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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 타타라타] ‘위대한 몸짓’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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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용 전 IOC수석부위원장의 책 <위대한 올림픽>.


# 1990년에 출간된 <위대한 올림픽(The greatest Olympics)>이라는 책이 있다. 김운용 전 IOC수석부위원장(85)의 88 서울 올림픽 회고록이다. 이제는 대중서라기보다는 체육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중국어와 일본어 판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김운용 전 부위원장은 책 제목에 대해 “고 안토니오 사마란치 IOC위원장이 ‘서울 올림픽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올림픽(The greatest Olympics)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의 땀과 지혜로 창조된 신화’라고 극찬한 바 있다. 실제로 서울 올림픽은 개발도상국에서 열린 첫 번째 올림픽이고, 12년 만에 동서 양진영이 모두 한 자리에 모인 가장 성공한 대회였다. 그래서 두고두고 남들이 넘보지 못하도록 최상급 어휘를 사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사족이지만 우리네는 참 못된 구석이 있다. 먹고 살기 바쁘고, 정치적 이념 대결이 워낙 치열해서 그런지 서울 올림픽에 대한 평가는 내부적으로 더 인색하다. 마찬가지로 한때 사마란치에 IOC에서 넘버2의 영향력을 가졌던 김운용 전 부위원장은 2006년 국내에서 사법처리된 후 10년이 넘도록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한 명의 IOC위원도 없이 이번 리우 올림픽을 치르고 있는데 말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고,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동전의 양면처럼 다양한 측면에서 이뤄져야 한다. 흑백논리와 진영논리가 판을 치고, 승자독식 및 패자 짓밟기와 같이 스포츠보다 더한 냉혹한 승리지상주의는 모두에게 손해다.

# 잠깐 영어 단어 ‘그레이트(Great)’의 어감을 살펴보자. 20세기 가장 위대한 미국 소설 중 하나로 꼽히는 <위대한 게츠비>, 19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경영학자 짐 콜린스의 ‘위대한 시리즈’ 등 서구에서는 위대하다는 표현을 곧잘 사용한다. 일상생활에서도 great는 big, large, good, nice를 뛰어넘는 감정을 담고 있다. 물론 자주 쓰이는 편이다. 반면 겸양어법을 가진 우리네는 다르다. 지도자에 대해 봉건왕조문화를 가진 북한이나 ‘위대한’을 즐겨 쓰지 남쪽에서는 곧잘 반어법이나 유머로 쓰이는 정도다. ‘위가 크다[胃大]’고 하고, 실제로 한 편의점은 이런 뜻으로 ‘위대한 시리즈’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6개국어를 구사하는 김운용 전 부위원장도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등 서양언어에 능하기에 책 제목에 ‘great'를 쉽게 가져다 썼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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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사진. 한국의 이은주(오른쪽)와 북한의 홍은정(27)이 다정하게 셀카를 찍는 모습으로 '위대한 몸짓'이 됐다.


# 위대한 몸짓(Great gesture)! 리우 올림픽에서 한민족의 위대함이 표출됐다. 체조선수인 한국의 이은주(17)와 북한의 홍은정(27)이 다정하게 셀카를 찍는 사진이 국제적으로 화제가 된 것이다. 미국의 <야후 스포츠>는 “모두를 하나로 묶는 올림픽의 힘은 여전하다. 이은주와 홍은정이 함께 사진 찍은 장면이 바로 그런 순간”이라고 평했다. 정치학자인 이안 브레머 교수(뉴욕대)는 “올림픽을 하는 이유”라고 해석했다. 10일(한국시간) 토마스 바흐 IOC위원장(독일)은 “올림픽만이 보여줄 수 있는 ‘위대한 몸짓’”이라고 극찬했다. 이쯤이면 국내 언론은 대서특필하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 개인적으로 스포츠를 학문적으로 공부하고 있는 까닭에 ‘인류 화합과 평화에 이바지하는 스포츠의 순기능’에 부러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생각해볼 대목이 분명 있다. 왜 이런 식이냐는 것이다. 2008년 이후 보수정권이 계속되면서 남북 대립구도는 날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 북한이 참가했다. 축구, 탁구, 역도 등 많은 종목에서 남북한 선수들이 정치적 맥락을 뒤로 한 채 교류했다. 심지어 기자도 남북한 탁구선수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아주 쉽게 찍었다. 연습할 때 남북한 선수들이 친목을 다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때는 왜 ‘위대한 몸짓’이 아니었을까? 서양의 언론이, 미국의 저명한 교수, IOC위원장이 말하면 위대해지는 것인가? 이게 좀 불쾌하다. 아닌 척 하면서 여전히 서구 사대주의 문화가 느껴진다. 우리는 이미 1991년 탁구 및 축구 단일팀, 통일축구와 통일농구, 올림픽 개회식 동시입장 등 ‘셀카’ 한 장 이상의 위대한 몸짓을 수도 없이 많은 연출한 배우이기에 더욱 그렇다.

# ‘또 하나의 올림픽’을 표방하는 ‘2016 세계무예마스터십’이 9월 청주에서 열린다. 북한대표팀의 참가를 여러 요로를 통해 요청했지만, 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남들의 추켜세우기를 즐기는 것보다는 실제로 스포츠를 통한 위대함을 실천하는 편이 더 현명하다. 이번 ‘위대한 몸짓’에 앞서 훨씬 큰 강도로 세계인의 찬사를 받았던 올림픽 무대의 남북스포츠교류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개폐회식 남북한 동시입장이었다. 이는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을 끝으로 맥이 끊겼다. 공교롭게도 2000년 처음으로 동시입장을 기획하고, 실무를 책임진 사람이 김운용이고, 그가 정치적인 이유로 한국 스포츠계에서 퇴출된 것이 2006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위대함’의 사용법에 익숙하지 않은 듯싶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유병철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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