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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건식의 도의상마] 살곶이벌과 기사(騎射)
우리사회에서 여가스포츠는 경제성장과 더불어 친숙해지고 있다. 한때 부(富)를 상징하는 귀족스포츠로 불리던 골프도 지금은 제법 대중화됐다. 체육학계에서는 골프만큼 승마도 대중적인 관심사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지만 아직까지 승마는 일반인들에게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승마에 대해 거리감이 있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중앙아시아와 몽골과 같이 자연초지가 많은 곳에서 말은 친숙한 동물이고 생활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그러한 환경과 말을 키우고 승마를 할 수 있는 공간 자체를 접하기가 어렵다. 이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보면 말은 우리 민족에게 친숙한 동물이었다. 수많은 유물을 통해 시대별 말의 활용을 알 수 있고, 서양의 폴로(Polo)보다 더 많은 기량을 가지고 있는 격구(擊毬)와 왕이나 귀족이 즐겨하던 기사(騎射)도 있었다. 이렇게 보면 과거 우리에게는 공간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의 중랑천을 중심으로 아차산과 용마산자락은 성(城) 밖의 최대 목장이었다는 기록만 보더라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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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곶이목장 전경. [사진=서울시]


말[馬]과 관련된 지명


아차산에서 발견된 각종 유물 등을 보면, 고구려가 한강유역을 점령할 시기부터 말은 그곳에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재미있는 것은 과거에 도성의 동대문 밖으로는 아차산까지 넓은 들인 살곶이벌이 펼쳐졌다는 사실이다. 살곶이벌은 동쪽에서 서쪽로 흐르는 한강과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중랑천이 만나는 곳의 큰 벌판이다. 태조 이성계가 도읍지를 정하기 전 한양의 지리를 살필 때 이 벌판 동교에 나아가 매를 놓아 사냥을 즐겼다. 응봉에서 활을 쏘자 화살을 맞은 새가 중랑포의 살곶이 목장의 도요연(桃夭淵, 도요연은 말의 음료로 사용하던 작은 못)에 떨어졌다고 해서 그 자리를 ‘살곶이’라 하였다는 전설도 있다.

살곶이벌은 자연 평야가 형성되어 풀과 버들이 무성해 조선 초부터 말을 먹이는 목장이 되었다. 또한 왕의 매 사냥터로도 알려져 ’동교수렵(東郊狩獵)‘이란 말도 전해진다. 조선시대에 이 곳을 국립목장으로 만들었다. 과거 마장(馬場)의 안 넓은 벌판이라고 일컬어지던 ‘장안평’과 조선 초기부터 숫말을 기르던 양마장(養馬場)이 있었던 ‘마장동’, 그리고 제주도 등에서 말을 운반해 온 암말은 지금의 ‘자양동(雌養洞: 옛이름 雌馬場里)’으로 보냈다고 한다. 암말을 키우는 자마장동(雌馬場洞)이 훗날 ‘자양동’으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목장 맞은 편이라는 뜻의 이름이 바로 면목동이다. 지금의 한양대학교 자리에는 말의 안녕을 비는 마조단(馬祖壇) 터가 있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왕이 제사를 지낸 곳인데 말의 전염병을 예방하려는 목적으로 말의 조상인 천사성(선목, 마사, 마보)을 모셨다고 한다.

뚝섬도 그렇다. 태조 때부터 성종 때까지 무려 151번이나 왕이 이 동네로 행차했다는 기록이 있다. 왕이 행차하면 커다란 깃발을 꽃았는데 ‘독기를 꽂은 섬’이라는 뜻의 ‘독도(纛島)’로 불리다 뚝섬으로 바뀐 것이다(독기를 꽂았던 장소는 지금의 서울 성동구 성수동 천주교성당 터).

이처럼 뚝섬에는 거대한 말목장도 있었고 왕의 사냥터이자 군사 훈련장으로도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왕이 자주 왔다는 흔적은 이 곳 동네 이름에서도 찾을 수 있다. 화양동은 원래 화양정이 있어서 붙혀진 이름으로 이 정은 살곶이목장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었다. 군자동은 왕의 일행이 거동하다가 마침 이곳 남일 농장터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날 밤 동행하던 왕비가 옥동자를 낳아서 불러진 이름이고, 이 곳을 명려궁터라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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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속초에서 개최된 기사대회 장면. [사진=세계기사연맹]


성동 광진 중량은 ‘말들의 동네’였다


이 말목장은 지금의 성동구와 광진구, 그리고 중랑구에 이르는 상당히 큰 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당시 기사와 격구가 기존 기록보다 더 발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그런 거대 목장을 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기사는 지금 한국을 중심으로 스포츠화되어 전세계 30여 개국에서 한국형(Korean Style) 기사로 보급되어 있다. 오는 9월 청주에서 개최되는 세계무에마스터십 중 기사종목만은 속초시 영랑호 화랑도 체험단지에서 개최된다. 대회개최지인 청주마저도 도시화가 이루어져 말들이 뛸 수 있는 경기장 확보의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기사는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에 잘 묘사되어 있다. 기사종목은 말을 달리는 시간과 활을 쏘아 맞힌 점수를 합하여 우열을 가리는 경기다. 조선시대 인재등용을 위해 실시한 기사종목을 현대화한 것으로, 말을 달리는 시간만 디지털화했을 뿐 과거와 큰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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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영랑호화랑도체험단지에서 훈련중인 말레이시아 기사 선수. [사진=세계기사연맹]


현재 많은 국가들이 이 한국형기사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그 이유는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고 표준화된 경기규정이 있으며, 무엇보다 말의 달리는 속도를 측정한다는 점에서 박진감 넘치는 경기이기 때문이다. 승마가 활성화되지 못한 우리에게 어쩌면 전통승마가 승마대중화를 위한 새로운 방법이 될 수도 있다.

퇴근길 강변역에서 2호선 전철을 타고 이동하다 보면 과거 거대 말목장이 있었던 구의, 성수, 뚝섬, 그리고 한양대역을 지난다. 이 때 옛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즐겁기만 하다.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 뒤로 멀리 아차산과 용마산이 보이고, 중랑천은 물고기가 해지는 것을 아는지 물위로 튀어 오르며 은빛이 반짝거린다. 말이 달리던 길이었을 동부간선도로는 퇴근길 차량으로 동부간선도로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이제 그 곳에서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쏘던 옛모습은 속초 영랑호에서 20여개국의 기사인(騎射人)들이 국가를 대표해 자웅을 겨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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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9월 개최되는 기사대회의 홍보 포스터.



*허건식 박사는 예원예술대학교 경호무도학과와 부설 국제TSG연구소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6청주세계무예마스터십조직위원회 수석전문위원, 국립태권도박물관 운영위원, 대한무도학회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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