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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미식축구는 '전쟁의 축소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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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이 열광하는 슈퍼볼.


프로 미식축구의 결승전인 ‘슈퍼볼’이 오는 8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산타클라라 시 리바이스 스태디엄에서 덴버 브롱코스와 캐롤라이나 팬더스의 대결로 펼쳐진다. 매년 그랬지만 올해 역시 갖가지 기록이 경신될 것으로 보인다. 외신에 따르면, 이날 1억 1,000만 이상의 미국인이 만사를 제쳐놓고 TV 앞에 모여 슈퍼볼을 시청하면서 무려 15조가 넘는 돈을 쓸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 전후 이들이 먹어 치울 피자는 무려 1,200만 판. TV 광고료는 또 어떤가. 시청률 단가 역시 치솟고 있다. 30초짜리 하나가 평균 60억 원을 넘어섰다. 얼마전까지만 헤도 미국에서는 야구가 최고의 패스타임(여가선용)으로 인식되었지만, 지금은 미국인의 3분의 2 이상이 미식축구를 최고의 패스타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 인기의 비결은 대체 무엇일까?

미국인의 호전성이 그중 하나일 수 있다. 미식축구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마치 전쟁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공격과 수비 전술 패턴이 전쟁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러닝공격 시 라인맨들이 상대 수비를 뚫어 돌파구를 내고 러닝백이 뛰어드는 모습은 마치 적과 전투할 때 육군의 보병 저격사단이 뚫린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전면전을 닮았다. 패싱으로 상대 진영을 휘젓는 장면은 미사일 공격 또는 공군의 공습과 비슷하다. 수비 역시 다르지 않다. 상대의 공격 전술에 따라 수비 패턴을 수시로 바꾸는데, 상대가 패싱 공격을 할 때는 수비의 2선을 강화한다. 미사일 공격 또는 공습에 대비하는 것이다. 상대가 러닝 공격을 할 때는 수비 1선을 강화한다. 전면전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비 전술은 경기 내내 상대 공격 패턴을 사진으로 찍은 후 분석하는 코치진에 의해 선수들에게 전달된다. 짧은 시간 내에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이 관건이다.

선수단의 구성 역시 전투부대와 다를 게 없다. 사이드라인에 있는 코치진은 야전사령관 역할을 한다. 실질적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곳임 셈이다. 볼을 센터에게서 받아 와이드 리시버 또는 타이트 엔드에게 패스하거나 러닝백에게 볼을 건네주는 역할을 하는 쿼터백은 소대장 격이다. 쿼터백은 경기 내내 사령부로부터 하달된 전술을 실행하지만, 때로는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식 플레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 전투에서의 소대장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전개되는 것도 비슷하다. 공격 시 네 번의 기회 동안 10야드를 넘으면 계속 공격권을 갖게 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상대에게 공격권을 넘겨줘야 한다. 일진일퇴를 거듭하면서 상대 진영의 앤드라인까지 볼을 가져가면, 그 때서야 점수를 얻게 된다. 전투도 마찬가지. 목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펼친다.

미식축구 경기에서는 또한 군사용어가 여과되지 않은 채 사용된다. 코치진들은 선수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전쟁하러 가자”라는 말로 그들을 독려한다. 수비 전술 가운데 하나인 브리츠(Blitz)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 기갑사단들의 전격전을 일컫는다. 미식축구에서의 블리츠는 수비수들이 일순간에 우르르 돌진하여 상대 쿼터백을 쓰러뜨리는 전술이다. 이 밖에, 긴 패싱을 뜻하는 폭탄(Bomb), 이라크 바그다드 외곽지대에 설치한 위험지역을 의미하는 레드존(Red Zone), 그리고 킥이나 펀트를 할 때 상대 진영에 돌진하여 자기 진영으로부터 가능한 먼 곳에서 상대가 공격하도록 만드는 임무를 맡은 선수들을 말하는 자살특공대(Suicide Squad) 등이 있다.

이렇듯 전쟁과 관련된 많은 점들이 미식축구에 포함되어 있는 이유는 뭘까? 미국이 태생적으로 전쟁을 통해 발전해온 나라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전쟁을 통해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몰아냈으며, 영국과의 전쟁을 통해 독립했다. 멕시코 영토였던 북미 서부를 역시 전쟁으로 차지했고,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필리핀을 식민지로 획득했다.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의 결과로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도 미국은 세계 곳곳에 막강 군사력을 행사하며 ‘경찰국가’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미국은 이 같은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자국민들에게 끊임없는 애국심을 고취하고 있다. 군인 출신들을 우대하는 정책을 시행하는가 하면, 국민들로 하여금 군인들에 대한 존경심을 갖도록 하는 작업을 펼치고 있다. 스포츠 경기에서는 항상 국기에 대한 예를 갖추게 하는데, 여기에는 대형 성조기를 든 군인들이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어린이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나와 부르는 국가(國歌)에는 전쟁을 미화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위험한 전투 속에서 광대한 선과 빛나는 별들… 창공에서 분주한 포탄과 탄환의 붉은 섬광들은 밤새 우리 깃발이 펄럭이는 증거… 성조기여… 용맹의 나라에 펄럭이라.”

미국인들은 또 전쟁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아메리칸 스나이퍼’ ‘블랙 호크 다운’ ‘그린 존’ ‘인게이지먼트’ 위 워 솔져스’ ‘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 미국인들의 자긍심을 함양하는 영화가 매년 제작된다. ‘인디펜던스 데이’나 ‘에어 포스 원’과 같은 영화는 외계인의 공격과 테러리스트들을 분쇄하는 미국의 강대한 힘을 보여 준다.

결국 미국 역사와 문화가 지닌 진취성과 호전성이 미식축구에 고스란히 남아있기에 미국인들이 미식축구에 그토록 열광하는 것이다. 그들은 한 편의 전쟁영화와도 같은 슈퍼볼 경기를 통해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또 그보다 더 센 것을 추구하고 있음을 과시하고 싶어 한다. seanluba@hanmail.net

*필자는 미주 한국일보와 <스포츠투데이>에서 기자, 체육부장 및 연예부장을 역임했고, 현재 스포테인먼트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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