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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승진의 복싱이야기] (2) 복싱의 기술 '압박' - 골로프킨 경기 관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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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세계타이틀매치에서 TKO로 승리, 프로통산 36전 전승(33KO)을 기록한 카자흐스탄의 한국계 ‘무패복서’ 게나디 골로프킨. [사진=AP뉴시스]


골로프킨의 최종병기 '압박'

복싱은 싸움의 예술이죠. 팬들을 불러들이는 복싱의 매력이 화려한 기술이나 타이슨 같은 한방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복서 입장에서 정말 싸우기 싫은 상대가 바로 끊임없이 상대를 압박하는 선수입니다. 자신이 리드하는 경기와 끌려다니는 경기의 차이는 큽니다. 후자의 경우 복서에게 마음의 부담이 아주 크기 때문입니다.

“골로프킨 복싱의 특징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레프트 잽, 탄탄한 내구력, 강펀치 그리고 계속 압박해 들어가는 주도권 장악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초일류선수가 되려면 모든 것을 갖춰야 합니다. 게나디 골로프킨(34 카자흐스탄)은 화려한 스텝을 보이진 않지만 상대를 몰고 가는 기술이 훌륭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무서운 것은 상대와의 기싸움에서도 절대 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골로프킨 강펀치의 근원은 훅을 칠 때 주먹의 각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강한 어깨 근육 힘에서 나오는 것이죠. 펀치라는 게 발목, 하체, 허리, 어깨, 손목의 힘까지 모든 근육이 조화되어 만들어지지만 선수마다 주로 사용하는 근육의 힘이 있습니다. 타이슨은 허리 힘, 또 어떤 헤비급 선수는 자신의 허벅지 근육을 이용한 하체에서 강펀치를 만들어내죠.

지난 11일(한국 시간) 켈 브룩(30 영국)을 상대로 치른 WBC, IBF, IBO 미들급(72.5kg) 타이틀전도 그랬습니다. 브룩은 1라운드에서 맞받아 싸워보니 펀치나 힘에서 밀리는 것을 느꼈고, 2라운드부터는 정면 대결을 피했습니다. 물론 이후 브룩은 그 대신 효과적인 펀치로 응수했지만 골로프킨을 무너트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귀신이 아닌한 어느 정도 헛점도 있게 마련이고, 브룩도 현 웰터급 세계챔프입니다. 골로프킨이 펀치를 허용할 정도의 기량은 있는 것이죠. 하지만 계속 밀리는 자세로는 끊임없는 전진스텝으로 압박해 오는 골로프킨을 제압할 수가 없습니다.

골로프킨의 경기를 자세히 보면 상대의 펀치를 가볍게 허용하면서 ‘네 펀치 별거 아니다’라며 고 주눅을 들게 만들어 버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펀치를 허용할 때 골로프킨의 자세를 보면 절대로 턱이 들리지 않는 안정된 자세를 취합니다.

맞는 것도 기술입니다. 경추와 머리 각도에 따라 큰 충격을 받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골로프킨은 이런 교묘한 기술로 상대 펀치를 허용하며 더 월등한 내 펀치로 상대의 기를 꺾어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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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구 챔프의 기념파티 때 많은 권투인이 모였고, 필자는 백인철 챔프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


압박은 상대의 체력을 소진시킨다

4라운드와 12라운드 경기를 치르는 기술은 다릅니다. 라운드가 많아진다고 체력이 월등하게 강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을 분배하며 체력을 비축하면서 길게 경기를 이어가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약강, 약약강 이런 식으로 펀치의 강약을 조절하여 오버웍하지 않고 찬스를 노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싱의 압박 기술은 내가 경기를 주도하면서 내가 원하는 펀치를 날리고, 나의 체력을 조절할 수 있지만 상대는 자신의 체력을 조절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상대가 원치 않는 방어의 펀치를 내밀며 체력 조절을 힘들게 하는 겁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밀리다 보면 시간이 갈수록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냥 버티는 것이 되고, 결국 지게 됩니다. 눈빛에 자신감이 없어지면서 밀리게 되면 상대 선수는 더욱 힘이 솟습니다.

그래도 브룩의 코너는 현명하고 침착했습니다. 5라운드 2분37초 만에 수건을 던진 겁니다. 계속 진행되면 무패의 세계챔프(브룩)가 링바닥에 처참하게 뒹굴게 될 것이 뻔했습니다. 은퇴하면 모를까, 앞으로 복싱을 계속 하려면 그런 모습을 만들면 안 되겠죠.

현명한 판단입니다. 정상급 선수일수록 자존심이 강하고, KO패의 충격은 큽니다. 제때 경기를 잘 중단시킨 겁니다. 이는 한국의 트레이너들이 꼭 배워야 할 점입니다.

