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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곽수정의 장체야 놀자] 수평선 위, 바람을 가른다 - 장애인요트 국가대표 박범준
요트 <아라파니>호의 김승진(54) 선장은 6년 동안 42피트급 요트로 지구 한 바퀴 반을 항해했다. ‘단독 무기항 무원조 무동력 요트 세계 일주’ 성공을 축하하기 위해 지난 7월 27일, 마지막구간인 거제도 지세포항~부산 영도 해양박물관은 장애인요트 국가대표 박범준 선수, 한국해양대 대학원생 손현중 씨 등이 여정을 함께 했다. 향후 <아라파니> 호는 부산 영도 국립해양박물관에 영구 전시된다.

“바다에는 계단이나 턱이 없어 내가 가고 싶은 곳을 바람에 따라 원하는 스피드로 갈 수 있어요.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위로 물살이 부서지는 바다를 가르며 빠른 스피드로 질주할 때 그 쾌감은 장애를 입었다는 생각조차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장애인요트의 선수대표로 <아라파니>호와 함께 한 박범준(27) 씨는 대한장애인요트연맹 국가대표다. 범준 씨가 요트를 타면서 느끼는 감정은 황홀 그 자체였다. 20대 젊은 패기는 장애인요트 선수로서 집념과 열정을 만들었다. 요트는 패럴림픽 정식 종목이지만 범준 씨는 아쉽게 2016 리우패럴림픽 출전권을 따지 못했다. 장애인요트 국가대표들은 다음 패럴림픽을 목표로 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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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요트 국가대표 박범준 선수가 훈련을 마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용기

꿈 많은 학창시절 범준 씨는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열심히 공부에 매진하며 수능을 준비했는데 그만 수능 전에 교통사고가 나면서 하반신이 마비가 되는 절망적인 순간을 맞이했다. 범준 씨는 몸이 불편한 것 외에 수능 시험을 치르지 못해 꿈이 사라지는 절망까지 느끼며 힘든 나날을 보냈다.

장애를 입은 뒤, 긍정 에너지의 소유자였던 범준 씨는 소극적이고 이유없는 짜증과 한없이 작아지는 것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지옥같이 살았다. 지켜보던 가족은 새로운 희망을 찾도록 밖으로 나가길 권했다. 아들이 세상과 맞서길 바라던 어머니는 항상 자신감을 갖도록 용기를 주었다.

재활을 하던 중 2008년 경기도장애인체육회의 ‘찾아가는 생활체육 서비스팀’을 통해 장애인요트를 소개받았다. 범준 씨는 ‘불편한 몸으로 운동이 얼마나 되겠어?’라며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요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곧 운동을 하면 할수록 예전의 성격으로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자심감이 생겼고 용기가 나기 시작했다. 가끔 운동을 하면서 몸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아 힘들었지만 희망이 생긴 것만으로 운동은 생활의 활력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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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장애인요트 싱글부 시상식 후 찍은 단체사진. 가운데가 금메달을 딴 박범준 씨.


장애인요트

장애인요트 종목등급은 1클래스부터 7클래스로 나뉜다. 장애가 중증일수록 숫자가 낮은 등급을 받게 된다. 장애인올림픽 종목에는 3가지 세부종목(개인전, 2인승, 3인승)이 있다. 2인승 종목은 두 사람 등급의 합이 9포인트, 3인승 종목은 세 사람 등급의 합이 14포인트 이내여야 한다. 이렇게 구분한 이유는 중증장애와 경증장애가 함께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범준 씨는 2클래스 등급에 속한다.

제29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2009년)는 범준 씨의 첫 데뷔무대였다. 교단에 서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이 대회는 중요했다. 왜냐면 대학교 특기생 진학을 위해 전국체전 3위 안에 입상을 해야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요트 첫 대회이자, 입상을 하지 못하면 대학교 진학의 꿈을 접어야 하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범준 씨는 더 떨리고 절실했다.

“첫 출발은 하위권에서 출발했어요. 그런데 2바퀴째부터 이상하게 바람이 저에게 집중되어 부는 것을 느꼈어요. 요트는 바람이 없으면 전진을 못하기 때문에 바람은 굉장히 중요한 추진제인거죠. 다른 배들은 바람을 받지 못해 추진을 얻지 못하는 반면 제 배는 바람이 순조롭게 불어줘서 마지막 피니시를 1위로 들어오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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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대학교 특수체육교육과를 졸업하면서 동기들과 함께. 오른쪽에서 두 번째 휠체어를 탄 사람이 박범준 씨.


