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남화영이 만난 골프인- 골프 역사가 조상우 교수(1) “100년전 한반도에 골프 리조트 있었다”
이미지중앙

조상우 호서대 골프학과 교수는 초창기 한국 골프사 연구자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한반도에 들어선 첫 번째 골프장은 1921년 효창원에 개장한 9홀 코스로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다. 1897년께 원산에 영국 해관(海關)인들이 만들었다는 코스는 전설로만 존재했다.

조상우 호서대학교 골프학과 교수는 “원산에 영국인이 만든 코스가 실제로 있었고, 얼마 뒤에 황해도 구미포에 선교사 언더우드 박사가 만든 골프 리조트도 존재했다”고 주장한다. 한반도 골프의 기원이 일본의 1900년에 생긴 고베 로코산 골프장보다 더 올라간다는 의미다.

조상우 교수는 한국골프 초창기 역사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다. 2009년부터 호서대에 부임하고 ‘골프학개론’ 수업을 개설해 학생들에게 한국 골프의 기원을 설명하면서 한국 골프사 연구자로의 7년 경력이 시작됐다. 조 교수는 한양대에서 ‘골프트레이닝’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2005년부터 행정안전부 공무원연수원 교수로 골프 실기만 가르쳤다. 호서대에 부임한 뒤부터 한국 골프 역사 연구자가 됐다.

“대한골프협회의 <골프 100년사> 책자 등 공식 자료에는 ‘19세기말 원산에 골프장이 있었고 1921년에 효창원에 일본인에 의해 골프장이 만들어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골프장의 속성상 있다가 없어질까요? 골프를 하다가 안하는 게 가능할까요? 혹시 관련 문헌이 소멸되거나 방치되고 있는 건 아닐까? 역사적 사실이 무엇이었을까? 문헌을 찾는 작업이 거기서부터 시작됐죠.”

이미지중앙

원산시 지도. A 원산 명사십리 해수욕장. B 갈마반도 알바벳 위로 비행장, C 원산 해관이 있던 지역, D 송도원 골프코스 지역, E 송도원 해수욕장. 자료: 조상우교수 제공


선교사가 만든 황해도 구미포와 원산 골프 리조트
조 교수가 사료를 찾는 방식은 일본도서관과 구글 크롬이었다. 세월이 지나면 일본은 역사와 기록과 관련된 내용을 도서관에 올린다. 일본어를 모르는 그는 컴퓨터 2대를 한 데 놓고서 일본 국회도서관과 구글 크롬 번역기를 동시에 돌려가면서 문서를 뒤지기 시작했다.

국내 자료는 국가기록원, 옛 신문은 카인즈(kinds)검색을 이용했다. 한반도의 초기 골프의 검색은 단지 ‘골프’로는 찾을 수 없었다. 오늘날 단어가 골프지 초창기는 ‘꼴푸’, 혹은 ‘골푸’, ‘곬푸’로 불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키워드를 달리하면서 찾은 결과 서서히 한반도 초창기 골프에 관한 사항이 한두 군데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조 교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1876년 강화도 조약에 따라 1880년 함경남도 원산항이 개항했고, 1883년에 원산해관이 개청했다. 거기에는 영국, 미국, 독일, 러시아인이 공동으로 근무했다. 영국인 J.노트(Knott)등 2명이 상주하면서 유목산 중턱에 6홀 골프장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905년 을사조약으로 일본이 외교권을 박탈해 조선해관을 장악하게 된다. 1897년에 설립된 6홀 원산 코스는 1905년 11월에 영국인들이 떠나면서 사라졌다.

이미지중앙

일본인들이 만든 30년대 원산골프장, 일본철도청에서 만든 잡지에서 발췌. 자료=조상우 교수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1913년 황해도 황해도 구미포에 70동의 외국인 선교사 별장에 골프장이 있었다. 연세대를 만들고 한국에 근대 문화를 전파한 H.G.언더우드 박사는 황해도 구미포 소래마을을 방문하고는 그곳 해안선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1905년 소래해수욕장을 개장한다. 그리고 얼마 뒤 외국인 선교사들을 위한 별장을 만든다. 1915년 전후 선교사 에비슨의 일대기에 따르면 황해도 솔내(송천)마을에 선교사들이 예배당과 함께 야구장, 테니스장, 골프장 만들었다고 나온다.

