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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전드 오브 풋볼] Again 1970’s, 리버풀을 세계 최고 반열로 이끈 3인방
[헤럴드경제 스포츠팀=김유미 기자] 한국의 많은 축구 팬들은 ‘맨유의 박지성’을 통해 프리미어리그를 접했다. 방송사들이 본격적으로 해외 축구리그의 중계권을 사들인 것도 박지성과 이영표의 PSV 아인트호벤 입단을 전후해서였다.

하지만 중년 축구 팬들은 맨유가 아닌 리버풀을 통해 프리미어리그를 알게 됐다고 말하는 이들이 다수다. 리버풀은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리그 우승컵을 긁어모으다시피 하며 세계적인 클럽으로 발돋움했고, 그 인기가 동아시아까지 뻗어왔던 것이다.

2부 리그를 전전하던 시절을 청산하고 약 20년 가까이 리그와 유럽을 제패했던 리버풀. 그 뒤에는 지금까지도 명장으로 회자되는 감독과 클럽 레전드로 기록된 선수들이 있었다. 이번 레전드 오브 풋볼에서는 리버풀을 세계 최고 클럽의 반열에 올려놓은 3인방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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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니 달글리시는 '킹 케니'로 불리며 리버풀에서 트로피를 20개 이상 들어올렸다.[사진=리버풀FC 홈페이지]


케니 달글리시 -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

첫 번째는 리버풀 레전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케니 달글리시다. 달글리시는 스코틀랜드 출신 공격수로, 리버풀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활약했다. 그는 173cm의 작은 키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1969년 스코틀랜드의 셀틱에서 데뷔해 8년을 보냈다. 셀틱에서만 269경기에 출장, 167골을 기록했다. 1977년에는 밥 페이즐리 감독의 눈에 들면서 리버풀로 이적했다.

당시 리버풀은 주전 공격수 케빈 키건의 이적으로 공격수 자리에 공백이 생긴 상태였다. 리버풀 이적 후 7번을 달게 됐지만 처음에는 팬들의 마음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점차 경기력을 인정 받으면서 ‘킹 케니’라는 별명을 얻었다. 달글리시가 리버풀에서 들어 올린 트로피만 해도 어림잡아 20개가 훨씬 넘는다. 8번의 리그 우승, 4번의 캐피탈 원 컵 우승, 3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 여러 대회에서 많은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그는 1990년 리버풀에서 은퇴하기까지 그는 335경기 118골을 작성했다.

리버풀은 1985년 유벤투스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서포터들 간의 패싸움으로 벌어진 사망 사건인 '헤이젤 참사'로 인해 국제대회 출장금지 징계를 받았다. 이로 인해 당시 리버풀 감독이었던 조 페이건이 사임하면서 뜻하지 않게 선수에서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다. 일종의 플레잉 코치로 30대 중반 감독 자리에 오른 달글리시는 초보 감독으로 85-86시즌 리그와 FA컵 우승으로 더블을 달성했고, 87-88, 89-90시즌 리그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후로도 블랙번, 뉴캐슬, 셀틱 등에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다. 1991년에는 2부 리그 약체였던 블랙번 로버스를 맡아 2년 후 승격을 이뤄냈고, 다시 2년 뒤인 1995년 앨런 시어러 등과 함께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이 해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달글리시는 2011년 1월 8일 위기에 빠진 리버풀을 구하기 위해 다시 돌아왔지만 우승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7년 동안 61%에 달하는 승률을 거두면서 역대 리버풀 감독 중 승률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세웠고, 2012년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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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롱도르 2관왕에 빛나는 케빈 키건. 그는 70년대 초반 리버풀의 부흥의 일등 공신이었다.[사진=리버풀FC 홈페이지]


케빈 키건 - 리버풀의 우승청부사

다음은 리버풀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꼽히는 케빈 키건이다. 케니 달글리시와 동갑인 키건은 영국 돈캐스터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냈다. 키건은 돈캐스터에 입단하기를 강력히 원했지만, 왜소한 체구의 키건을 입단시킬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키건의 프로 데뷔는 스컨소프 유나이티드에서 이뤄졌다. 당시 18세로 곧바로 주전으로 도약했고, 데뷔 2년 차인 1969-70시즌에는 리그 전 경기 출장으로 선수로서의 가치를 높였다.

세 시즌 동안 인상적인 활약을 펼친 키건은 빌 샹크리 감독의 눈에 띄어 1971년 리버풀에 입단했다. 엄청난 활동량을 자랑하며 그라운드 전역을 주볐고, 상대 수비진이 버티는 상황에서도 과감한 드리블 돌파로 리버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박빙의 상황에서 승부를 가르는 결승골을 많이 넣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건의 활약 덕분에 리버풀은 72-73, 75-76, 76-77시즌 리그 우승을 달성했다. 특히 76-77시즌에는 지금의 챔피언스리그 격인 유로피언 컵 결승에서 분데스리가 3년 연속 챔피언 보루시아MG를 상대로 멀티골을 몰아치며 우승의 일등 공신이 됐다. 리버풀에서 230경기 68골을 기록한 키건은 이듬해 독일 진출을 선언했다.