국내 복싱경기장을 자주 찾는데 정말이지 징그럽게 수건을 안 던지는 세컨들이 있습니다. 끝까지 계속 들어가란 말만 외칩니다. 심판이 경기 중단시키면 난동을 부리는 관장도 있습니다. 그러니 심판도 험한 꼴 안 당하려고 경기 스톱에 망설입니다.

모두 프로복싱단체의 상벌위원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일입니다. 이런 것을 정확히 해야 선수가 안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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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프시절의 백인철.


'한국 압박복싱의 대가' 백인철


참고로 한국에도 압박 기술이 훌륭했던 선수가 있었습니다. 백인철 챔프입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백인철 챔프에게 "형이 가장 잘하는 기술이 뭐예요?"라고 물으니 그는 당연한 듯 “레프트잽”이라고 답했습니다. 잽을 잘 치기 위해선 스피드도 중요하지만 상대 리듬에 맞춰 타이밍을 잡아야 한다는 부연설명도 있었고요. 즉 잽을 이용해 서서히 상대를 무너뜨리고, 계속 압박해 상대를 뒷걸음치게 만들고, 서서히 연타로 상대를 무너뜨리는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백인철은 화려함은 없지만 권투의 기본에 충실한 복싱을 하여 26연속 KO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겼습니다. 레프트잽은 상대 공격의 예봉을 꺽고, 나의 공격 실마리를 풀어가죠. 특히 상대가 힘을 조절하려고 할 때 나가는 잽은 상대의 페이스 조절을 흔들어버립니다. 이렇게 경기를 주도하면 라운드가 길어지면서 상대는 스스로 무너지게 됩니다.

일전에 장정구 챔프의 기념파티 때 많은 권투인들 모였을때 사진입니다 이때 많은 후배들과 함께 인철이형의 자신의 특기 레프트젭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압박의 4가지 조건

복서가 압박 기술을 잘 하려면, 첫째 잽 싸움에서 지지 말아야 합니다. 뭐 가장 기본이죠. 상대보다 발이 느려도 잽을 통하여 효과적으로 상대를 몰고 갈 수 있습니다.

아웃복싱은 상대보다 1.5배 이상을 더 뛰어야하기 때문에 체력이 월등해야 합니다. 가끔 잽이 좋지 못해도 계속적으로 상대를 압박해 들어가는 선수를 봅니다. 단단한 가드로 계속 전진스텝을 밟으면서 상대의 백스텝을 유도해 오버페이스로 만들어 승리하는 겁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잽싸움에서 많이 맞는 복싱을 하는 까닭에 이런 선수는 롱런이 쉽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어느 정도 맷집이 있어야 합니다. 내구력이 약하면 계속 압박해 들어갈 수 없지요.

세 번째로 펀치력이 상대를 주눅들게 만들어야 합니다.

네 번째로 상대와 몸싸움에서 힘에 밀리지 않으려면 단단한 종아리 근육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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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차세대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마제니.


한국의 골로프킨, 마제니

현재 한국에도 골로프킨 스타일의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마제니입니다. 마제니의 경기는 데뷔 초부터 모든 경기를 거의 안 빠지고 링 바로 밑에서 관람했습니다. 한 마디로 진화를 거듭하는 선수입니다.

마제니도 강펀치를 이용한 압박기술이 매우 탁월합니다. 매집도 훌륭하게 갖췄으며, 리치는 짧지만 주먹 스피드가 매우 빠릅니다. 그래서 상대와 맞받아칠 때 반박자 빠른 펀치를 구사합니다.

그는 과거 러시아에서 리치가 긴 동유럽선수들과 경기 경험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선수층이 얇기도 하지만 마제니를 상대할 선수가 없습니다. 이제 서서히 국제 무대로 자리를 옮겨야 합니다. 다양한 선수를 상대하며 큰 선수로 발전하길 기원합니다. 충분히 세계챔프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화려한 스텝, 유연한 허리, 긴 리치 등 신체조건이 훌륭한 흑인선수들에 견주면 복싱은 한국선수들에게 좀 불리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골로프킨의 복싱 스타일은 우리도 저런 선수가 충분히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과거 백인철 선수가 그랬습니다. 그러니 우리 선수들도 희망을 가지고 더욱 열심히 하길 바랍니다.

* 글쓰이 도승진은 현직 치과의사입니다.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누가치과의 원장이죠. 순천향대학병원 치주과의 외래교수를 역임했습니다. 동시에 하루 한 번 복싱을 수련하는 복싱인입니다. 한국권투인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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