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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늘집에서] 김인경의 우승이 반가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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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도중 마지막 홀에서 짧은 퍼트를 놓친 후 괴로워 하는 김인경.[사진=AP뉴시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이강래 기자] 김인경이 6년 만에 LPGA투어에서 우승했다. 지난 2일 베이징에서 끝난 레인우드 LPGA 클래식 최종라운드에서 7언더파를 몰아쳐 1타차로 우승했다. 김인경은 파5홀인 16번 홀과 18번 홀에서 2온을 시키며 이글과 버디를 잡는 등 놀라운 경기력을 발휘했다. 3타차 선두를 지키지 못하고 역전패를 당한 허미정에겐 미안한 마음이지만 김인경의 우승은 반갑기 그지없다.

팬들의 뇌리에 김인경은 두 가지 얼굴로 남아 있다. 하나는 ‘통 큰 자비심’을 가진 선수, 또 하나는 ‘비운의 주인공’이다. 김인경은 2010년 로레라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우승한 후 20만 달러가 넘는 우승상금을 즉석에서 로레나 오초아 재단과 스페셜올림픽 조직위원회에 절반씩 기부했다. 돈을 받은 오초아는 김인경의 통 큰 자비심에 큰 감동을 받았다.

김인경은 보기 드문 선행(善行)을 했지만 2년 뒤인 2012년 인생의 큰 시련을 맞는다. 메이저 대회인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골프사에 남을 퍼팅 실수를 하고 만다. 마지막 홀에서 50cm짜리 파 퍼트를 넣으면 생애 첫 메이저 우승. 그러나 볼은 홀을 돌고 나온다. 결국 연장전으로 끌려 들어간 김인경은 동료 선수인 유선영에게 역전패를 당하고 무대 뒤로 사라지고 말았다.

김인경은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역전패를 당한 후 멋진 말을 했다. "골프 게임은 여행이자 과정"이라며 "메이저 우승 기회를 얻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다시 오길 바란다"고 했다. 그리고 "골프는 내가 사랑하는 경기이고 짧은 퍼트를 놓치는 것도 경기의 일부분"이라며 "누구든 실수할 수 있다.중요한 것은 실수후 어떻게 대처하는가다"라고 덧붙였다.

김인경은 그러나 오랜 시간 마음을 비우기 위해 허허로이 시간을 보내야 했다. 무수히 많은 대회에서 우승에 도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재작년 7월 한화금융 클래식에 출전한 뒤 김인경은 미국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자신의 뿌리를 찾아보겠다는 마음으로 '천년고도' 경주로 내려가 유적지를 돌아봤다. 그리곤 중국으로 넘어가 일주일간 머물며 동이족의 유물로 알려진 만주와 내몽고 지역의 파라미드 유적을 둘러봤다. LPGA투어 메이저 대회인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이 열린 기간이었으나 출전하지 않고 중국에서 시간을 보냈다. 출전 자격이 있었던 김인경에게 중요한 것은 당장의 성적이 아니라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었다.

김인경은 재능이 많은 선수다. 작은 체구라 드라이버샷 거리가 짧지만 이를 보완하는 창의적인 골프가 있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다. 2013년 영종도에서 열린 하나외환챔피언십. 김인경은 장타자인 수잔 페테르손, 브리태니 린시컴과 한 조로 경기했다. 짖궂은 조편성이었다. 김인경과 두 장타자간의 티샷 거리 차는 30~40야드에 달했다. 그러나 한참 뒤에서 하이브리드 클럽으로 볼을 홀 가까이 붙이는 김인경의 샷에 두 장타자는 속절없이 무너졌다. 다혈질의 페테르손은 3~4 클럽을 짧게 잡고도 볼을 홀에 더 가까이 붙이지 못하자 얼굴이 일그러졌고 캐디에게 짜증을 내기까지 했다.

김인경이 다시 우승해 다행이다. 불운이 계속된다면 다시 우승하지 못하고 선수생활을 마감할 수도 있었다. 가혹하고 불행한 인생은 우리 주변 도처에 널려 있다. 김인경은 우승 인터뷰에서 “우승이 목표는 아니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플레이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나는 내 경기를 했고 우승으로 보상받았다”고 말했다. 김인경은 남을 꺾어야 우승한다는 개념으로 경기하지 않는다. 골프의 본질인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결과가 우승으로 연결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그녀의 내면을 도도히 흐르는 강(江)은 휴머니즘이다. 김인경은 불교에 심취해 있으며 지구 공동체에 관심이 많다. 아이들이나 어려운 이웃을 돌보려 하는 태도도 이와 무관치 않다. 승부욕 내지 투쟁심 없이 운동선수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뜻한 마음씨의 김인경이 오랜 질곡에서 벗어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게 반가운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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