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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화영이 만난 골프人] 시각장애인골프 그랜드슬래머 조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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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찬 씨는 27일 시각장애인 골퍼로서의 애환과 보람을 털어놨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바람을 가르며 호쾌하게 창공을 향해 날리는 드라이버 샷은 호기와 패기에 넘쳤던 나의 젊음이었으며 깊은 벙커와 빠져나올 수 없는 해저드는 시력 상실로 인한 좌절과 절망 그리고 인간적 배신으로 아파했던 고난이었다. 그러나 홀컵을 훑어 들어가는 마지막 롱 퍼팅은 욕심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보게 된 극복이었다. 그것이 나의 골프 인생이다.’

지난 21일 영국 슈롭셔의 텔포드골프&컨트리클럽에서 열린 ISPS한다브리티시블라인드골프대회에서 우승한 63세의 시각장애인 골퍼 조인찬 씨가 외우고 다니는 문장이다. 2008년과 2011년 호주 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캐나다(2012년), 미국(2015년), 영국(2016년)까지 블라인드 골프계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난 뒤 감격에 겨워 지었다고 한다.

시력 상실로 좌절하던 조씨의 인생은 그의 말처럼 골프로 극복되었다고 봐도 틀리지 않다. 한참 사업가로 잘 나가던 30대 중반인 1988년에 ‘황반변성’을 진단받아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한동안 좌절했으나 이내 툭툭 털고 일어나 더 활발하게 생활하면서 골프와 스키 등 운동에 몰두했다. 핸디캡 2오버파의 실력자 골퍼가 됐다. 하지만 2000년엔 왼쪽 눈에도 같은 증상이 일어났고, 급기야 2005년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황반변성이란 망막을 지나는 혈관의 이상으로 시세포가 서서히 죽어가는 질병으로 주변 시력만 남고 중심 시력은 사라진다. 주로 65세 이후에 발생하지만 그에게는 젊은 시절에 질병이 찾아온 것이다.

조씨는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였고 삶을 개척했다. ‘장애인으로 사는 법’을 익혀나갔다. 그리고는 2007년부터는 골프를 다시 시작했다. 마침 국내 최초로 베어크리크에서 시각장애인 골프대회가 열렸던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골프장 잔디를 밟았을 때의 느낌은 이전에 정상인으로 골프를 할 때 느낄 수 없었던 쾌감이었다. 시각장애인으로 거리를 걸을 때면 항상 지팡이에 의지하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거나 똑바로 조심조심 신경쓰며 걸어야 했지만 필드에서는 혼자서, 마음대로 걸어도 되고 뛰어도 되고, 심지어 넘어져도 거칠 게 없었다. 남을 신경쓰지 않고 마음대로 걸을 수 있는 자유는 쾌감 그 자체였다.

성한 몸일 때는 느끼지 못하던 사소함이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퍼팅을 할 때도 그 느낌이 있다. 도우미가 조준해주고 거리와 오르막 내리막을 불러주면, 스트로크를 할 때 느낌이 온다. 그리고 잠시 후, 딸가닥 하고 홀컵에 들어가는 기다림은 몸이 성할 때는 느끼지 못하던 짜릿함이었다.”

국내 대회를 평정한 그는 2008년4월에 일본에서 열린 시각장애인골프대회에 출전해 격려상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각종 해외 대회에 신청하고 그들의 문화를 익혔다. 2008년에 호주에서 우승한 이래 최근까지 수많은 국제 대회에서 우승을 쏟아냈다.

그에게 시각장애인으로 그랜드슬램을 하는 성공담이라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느꼈던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실제적인 장벽에 대해 물었다. 장애인으로 골프라는 스포츠를 하면서 느꼈던 주변 사람들의 흔치않은 도움에 대한 얘기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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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서포터인 김신기(좌)씨와 영국 대회의 우승 트로피를 들고 선 조인찬 씨.


스마트폰 문자 메시지도 잘 받는 것 같은데 어떻게 확인하나?
- 핸드폰으로 문자가 오면 지금처럼 큰 돋보기를 대고 한참 들여다 본다. 나는 시각장애인 골퍼의 시력 등급상 B2다. B1이 전맹(全盲)으로 완전히 볼 수 없다면 나같은 B2는 약시에 해당한다. 그보다 정도가 덜한 B3는 예컨대 남녀 화장실 모양까지 구분하는 정도다. 하지만 시력을 잃으면 다른 감각이 발달한다.

