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 (17) 스페인 루저들, 브라질 선수가 되다 - 풋볼 데이
<헤럴드스포츠>가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를 연재합니다. 앞서 연재된 시즌1이 기존에 출판된 단행본 '킥 더 무비'를 재구성한 것이라면 시즌2는 새로운 작품을 대상으로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이미지중앙

요즘 스페인 축구 대표팀과 클럽팀 모두 주가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또한 해외여행이 대중화되면서 스페인을 다녀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평범한 스페인 사람들의 삶은 아직 우리에게 낯선 것이 사실입니다. 2003년 개봉한 스페인 영화, <풋볼 데이((Dias de futbol)>는 이처럼 우리에게 낯선 스페인 사람들의 평범한 삶을 축구를 통해 소개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스페인 루저들의 세상 도전기

호르게(Jorge)는 마드리드에 사는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못된 상사를 만나 야근에 시달리고 다음날 아침 헐레벌떡 출근길을 서두르죠. 그런 그에겐 비올레타(Violeta)라는 여자 친구가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비올레타에게 청혼을 한 호르게. 하지만 호르게만큼이나 우유부단한 비올레타는 대답을 하지 않고 얼버무립니다.

비올레타의 오빠인 안토니오(Antonio)는 사실 범죄자입니다. 울분을 참지 못하고 쉽게 흥분하는 안토니오는 교도소에서 심리 치료를 통해 분노를 조절하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출소하면 꼭 심리치료사가 되겠다고 다짐하죠.
마침내 안토니오가 출소하고, 그는 심리학 공부를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전과자인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죠. 간신히 친구의 도움으로 직업을 구한 안토니오. 하지만 그는 심리학 공부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물론 심리학 치료가 효과가 있었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로 욱하는 성격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호르게와 안토니오 뿐 아니라, 그들의 친구들 역시 세상 사는 게 쉽지 않습니다. 삼류 영화배우 신세인 친구, 스쿨버스를 운전하며 매일 아이들에게 심한 욕을 듣는 게 일상인 친구 등등.

이런 그들은 자기들의 처지를 좀 바꿔보고자 아마추어 축구 리그에 참여하기로 합니다. 팀명도 대충 축구 잘하는 나라의 이름을 따 "브라질"이라 짓고, 동네 스포츠 용품점에서 훔친 짝퉁 브라질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는 호르게와 친구들. 하지만 매 경기마다 형편없는 실력으로 패배하게 됩니다.

게다가 축구를 시작하면서 일은 더 꼬이게 됩니다. 호르게의 여자 친구인 비올레타는 따분한 호르게에게 싫증을 내고 바람을 피우게 됩니다. 심리학 시험을 치러 간 안토니오는 자기가 공부한 것이 나오지 않았다며 난동을 피우죠. 친구들의 삶 역시 꼬입니다. 축구장에 유모차를 데려왔다가 아기를 잃어버리는가 하면, 영화배우라던 친구의 거짓말이 들통 납니다.

뭔가 삶의 활력을 찾고자 시작했지만 오히려 축구를 시작한 이후로 삶이 더 꼬여가는 이 이상한 상황. 과연 호르게, 안토니오와 친구들은 자신들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괜찮아, 잘 될 거야

사실 요즘 스페인의 사정이 별로 안 좋습니다. 유럽을 휩쓴 경제 위기의 직격탄을 받은 나라 중 하나죠. 원래 스페인의 삶의 리듬은 우리보다 여유로웠던 게 사실입니다. 대표적인 게 시에스타(siesta)라 불리는 낮잠 문화죠. 시에스타를 위해 두 시간의 점심시간을 가지는 것도 모자라 낮의 티타임과 늦은 저녁을 한 번 더 먹는 등의 문화는 스페인이나 그리스 등 지중해의 풍부한 물산을 자랑하는 국가들의 특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경제 위기로 스페인의 시에스타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고 하네요. 여유가 넘치던 스페인의 전통적인 일상도 많이 각박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풋볼 데이>는 비록 경제 위기가 닥치기 전인 2003년의 영화지만, 갈수록 각박해져 가는 스페인 서민들의 삶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비교적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고 있는 호르게지만 까다로운 상사 때문에 밥 먹듯이 야근을 해야 합니다. 전과자여서 그렇기도 하지만, 개과천선하여 공부에 뜻을 둔 안토니오도 사회의 차가운 시선 속에 하루 벌이를 걱정해야 하죠. 친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들 자신의 꿈과 상관없이 일상의 지루한 반복 속에서 의미 없이 살아가고 있죠.

그러나 우리는 역설적으로 삶의 무게에 힘들어하는 스페인 서민들이 축구를 통해 삶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스페인 특유의 낙천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형편없는 실력으로 나서는 경기마다 대패를 하면서도, 친구들끼리 같은 유니폼을 맞춰 입고 요란스럽게 그라운드를 뛰는 이들의 모습에서 강한 삶의 의지가 느껴지죠.

게다가 축구팀 생활을 하면서 그들을 괴롭히던 일상의 문제가 하나 둘 풀려가는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직장에서 그들을 괴롭히던 문제도 하나 둘 사라져갑니다. 여성들에게 인기 없던 그들도, 여러 계기로 사랑을 되찾게 되죠.

이처럼 이 영화는, 비록 삶이 어려워도 여유를 가지고 나름의 즐거움을 찾다 보면, 결국 문제는 해결될 거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위기지만, 시간을 갖고 삶을 살다 보면, 결국 좋은 시절이 다시 올 거라는 라틴 문화 특유의 낙천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어려운 시절을 견디는 방법에는 축구, 음식, 파티 문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모두 친구들과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이죠. 어려운 시기를 다 같이 모여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며 견디는 스페인 문화의 지혜가 녹아 있는 영화, <풋볼 데이>였습니다.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헤럴드스포츠>에서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1(2014년 08월 ~ 2015년 08월)을 연재했고 이어서 시즌2를 연재 중이다. 시즌1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를 재구성했고, 시즌2는 책에 수록되지 않은 새로운 작품들을 담았다.

sports@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
          연재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