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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올림픽이 전하는 유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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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cm가 넘는 장신에, 완벽한 체형, 스피드와 파워까지 갖췄다. 여기에 서구적인 미모까지. 육상 7종 경기(여자, 남자는 10종경기)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로 키우기 위해 센도 그레고리 박사가 길러낸 ‘타란툴라’의 겉모습이다. 타란툴라는 올림픽스타들이 센도 박사를 우발적으로 살해하는 장면을 보고, 자신의 초인적인 힘을 이용해 복수에 나선다.‘ 이상은 일본작가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아름다운 흉기>라는 소설 내용이다. 살인을 한 올림픽스타들도, 타란툴라도 센도 박사의 실험 대상이었다. 도핑테스트에 걸리지 않는 약물, 인체를 개조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시도된 것이다. 산모는 태아보호를 위해 인체에서 근육강화 호르몬이 분비된다는 사실까지 이용한다. 이렇게 ’길러진‘ 선수가 도핑에 걸리지 않고 금메달을 딴다고 가정하자. 이것도 스포츠일까?

# 얼마 전 리우 올림픽이 끝났다. 그리고 스포츠기자로 몇 가지 유감이 생겼다. 먼저 ‘격려’에 대한 반감. 25일에는 대통령이 선수단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하고, ‘격려’했다. 늘상 있는 일이고, 격려의 멘트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지구 반대편에서 여러분이 일으킨 긍정의 에너지가 우리 사회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다 좋다. 그런데 정확히 말해 격려는 스포츠가 한국정치와 한국사회에 해야 한다. 스포츠는 ‘인간이 공정한 규칙 안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신체 놀이’이다. 우리네 정치와 사회가 ‘공정한 규칙’을 지키고 있는가? 그렇다고 쉽게 대답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부정해도 ‘기울어진 운동장’, ‘헬조선’ 등 반례는 차고 넘친다. 스포츠도 오심이 있다지만, 정치와 사회 주요부분이 스포츠만큼 공정한 룰을 잘 지켰으면 좋겠다. 역으로 스포츠가 격려해야 한다. 우리처럼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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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선 때론 패자가 승자를 격려하며 승자의 기쁨을 드높여주기도 한다. [사진=뉴시스]


# 승패를 보자. 스포츠에서 승패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간속성과 전쟁욕구해결 등 이유가 어쨌든 간에 스포츠는 그렇게 설계됐다. 대신 ‘승자에게는 축하를, 패자에게는 격려를’이라는 스포츠 정신이 있다. 다행히도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 스포츠문화에서는 많이 사라지고 있다. 이번 리우 올림픽이 특히 그랬다. 금메달을 못 땄다고, 과거에 비해 지나치게 실망하거나 나무라지 않았다. 문제는 우리 사회다. 승자를 시기하고, 패자를 개돼지 취급한다. 정치적으로는 승자독식현상이 지나치다.

# 전부는 아니겠지만 일부 진보인사도 좀 그렇다. 공정하지 못한 선거를 통해 집권한 권력자를 비판하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스포츠와 같은 하찮은 것들은 뭉갠 후 그 위에 자기들의 집권을 절대선으로 올려놓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즐겨 듣는 한 진보 시사 팟캐스트의 진행자는 시국이 엄중하기 때문에 리우 올림픽 얘기는 일절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그때 가서 마음껏 응원하겠다며.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 옹졸함에 실망했다. 그 과정이 어쨌든, 정권교체만 하면 모든 것이 정당화되는가? 올림픽이 진보정권에서 즐기는 대상이고, 보수정권에서는 참아야할 대상이라는 뜻인가? 그런 목적지향적인 집요함은 오히려 하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에 독이 될 수 있다.

# 스포츠는 건강해지는 ‘놀이’다. 대체로 즐겁다. 먹고 사는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기에 그 효용성이 크다. 그래서 선진국은 청소년기는 물론이고, 죽을 때까지 한 사람이 최소한 1개 이상의 생활스포츠를 즐기도록 나라가 배려한다. 교육효과와 건강증진에 큰 효과 있기 때문이다. 이게 체육복지다. 체육복지에 1달러를 쓰면 의료비 3달러 정도가 절약된다고 하니 경제적으로도 득이다. 이런 스포츠가 현실에서는 보수는 ‘국뽕’ 분위기를 잡으며 주제넘게 격려하며 이익을 취하려 하고, 진보는 너희는 잘 모르니 우리가 계몽하는 대로 따르라며 스포츠를 애써 무시한다. 전자는 좀 자중하고, 후자는 좀 겸손하면 안 될까?

# 끝으로 맨 앞에서 소개한 소설의 등장인물도 스포츠를 위반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기 때문이다. IOC 및 아마와 프로의 주요 스포츠단체가 약물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공지능까지 나왔으니, 이제 스포츠에서 기술이 가미된 인간이 순수인간을 뛰어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스포츠는 ‘호모 루덴스’인 인간만이 해야하는 것이다. ‘존엄한 인간이 공정한 규칙 안에서 승패를 결정하는 신체 놀이.’ 그리고 ‘승자를 축하하고, 패자를 격려한다.’ 다시 되새기지만 세상이, 특히 우리네가 스포츠가 제시한 개념만 잘 지켰으면 좋겠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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