동아일보 1934년8월10일자 기사에도 구미포 골프장이 소개된다. ‘봉화대라는 산이 있고 그 안에 광할한 잔디 입힌 꼴프장까지 있다. 옆으로는 푸른 솔이 병풍을 둘렀다.’ 또한 매일신보, 1925년, 7월 31일자에 따르면 원산에도 선교사들에 의해 만들어진 별장촌에 골프장이 존재하였다. 원산 갈마반도의 골프장 위치는 지금은 북한의 비행장 활주로 근처로 추정된다. 그러나 황해도 구미포와 원산 갈마반도 골프장은 외국인 선교사들이 추방당하며 1940년을 전후하여 외인촌과 함께 없어졌다.

그밖에 원산에는1924년 원산 송도원 해수욕장 근처에 일본인들에 의해 9홀 2200야드 규모의 원산골프장이 만들어졌고 일본 지배기에는 휴양지 골프장으로 쓰인다. 파3와 파5홀이 두 개씩이고 파4가 5개 홀이었으며 그린은 샌드그린을 사용했었다. 그러고 보면 원산에는 지금까지 총 3개의 골프장이 만들어졌던 셈이다.

골프 역사와 관련된 기록은 골프라는 키워드나 테마로 찾아서는 알 수 없었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까지 해외 문물이 도입되는 주요 통로는 종교였다. “당시 골프라는 해외에서 들여온 운동과 레저는 주로 선교사들이 주도했습니다. 연세대학교와 세브란스병원을 창설한 선교사 언더우드 박사가 원산을 찾아 요양시설을 만들고 동시에 야구장, 테니스장, 골프장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미지중앙

조상우 교수 연구실은 일본국회 도서관 등에서 뽑은 일제시대 골프 자료가 가득하다.


한국인 첫 번째 골퍼는 이항구
한반도의 초창기 골프가 옛 사료들로 인해 보다 뚜렷해진다. 그렇다면 한국의 가장 첫 번째 골퍼는 누구일까? 흔히 알려진 바로는 고종의 아들인 영친왕이지만 그의 실증 연구에 따르면 아니다. 을사오적의 한 명인 이완용의 둘째아들 이항구였다.

1921년 효창원에 골프장이 지어진 뒤 동아일보의 24년 4월15일자 신문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기사가 나온다. 조선왕실의 재산을 관리하는 기구인 이왕직에서 어보를 분실하는 사건이 터졌다. 하지만 담당 예식 과장이던 이항구는 일은 하지 않고 효창원에서 꼴푸를 하고 있었다. 이항구의 변명이 가소롭다. “종묘의 어보는 당장 나라에 쓰는 것도 아니요, 돈으로 쳐도 몇 푼어치 안되는 것인데 그만한 것을 잃었다고 좋아하는 꼴푸노리도 못한 단 말이요. 그러면 집에서 술을 먹거나 계집을 데리고 노는 것도 못하겠구려.”

이항구가 영친왕보다 먼저 골프를 시작한 한국인이다. 1910년에 이토 히로부미의 손에 이끌려 일본으로 가서 왕실 교육을 받은 영친왕이 골프를 접한 시기는 1924년경으로 추정된다. 또한 기록상으로는 영친왕이 1930년 군자리 코스를 만들 때 후원금을 내어 골프장을 건립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조 교수의 분석은 다르다. “아무리 일제시절이지만 조상의 무덤 자리에 골프장을 짓는데 돈을 내려 하지 않았을 겁니다. 당시 왕실의 재산을 관리하던 이왕직이라는 기구의 차관의 일본인 시노다가 주도하고 영친왕은 형식적으로 인가한 것이죠.”

조 교수는 수업 자료를 찾는 작업이기는 했으나, 역사 속에 숨은 골프장들을 찾아내는 과정이 긴장감 넘치는 재미와 희열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황해도 구미포, 원산 갈마반도 골프장, 언더우드 박사로 대상과 지역이 좁혀들 때가 그랬다. 한국 근대사에는 특히 선교사들이 문화 뿐만 아니라 스포츠의 전도사이기도 했다. 서양에서 누구나 즐기던 스포츠가 종교인들을 통해 전파된 것이 이상하지 않다.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