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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와 성(性 )] 중세시대 축구와 정액 검사
오늘날의 스포츠는 규격화되어 있다. 경기장의 크기와 규칙이 정해져 있고, 많은 신축 경기장들은 국제스포츠기구의 규격을 준수해 공인을 받으려 노력한다. 물론 필드의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골프까지는 아니더라도, 야구장의 외야나 축구장의 크기처럼 규격화된 경기장에도 어느 정도의 가변성은 존재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해진 범위 이내에서만 경기장의 변형이 허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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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에 관한 규칙이 미처 통일되지 않은 18세기의 축구 경기 장면은 마치 어린 시절 '동네 축구'를 보는 듯 하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근대에는 이런 규칙들이 통일되지 않아 한바탕의 혼돈이 일어났다. 많은 근대 스포츠가 탄생한 영국의 사립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간 경기가 벌어질 때면, 서로 자기네 축구 규정으로 경기를 하기 위해 다툼이 일었다. 아예 웹 엘리스라는 학생은 답답한 나머지 공을 손으로 들고 뛰어서 럭비라는 경기를 만들어낼 정도였다.

그나마 근대 이전의 중세에는 아예 규칙이라는 개념조차도 없었다. 사람들은 마을과 마을 사이의 평야에 모여서 공 하나를 두고 서로 일제히 뺏기 위해 격투기를 방불하는 모습을 연출하곤 했다. 하천으로 공을 들고 뛰어들기도 하고, 칼 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몰래 공을 들고 술집에 들어가 공짜 술을 얻어 먹는 모습까지 있었다. 이런 형태의 축구는 유럽 전역에서 다양하게 관찰되었는데 이런 형태의 중세축구를 ‘군중축구(mob football)’이라고 부른다. 지금도 잉글랜드의 애쉬본 지역에서는 이 중세축구를 그대로 재현하는 ‘왕립 사육제 축구(Royal Shrovetide Football)’이라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공 하나를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떼지어 드잡이를 하는 중세 축구의 모습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생명의 탄생 장면을 연상시킨다. 수많은 정자가 잉태를 위해 난자를 향해 돌격하는 모습과 닮은 것이다. 그러나 떼로 몰려 다니던 중세 축구가 시간이 흐르면서 체계화되고 규격화된 것처럼, 정상적인 정자의 상태를 평가함에 있어서도 확립된 기준이 있다.

불임 검사를 위해 비뇨기과를 내원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정액 검사를 하게 된다. 비뇨기과 의사들은 이 정액의 여러 수치들이 임신 능력 기준에 부합하는지 평가하기 위해 다양한 검사들을 하게 된다.

정액 자체의 용적을 나타내는 정액의 양, 그리고 cc당 정자의 수를 나타내는 밀도가 가장 기본적인 수치이다. 사람의 정액은 1cc 정도 되는 아주 작은 양에 1,500만 마리 이상의 정자가 존재해야 임신 능력이 있다고 판단한다. 이것은 최소 기준일 뿐,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상회하는 수의 정자가 존재하니, 정액이 얼마나 천문학적인 양의 정자를 포함하고 있는지 놀라울 뿐이다.

또한 정자가 난자를 향해 전진할 수 있는 능력인 운동성, 정자의 형태, 정액의 산도 및 정액 내 염증의 정도 등이 중요한 정액 검사 평가의 지표가 된다.

공 하나를 두고 무질서해 보이던 중세 축구가 규칙과 규격이 정립되며 현대 축구로 변화하였듯이, 얼핏 무질서해 보이는 정자의 움직임 역시 계량화와 정밀 측정을 통해 가임 능력을 평가하고 예측할 수 있는 수준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러나 작은 방울 속의 엄청난 수의 정자들을 볼 때마다 생명체의 놀라움과 신비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듯 하다. 이준석(비뇨기과 전문의)

*'글쓰는 의사'로 알려진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자,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다수의 스포츠 관련 단행본을 저술했는데 이중 《킥 더 무비》는 '네이버 오늘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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