달린 빨간 사슴이다. 그만큼 사슴이 많다는 뜻이다. 라운드 도중에도 쉽게 사슴을 만날 수 있다. 사슴들을 보호하기 위함인지 군데군데 들어갈 수 없는 특수자연보호구역(SSSI : Sites of Special Scientific Interest)이 있다. 11, 17, 18번 홀에 자리하고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곳은 희귀식물이 서식하고 과학적으로 보호 관찰을 요한다. 국가환경보존지역(National Scenic Area)이며 이 구역은 유럽 골프장 중 스페인의 발데라마를 제외하고 이곳이 유일하다.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벌타 없이 드롭할 수 있다.

로크로몬드는 첫 홀 경기진행요원인 스타터(Starter)가 친절한 코스로도 유명하다. 가뜩 긴장한 외국 골퍼와 게스트의 마음을 풀어줘 첫 홀의 미스 샷을 방지하게 하는 것도 스타터의 임무 중 하나다. 내 스코티시 발음이 익숙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물과 사과를 주면서 시골 할아버지처럼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이 정겹다. 아마도 동양인을 볼 수 없는 그 산골에서 궁금한 게 많았을 것이다.

이름이 ‘로몬드 호수 골프장’이지만, 탁 트인 더 넓은 호수가 보이지 않아 답답한 느낌이 들 무렵인 3번 홀 그린 뒤부터 광활한 호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바다 같은 호수가 골퍼를 맞는다. 5번 홀(파3 190야드)에 이르러서는 ‘와’ 하는 탄성이 쏟아진다. 가지런하게 정돈된 티 박스와 그린 사이 공간이 들어갈 수 없는 SSSI로 조성되어 있고, 그린 뒤로 끝없이 펼쳐진 잔잔한 호수와 그 뒤를 산이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골프장이라기보다 호수가 그려진 한 폭의 풍경화 속에 서 있는 착각을 일으킨다. 그 홀에서 기념 촬영은 필수다. 배경이 아름답다 못해 로맨틱하다. 경치 구경에만 빠지다 보면 라운드를 망칠 수 있으니 유념해야 한다.

이미지중앙

그린 뒤로 호수가 펼쳐지는 모습이 이국적인 감동을 준다.


호수에서 골프장을 돌아보는 경험
클럽하우스를 지나 10번 홀에 이르면 가슴 깊은 곳에서 감동이 쏟아진다. 이젠 ‘와’ 하는 탄성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티 박스 오른쪽을 감싸는 산이 주는 느낌은 그저 평범한 ‘고즈넉함’이다. 캐나다의 로키산맥에 있는 반프스프링골프장에서는 깎아지른 절벽과 웅장한 풍광에 압도되어 말문이 막혔지만, 이 산은 그저 높지도 낮지도 않은 등성이로 이루어져 호수가에 흐르는 곡선과 너무 잘 어울린다. 그곳에 깎아지른 산이 있었다면 어울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샷은 만만치 않다. 드라이버 샷이 떨어지는 지점에 번(Burn), 즉 고랑이 있다. 따라서 자신의 드라이버 샷 거리를 감안해서 클럽을 결정해야 한다. 난이도는 두 번째지만 실제로는 1번 홀보다 더 어렵다는 것이 동반자의 공통된 의견이다. 특히 그린 공략은 아주 조심해야 한다, 좌측은 해저드, 우측은 벙커가 자리잡고 있다.

로크로몬드의 시그네처 홀은 18번이다. 465야드 좌 도그레그 홀이다. 오른쪽, 티 샷이 떨어질 지점에 벙커가 3개나 도사리고 있고 왼쪽은 호수를 끼고 있다. 그린 좌측으로 보이는 선착장에 눈부시게 하얀 요트가 정박하고 있는데, 이 요트는 골퍼에게 대여하고 라운드 후 샴페인을 마시면서 호수에서 골프장을 돌아보는 이색적인 즐거움을 제공한다. 짙은 초록빛 필드, 길게 누운 호수, 회색 하늘의 잿빛이 어우러져 골퍼를 좀처럼 티 박스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한다. 이 마지막 홀이 주는 감동은 오래 기억된다.
그 감동을 가슴에 묻어두기 위해 흰색 요트 위에서 스코틀랜드산 싱글 몰트 위스키를 마신다. 몸속으로 파고드는 향 짙은 위스키의 짜릿함이 가슴을 타고 내려간다. 변화무쌍한 날씨 덕에 호수를 붉게 물들이는 석양이 우리를 맞이한다. 뱃전에 갈라지는 흰 파도 사이로 붉은 노을이 파고들어 눈을 뜨기 힘들 때 다시 한 번 진한 감동이 밀려온다.

위치 : 스코틀랜드, 던바튼셔, 로슈하우스, 글래스고공항에서 40km. 자동차로 45분
문의 : ++44 (0) 1344 842 201
코스 : 1993년 개장, 18홀(파71, 7100야드)
설계 : 톰 와이스코프
특이 사항 : 회원 동반 필수, 카트 불가능

글을 쓴 김상록 씨는 전 세계 수많은 베스트 코스를 라운드 한 구력 26년 핸디캡 6인 골퍼다. 영국과 싱가포르를 번갈아 거주하는 김 씨는 쿠알라룸푸르 트로피카나 회원이다.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