한국의 시각장애인 대회의 현황은 어느 정도인가?
- 2007년부터 경기도 포천의 베어크리크골프클럽에서 매년 대회를 열어주고 있다. 올해로 10년째다. 그리고 매주 월요일마다 시각장애인들이 9홀이라도 연습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향후 지방에도 그런 골프장이 늘어나면 좋겠다. 한국은 베어크리크 한 곳에서 국내 대회만 개최하고 있다. 외국 선수를 초청하는 국제대회는 좀더 먼 훗날의 일이다. 해외 선진국에는 지역 별 대회가 있고, 국제 대회를 열면 출전 선수들의 숙식을 스폰서가 후원한다. 일본계 국제기구인 ISPS가 최대 5만달러까지 후원한다. 해외에서 선수들 초청하는 비용은 적을 수 있다. 하지만 국제 대회를 개최하려면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요소를 감안하면 아직 국내에서는 꿈같은 일이다.

볼빅에서 어떤 후원을 받고 있나?
- 2012년 캐나다 대회에서 우승한 뒤에 볼빅 모자를 쓴 사진이 캐나다헤럴드 신문에 크게 소개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캐나다 대회 이후로 볼빅에서 공과 모자, 백까지 주로 용품 지원을 받는다. 볼빅에는 많은 프로선수가 소속되어 있지만 아마추어로는 내가 유일하다. 볼빅의 노란 볼이 시각장애인에게도 가장 식별이 잘 되고 좋다. 아시다시피 모든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록 안내판도 노란색이다.

골프 연습은 어디서 하나?
- 시각장애인을 보듬어 주는 연습장이 생겼다. 방배동 화인골프스쿨의 축구선수 출신 정포영 사장은 넉넉하게 받아준다. 거기서 시각장애인들은 맘껏 연습한다. 보통 2시간 이상 많게는 4시간까지도 연습한다. 다른 연습장은 장애인을 배척하거나 눈치를 주는 편이다. 나도 두 번 정도 내쫓김을 당했다. 그건 아마 선입견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장애가 있을 뿐 연습하는 다른 골퍼들에게 방해가 된 적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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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에 나가기 전 태극기를 걸고 결의를 다지고 있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이후로 골프와 관련한 꿈이라면?
- 이번에 리우올림픽 패럴림픽에 만들어질 수도 있었다. 지역 대회도, 조직도 있고 선수들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패럴림픽은 지체장애인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골프대회를 만들기 어려워서 그 계획은 결국 무산됐다. 하지만 4년 후인 2020년 일본 패럴림픽에는 시범종목으로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거기서 메달을 따는 것이 꿈이다.

샷을 할 때 가장 애먹는 어려운 점은?
- 헤드가 닫혔는지 열렸는지 몰라서 애를 먹는다. 원근 측정이 잘 안 된다. 퍼팅하다모면 원근 측정이 특히 안된다. 가끔은 눈을 퍼터 헤드 가운데 하얀 점에 볼을 맞춘 뒤에 그대로 일어나서 치기도 한다. 매번 그렇게 해서 퍼팅이 된다. 그러니 몸을 점점 숙이게 된다. 티샷도 도우미가 방향을 잘 잡아주지 않으면 오비가 난다. 이번에 영국 대회에서도 페어웨이가 아니어도 러프에 놓인 볼은 거의 치기 힘들었다.

반대로 시각장애인 골퍼가 뛰어난 점이라면?
- 60m 이내 어프로치는 다들 도사다. 시각 능력이 떨어지는 대신 섬세한 감각을 키우기 때문이다. 방향만 정확하게 숙지하면 홀 1m이내에 쉽게 붙인다. 기계적으로 스윙 크기를 정하고 샷을 한다. 오히려 보지 않고 기계적으로 스윙을 하니까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

시각장애인에게 골프라는 운동은 얼마나 좋은가?
- 골프는 건전하고 좋은 운동이다. 특히 시각장애인에게는 필드에 서는 것만으로 행복감을 느낀다. 또한 골프 연습을 하면서 운동신경이 발달한다. 사물을 분간하는 대응력도 개선된다. 그러니 운동으로 봐주었으면 좋겠다. 시각장애인이 필드를 걷는 건 일반인이 필드를 걷는 것과 비교할 수 없다. 도우미나 지팡이 없이 걸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좋은 것일지 생각해보시라. 하지만 골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자체가 ‘골프는 고급 운동, 브루조와 여가’라는 인식이 있는 게 늘 맘에 걸린다. 장애인골프협회 일로 관공서를 간 적이 있는데 담당자가 대뜸 “나도 골프 안 쳐요”라고 하더라. 심하게 표현하면 ‘니까짓 게 뭘 하느냐’라는 뉘앙스였다. 부정적인 인식을 갖지 말아주었으면 좋겠다. 시각장애인에게 건강을 유지하는 운동이라면 골프가 최고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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