범준 씨는 많은 요트대회에 참석했지만 첫 대회를 가장 잊지 못하고 있었다. 장애을 입은 뒤 새로운 인생의 첫 출발점인 동시에 대학의 길을 열어준 값진 금메달이었다. 실제로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던 범준 씨는 이 금메달 덕에 용인대 특수체육교육과에 진학했고, 4년을 노력한 끝에 교원자격증을 획득했다. 사고로 잠시 미루었던 꿈을 요트를 통해 이룬 것이다.

외국에 나가서 요트를 탈 때, 장애인들이 편리하게 요트를 탈 수 있는 마리나(요트나 유람선을 계류시키거나 보관하는 시설)가 잘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필수로 갖춰져 있어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차별없이 요트를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은 장애인이 요트를 탈 수 있는 시설이 미흡해 요 트를 탈 때 장애를 더 실감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대표

부산에서 장애인요트 국가대표로 훈련 중인 범준 씨는 무더운 여름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다. 아침 6시에 기상하여 한 시간 런닝을 하고 9시 경기장으로 나간다. 오전은 해상 훈련에 대한 육상미팅 후 요트를 타고 해상으로 나간다. 점심은 해상에서 김밥이나 빵으로 대신한다. 오후 3시에 육상으로 돌아와 미팅 후 저녁식사와 이론교육으로 마무리한다. 한 번 나가면 해상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즐겁게 임하고 있다.

요트를 타려면 체중관리가 필요한데 범준 씨는 요즘 체중감량을 위한 식단조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침에 바나나, 점심은 밥 반공기, 저녁은 낫토로 체중감량 도전 중이다.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데 식단조절이 너무 힘들어요”라며 웃픈(웃기지만 슬픈) 얼굴을 보여주었다.

범준 씨는 앞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더욱 훈련에 매진하고 많은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말했다. 아시아를 넘어 가장 큰 무대인 장애인올림픽에 도전하는 것. 이는 절망 속에 있는 많은 장애인들에게 요트를 통해 본인이 느낀 긍적적이고 밝은 마음을 갖게 해줄 수 있기에 더욱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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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제6회 제주도자치도지사배 장애인요트대회에서 박범준 씨가 1등으로 질주하고 있는 모습.


“꼭 요트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어떤 스포츠라도 사람들과 어울려 할 수 있는 운동이면 다 추천합니다. 메달이 중요한 게 아니니깐요. 본인의 건강을 위해 운동은 꼭 필요합니다. 꼭 해야 된다는 일로 생각하지 말고 그냥 즐기세요. 가볍게 동네 한 바퀴를 돌아도 좋고 전문적으로 체육시설을 찾아 운동을 시작해도 좋습니다. 일단 밖으로 나와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벅찬일인지를 느끼길 바랍니다.”

범준 씨의 말은 그대로 적으면 교과서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진솔했다.

범준 씨에게 가족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사고가 난 후 가장 가까이에서 아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더욱 괴로웠을 부모님은 지금 범준 씨의 모습을 가장 좋아하시고 행복해한다. 범준 씨가 금메달을 따올 때마다 부모님은 온동네에 전화를 걸어 자랑을 한다. 장애를 이겨낸 아들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며 눈시울을 붉히곤 하지만 가족이 있어 힘이 난다고 했다.

장애인요트의 유망주 박범준 씨는 누구보다 도전과 용기를 지닌 선수다. 새로운 꿈이 있기에 현재를 즐기며 미래를 설계한다. 장애인들에게 웃음과 해피바이러스를 전파하고자 하는 그의 꿈을 응원하다. 2020 도쿄패럴림픽에서 그의 메달을 기대하며 장애인요트에 대한 관심과 응원을 당부하고 싶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곽수정 객원기자 nicecandi@naver.com]

*'장체야 놀자'는 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에게도 유익한 칼럼을 지향합니다. 곽수정 씨는 성남시장애인체육회에서 근무하고 있고, 한국체육대학에서 스포츠언론정보 석사학위를 받은 장애인스포츠 전문가입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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