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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스포츠가 기억하는 고 최태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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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이 만난 거인들> 표지.


# 만델라, 고르바초프, 트루먼, 키신저, 사마란치, 자크 로게, 토마스 바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박근혜, 김종필, 정주영, 이건희, 손기정. 이 사람들과 친분이 있고, 그들과의 인연을 책으로 엮어냈다면 우리 현대사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바로 김운용 전 IOC수석부위원장(85)이다. 이런 이야기를 인물열전식으로 모 주간지에 연재했고, 2014년 <김운용이 만난 거인들>이라는 제목으로 단행본을 냈다. 개인적으로 이 원고작업을 도와줄 때 좀처럼 잊지 못할 육성증언을 들었다. 아마 박근혜 대통령 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 거 최태민 목사라고 있지?박근혜 의원(당시는 대통령이 되기 전이었다)이 친했다는 사람 말이야. 영애(대통령의 딸)와의 친분을 남용한다는 투서가 청와대로 들어왔고, 이에 단단히 화가 난 박정희 대통령이 (최 목사를)청와대로 잡아와서 혼내주려고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 김 전 부위원장은 외교관을 꿈꾸던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학생으로 외무고시를 준비하던 중 6.25전쟁을 만났다. 군문에 들어가 장교가 됐고, 뛰어난 영어실력을 바탕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연설을 통역하기도 했으며, 4.19혁명 때는 송요찬 계엄사령관의 수석부관이었다(예비역 육군중령). 이후 외교관을 거쳐 청와대 경호실 차장으로 근무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서강대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유학을 갔을 때 그 일을 도운 것도 경호실 소속의 김 전 부위원장이었다. 1974년 육영수 영부인의 피격 사망 때 청와대를 나와 이후 태권도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스포츠외교관이 됐다. 박정희 대통령 및 영애 박근혜이 살던 청와대에서 근무했고, 나중에는 딸과 함께 동료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런 현대사의 거목이 최태민 목사에 대해 촌평을 한 것이기에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 해동검도라는 무도가 있다. 일본식(劍道라 쓰고 일본어로는 けんどう, 즉 kendo라 읽는다)이 아닌 한국 전통의 검도을 표방하는데 세계해동검도연맹의 김정호 총재(62)가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한때 김 총재의 서라벌고 동창인 탤런트 나한일 씨가 전면에 나섰고, 이후 두 단체로 쪼개지는 내홍이 있었지만 어쨌든 김정호 총재는 해동검도에서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이 분에게서 최태민 목사가 해동검도를 제법 오랫동안 연마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는 한 무술전문지에 기사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중 일부를 소개하면 이렇다. ‘김(정호) 총재가 서초동 도장을 운영하던 1983년 2월 말, 어느 날 연세가 지긋하시고 풍채가 좋은 어르신 한 분이 도장에 왔습니다. 그는 운동을 배워 보고 싶다며 김 총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고 김 총재는 성실히 답했습니다. 말이 오고 가며 김 총재는 그 분의 언변과 박학다식함에 놀라게 됐습니다. 이내 그 어르신은 도장의 회원으로 등록했습니다. 이분이 바로 훗날 김 총재와 해동검도 발전에 많은 도움을 주신 고 최태민 목사입니다.’(김정우 세계해동검도연맹 교육부장의 해동검도이야기 9편 <무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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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검도를 수련하고 있는 고 최태민 목사. [사진=세계해동검도연맹]


# 스포츠미디어 분야에서 20년가량 몸을 담으면서 개인적으로 직접 접한 최태민 목사(1994년 사망)에 대한 얘기는 이렇게 딱 2가지였다. 그런데 최근 한 가지가 더 늘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설립과 운영에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거론되는 최순실 씨가 관여됐다는 의혹 때문이다. 최순실 씨는 최태민 목사의 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최순실 씨가 전 남편 정윤회 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제법 실력있는 승마선수이고, 그의 이화여대 입학 및 독일전지훈련, 그리고 판정시비 등과 관련해 스포츠계에서 권력형 특혜라는 의혹이 이미 제기된 바 있으니 엄밀하게 따지면 4번째라고도 할 수 있다.

# 돈이 많은 기업인들(전경련)이 권력자의 뜻을 따라(미덥지 않지만 혹은 자발적으로) 스포츠발전을 위해 재단을 설립하고, 이것저것 좋은 일을 많이 하겠다고 하니 스포츠쪽에서 밥벌어 먹고사는 사람으로 박수를 칠 일이다. 그런데 이런 식은 아니다. 이름에만 스포츠를 담았지, 정말 어렵고 힘든 한국스포츠에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재단이 무슨 도움이 됐는지 전혀 모르겠다. 대통령의 해외순방 때 태권도시범단을 구성해 나갔다는 정도인데, 그건 이미 국기원이나 대한태권도협회가 해오던 일로 쓸데없는 중복투자에 가깝다. 그럴 바엔 아예 전두환처럼 확실하게 ‘3S 정책’으로 기업인들에게 하나씩 맡겨가며 비인기종목을 육성하는 게 더 낫다(이외에도 하계올림픽을 유치하고, 프로야구와 프로축구를 만들었다). 많은 사람을 죽이고, 민주주의를 짓밟은 독재자일지언정 어쨌든 스포츠 발전을 이끌었다는 아주 작은 면죄부 하나는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아니면 박정희 대통령처럼 ‘박스컵국제축구대회’ 같은 자신의 이름을 딴 대회를 하나 만들든지 말이다.

# 지난 5일 엘리트와 생활체육을 통괄하는 ‘스포츠대통령’인 통합대한체육회장 선거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그토록 싫어하던 이기흥 전 대한수영연맹회장이 당선됐다. 큰 이변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현 정권과 가깝다는 장호성, 전병관, 이에리사 후보는 나란히 2~4위에 그쳤다. 완장을 찼다고 상명하달식으로 몰아붙인 현 정부에 대해 체육인들이 반기를 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한겨레신문). 진보든 보수든 역대 대한체육회장은 집권세력의 입맛에 맞춰 결정됐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에서는 연속으로 두 번이나 정권의 의사가 관철되지 않았다. 진기한 일이다. 진정으로 체육인들의 자율성은 존중해서 나온 결과라면 칭찬할 만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안다.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처럼 역대 보수정권은 스포츠만큼은 잘했다는 촌평을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도통 아닌 것 같다. 정권비리형 의혹에 스포츠가 때아닌 수난을 당하고, ‘의문의 1승인 체육민주화’가 저절로 이뤄지고 있으니 말이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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