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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늘집에서]감동을 안긴 장하나 부녀(父女)의 18번홀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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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LPGA투어 코츠 골프 챔피언십 최종라운드가 열린 골든 오칼라 골프클럽. 18번홀 그린에서 챔피언 퍼팅을 마친 장하나(24 비씨카드)는 검투사가 칼을 칼집에 넣는 멋진 우승 세리머니를 했다. 그리곤 평소 쾌활하던 성격과 달리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부친 장창호 씨를 얼싸안는 순간엔 흐느껴 울기까지 했다. 중계방송을 통해 흘러 나오는 장하나의 흐느낌은 승리의 기쁨 보다는 지난 시간의 고단함이 묻어나오는 듯 했다.

부친 장 씨의 모습도 감동적이었다. 자신의 뺨 위로 흘러 내리는 눈물은 그대로 둔 채 말없이 딸의 눈물을 닦아줬다. 장하나 부녀(父女)는 이날의 우승을 위해 15년이란 시간을 묵묵히 서로 의지하며 달려온 ‘고독의 승부사’들이다. 때론 좌절감에 마음이 무너져 내리기도 했으나 결국 고대하던 영광의 순간 감동을 자아내는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했다.

장하나는 국내 여자 프로중 가장 많은 돈이 투자된 선수다. 부친 장 씨는 서울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근처에서 고깃집을 운영해 적지 않은 돈을 벌었으나 몽땅 딸의 골프에 투자했다. 주변의 시기도 많았다. "쓸데없이 돈질한다"는 비아냥이 있었다.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주니어 시절 매년 1억원 이상을 투자하며 미국LPGA투어 진출을 준비했다. 지금도 1억원은 큰 돈 이지만 십수년 전 1억원은 웬만한 집 한 채 값이었다.

부친 장창호 씨는 마흔이 넘은 늦은 나이에 본 늦둥이 외동딸 장하나의 성공을 위해 반원초 3학년 때부터 미국을 드나 들며 레슨과 대회 출전을 병행했다. 본인도 운동선수 출신이라 그런 지 굳은 신념으로 앞만 보고 갔다. 그 결과 대원중 3학년 때인 2007년엔 US여자아마선수권에서 4강에 오르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2002년 제주도에서 열린 라온 인비테이셔널 때는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에게 특별 레슨을 받게 하기도 했다.

박인비가 US여자오픈에서 첫 우승을 거둔 2008년 대회장인 인터라켄 골프장에서 만난 부친 장 씨 부녀를 기억한다. 장하나는 예선탈락했지만 부녀는 대회코스를 떠나지 않았다. 비싼 돈을 들여 온 만큼 잘 치는 선수들을 따라 다니며 현장 학습을 한다고 했다. 장타자 안선주의 경기를 함께 지켜보던 부친 장 씨는 “우리 딸이 이 홀서 안선주 프로 보다 더 멀리 쳤어요!”라며 흥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실 그 땐 그 말을 믿지 않았으나 파4홀 홀인원을 잡은 지금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주니어 시절 장하나는 태극마크를 달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프로무대에 들어선 후 실망스런 날들이 많았다. 부모의 마음 같아서는 모든 대회를 휩쓸 것으로 기대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2부 투어를 거쳐 2011년 KLPGA투어에 데뷔했으나 5번이나 예선탈락했다. 첫 우승도 이듬 해인 2012년 10월 어렵게 거뒀다. 2013년 3승을 거두며 상금왕에 올랐으나 예상 보다는 늦게 이룬 성과였다.

장하나의 약점은 퍼팅이었다. 신(神)은 장하나에게 튼튼한 하체에 장타력이라는 큰 선물을 준 반면 섬세한 감각이 요구되는 퍼팅능력은 주지 않았다. 이를 개선시키기 위해 용하다는 코치들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 다녔다. 그리고 맹목적일 정도로 퍼팅에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수년전 안산 대부도의 아일랜드CC에서 본 이들 부녀의 모습도 뇌리에 남아 있다.

당시 메이저 타이틀인 KLPGA선수권에서 장하나는 짧은 퍼트를 여러 개 놓쳐 우승경쟁에서 탈락했다. 그래서일까. 모든 선수가 대회장을 떠난 뒤에도 혼자 남아서 퍼팅연습을 했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연습은 계속됐다. 부친 장 씨는 묵묵히 딸의 곁을 지켰다. 그 때 장하나의 얼굴에 웃음기는 없었다. 요즘 장하나의 트레이드 마크인 활짝 웃는 얼굴은 이런 인고의 시간을 먹고 만들어졌다. 어느덧 퍼팅 실력도 LPGA 첫 승을 만들어낼 정도로 향상됐다.지나온 이야기가 어디 이것 뿐일까! 장하나 부녀의 눈물은 말없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다. [헤럴드스포츠=이강래 기자]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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