당시 잉글랜드 선수의 해외 이적이 매우 드물었기에 키건의 이적은 그 자체로도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세간의 우려와 눈초리를 이겨내고, 키건은 함부르크 유니폼을 입고 당당히 실력을 뽐내며 1977년부터 80년까지 90경기에 나서 32골을 터트리는 활약을 펼쳤다. 함부르크에 몸담는 동안 키건은 1978, 79년 2년 연속 발롱도르 수상의 금자탑까지 쌓았다.

이후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온 키건은 사우스햄튼, 뉴캐슬 소속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클럽 레코드는 592경기 204골, 잉글랜드 국가 대표 선수로도 63경기 21골의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는지, 월드컵 시즌에 유독 부상을 당하면서 월드컵 본선에서는 단 1경기 출전에 그쳤다.

감독으로도 여러 팀을 거쳤다. 1992년에는 2부 리그에 있던 뉴캐슬의 승격을 일궈냈고, 팀을 프리미어리그 2위까지 올려놨다. 이 외에도 풀럼의 단장과 감독 대행, 잉글랜드 국가대표 팀, 맨시티 등에서 지휘봉을 잡았다. 2008년 잠시 뉴캐슬에서 감독을 지낸 뒤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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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리버풀을 세계적인 강팀의 반열에 올려놓은 명장 빌 샹클리.[사진=리버풀FC 홈페이지]


빌 샹클리 - 안필드엔 그의 동상이 있다

마지막은 선수가 아닌 감독이다. 리버풀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감독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리버풀을 강팀으로 만들었고, 전 세계 축구사에도 한 획을 그은 인물, 빌 샹클리 감독이다.

샹클리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맨유 출신의 맷 버스비와 함께 스코틀랜드 국가 대표로도 활약했다. 잉글랜드의 칼라일 유나이티드, 프레스턴 노스 엔드에서 선수 생활을 보냈다. 선수 은퇴 이후 본인의 친정 팀인 칼라일 유나이티드 등 하부리그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던 중 1959년 리버풀 사령탑에 올랐다.

당시 리버풀은 2부 리그에 있었다. 샹클리는 열정적인 리버풀 팬 ‘콥’에 깊은 감명을 받아 리버풀 행을 택했다. 리버풀 감독이 되자마자 샹클리가 시작한 것은 대대적인 리빌딩 작업이었다. 부임 첫 시즌에만 무려 24명의 선수를 방출했다. 보통의 감독들이 자신의 심복처럼 여기는 코치를 데리고 다니는 경우가 많지만, 샹클리는 기존의 코치진에 신뢰를 보냈고 나중에는 함께 팀을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까지 이끌었다.

샹클리는 부임 3년 차인 1962년 리버풀을 2부 리그 무패우승으로 승격시켰다. 승격 첫 시즌에 리그 적응기를 끝마친 리버풀은 두 번째 시즌인 63-64시즌 1부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유로피언 컵에 출전했지만 우승은 거두지 못했다. 두 번째 우승컵은 1965년에 들어올린 FA컵 트로피였다. 이 시기에 샹클리 감독은 리버풀의 유니폼 전체를 빨간색으로 바꿨고, 상하의와 스타킹까지 같은 색을 착용하면서 선수들에게 새로운 정신을 심어줬다. 또 리버풀을 대표하는 응원가이자 문구인 ‘You’ll Never Walk Alone’이 이 때부터 시작됐다.

1965-66시즌 리그 우승 이후 리버풀은 약 7년 간 우승을 하지 못하면서 무관의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팬들과 구단은 샹클리 감독에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고, 이에 보답하듯 케빈 키건의 영입을 통해 1972-73시즌 리그 챔피언에 올랐다. 정점에 오른 샹클리는 리버풀을 강팀으로 만든 뒤 1974년 은퇴를 발표했다. 이후 밥 페이즐리 감독이 감독직을 이어받았다.

1913년에 태어난 샹클리 감독은 1981년 세상을 떠났다. 리버풀의 홈구장인 안필드에는 샹클리 감독을 기리고 기념하기 위한 동상과 게이트가 세워졌다. 많은 콥들의 사랑을 받았던 감독답게, 그의 동상 아래에는 ‘그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He made people happy.)’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샹클리는 “You’ll Never Walk Alone”, “안필드가 바로 나의 집” 등의 명언 제조기로도 유명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말이 “폼은 일시적이나,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이다. 이 외에도 샹클리는 “리버풀은 나를 위해 만들어졌고, 나는 리버풀을 위해 만들어졌다”, “비틀즈나 다른 가수들은 잊어버려라. ‘더 콥’에서 나는 소리가 진짜 리버풀의 소리다” 등 리버풀 팬들에게 감동을 줄만한 말을 남겼다. 그는 스포츠 마케팅이라는 개념이 잡혀있지 않던 시절 진정으로 팬을 사랑하고, 팬 친화적인(Fan-friendly) 행보를 보인 감독으로 지금까지도 사랑받으며 리버풀의 전설로 기억되고 있다.

리버풀을 세계 최고 반열로 이끈 3인방에 대해서는 '축덕들이 만드는 팟캐스트 해축야화 34화'를 통해 자세히 들을 수 있다. 해축야화는 매주 금요일에 1부가 토요일에 2부가 업로드 되며, 팟캐스트 어플 '팟빵'을 통해 들을 수 있다.

* 레전드 오브 풋볼은 축구 팟캐스트 '해축야화'의 한 코너입니다. 아래 URL을 클릭하면 바로 방송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http://www.podbbang.com/ch/10698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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