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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영섭의 링사이드산책] 절망을 딛고 일어선 복서 3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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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의 플라이급 국가대표 신동길.


미국의 전설적인 홈런왕 베이브 루스는 통산 714개의 홈런을 치는 동안 무려 2,330번의 삼진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이 홈런만 기억해서 그렇지, 그만큼 아픔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 내용은 나중에 방송광고로 만들어져 미국에서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16좌 완등(이에 대한 평가절하도 있지만)한 산악인 엄홍길 씨도 안나푸르나 등정에 고생이 많았습니다. 무려 4차례나 실패한 끝에 5번째만에 극적으로 등정에 성공했는데 그 기간은 10년이 훌쩍 넘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는 정상에 오르자마자 대통곡을 했다고 합니다. 또 세계적인 복서 문성길도 목포 덕인고 재학시절 전국대회 7차례 출전했지만, 건진 메달은 동메달 6개에 불가했습니다. 우승이 없었던 것이죠. 그토록 가고싶었던 한국체대를 입학할 수 없어 목포대로 진학했고 그나마도 전액장학생이 아닌, 절반의 등록금을 내야했습니다.

신은 인간을 실험하기 위해 여러 차례 쓰러뜨린다고 합니다. 포기하고 주저앉는 자에게는 절망을 심어주지만, 다시 일어나 핏빛 눈빛으로 앞을 내다보며 승부욕을 불태우는 자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면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준다고 합니다.

오늘은 시련을 극복하고 우뚝 일어선 3명의 복서가 생각나 글을 써봅니다. 1번 타자는 현재 서산에서 복싱체육관을 운영하고있는 신동길(1971년생, 예산, 대흥고등학교-경희대)입니다. 이 선수는 1987년 고등학교 1학년 때 복싱에 입문했지만 환경이 열악해서 예산군 덕산면에 위치한 체육관까지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했고, 비포장도로였기 때문에 왕복 4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대 이름은 대기만성, 신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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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호섭와 프로복싱 플라이급 한국타이틀전을 치르는 신동길(오른쪽).


신동길은 복싱을 시작한 그해 6월부터 전국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1989년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9번이나 전국대회에 출전했지만 단 한 차례도 입상하지 못하고 모두 예선에서 탈락했다는 사실입니다. 역시 3번에 걸친 전국체전 선발전에서도 단 한 번도 우승하지 못했죠. 왼손잡이로 좋은 기량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력만큼 경기운도 따르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전국체전 충남 선발전만큼은 난공불락의 요새를 구축한 대천고등학교를 넘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신동길은 눈물을 삼키며 1년을 유급해 다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전국대회에 출전했습니다. 하지만 또 다시 전국체전 선발전에서도 탈락하고, 2차례 전국대회에서도 역시 메달권에 들지 못했습니다. 고교 4년 동안 무려 11차례나 전국대회의 출전했지만 단 한차례도 입상하지 못했고, 4번의 전국체전 선발전(충남)에서도 단 한번도 우승하지 못한 겁니다.

이제 1990년 고등학교 4학년(?)의 마지막 경기인 전국우승권대회만 남았습니다. 8남매 중 6째인 신동길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형님과 누님들이 모두 중,고등학교만 졸업했기 때문인지 필사적으로 대학에 가고 싶어했습니다. 12번째 전국무대에 도전한 신동길은 이 마지막 기회에서 4전 전 KO승으로 플라이급 우승을 차지했고 대회 MVP에도 올랐습니다. 그리고 이 대회 덕에 체육명문 경희대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신동길은 대학에 입학한 후 2학년 때까지는 부상과 분위기 적응 등에 실패하며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3학년부터는 완전히 다른 선수로 거듭납니다. 1993년도 신동길은 김명복배를 비롯하여 학생선수권과 전국체전 등 출전한 모든 대회를 싹쓸이하며 기적 같은 4관왕에 올랐습니다. 이어 4학년 때에도 적수가 없었습니다. 2년 연속 4관왕을 달성했고, 특히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플라이급)에서 숱한 강적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았습니다. 이 2년 간 3전 전승(2번은 KO승)을 거둔 이근식(한체대)을 비롯해 아시아선수권 2연패와 올림픽 대표였던 전인덕(원주시청), 배기웅, 채승록(한체대), 이광호(원광대), 남기춘(경희대), 장영순(청양군청) 등 스타급 복서들이 물이 오른 신동길의 주먹에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신동길은 실업팀 청양군청에 입단해서도 1996, 97년 전국체전 2연패를 달성하는 등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습니다. 2000년 서른이 넘어 프로에 데뷔해 플라이급과 슈퍼플라이급에서 모두 국내 정상에 등극했지만 곧 선수생활을 정리했습니다. 청양군청 감독을 거쳐 현재는 서산에서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옥성 신화의 뒷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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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세계복싱선수권 금메달리스트 이옥성.


다음으로 소개할 주인공은 현재 국가대표 코치로 있는 이옥성(1981년생, 경남체고-서원대)입니다. 아마 익히 이름을 알고 있는 복싱팬들이 많을 겁니다. 이옥성은 1997년 학생선수권 결승(코크급/45kg)에서 김기석(1981년생, 경북체고-서울시청)에게 첫 패배를 당했고, 이듬해에도 같은 상대에게 두 차례나 거푸 무릎을 꿇었습니다. 또 당시 필자가 소속된 서울체고의 국나남(82년생, 서울체고-한체대)에게도 학생선수권과 체육고대항전에서 2연패를 당하는 등 고교 3년 동안 크게 빛을 발휘하지 못한 복서였습니다.

1999년도 서원대에 입학, 라이트플라이급(48kg)으로 뛰었는데 했는데 서울시청으로 간 김기석도 체급을 올려 또 상대하게 됐습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2년도 부산 아시안게임, 그리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까지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이옥성은 모두 김기석에게 가로 막히고 말았습니다. 어느덧 8전 8패. 의기소침해 있던 중 2005년 중국 미안양에서 벌어진 제13회 세계선수권 선발전에 ‘천적’ 김기석이 출전하지 않는 행운이 오자, 이옥성은 국가대표(플라이급)로 선발됐습니니다.

그런데 최고 무대인 세계선수권 본선에서 믿을수 없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8강에서 타지키스탄의 유뉴소프 안바르를 15-9로 꺽으며 준결승에 안착한 이옥성(보은군청)은 준결승에서 세계적인 복서 워렌을 44-27로 꺽으며 결승에 올랐습니다. 이어 결승에서도 쿠바의 에르난데스를 31-30, 1점차 판정으로 물리치며 세계 정상에 올랐습니다. 1986년도 제4회 리노 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문성길(밴텀급)에 이어 무려 19년 만에 나온, 올림픽 금메달보다 더 힘들다는 세계선수권 금메달이었습니다(이옥성은 이 우승으로 2005년 대한체육회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이옥성은 김기석에게 평생 “(이겨서)미안하다”는 말만 듣다가 세계선수권 우승 이후 처음으로 “축하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리고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선발전에서 김기석과 운명적인 맞대결을 또다시 벌여 이번에는 극적인 판정승을 거두고 기나긴 연패사슬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무려 10년 만에 거둔, 처음이자 마지막인 승리였습니다(두 사람의 종신 전적은 1승 12패). 현재 김기석은 영주 동양대학교 복싱부 감독으로 재직 중입니다.

전국체전 10연패의 주인공, 김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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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아마복싱 최우수 복서 김정주.


3번째 전화위복의 복서는 1981년생으로, 이옥성과 경남체고 동기인 김정주입니다. 1998년 연맹회장배 대회로 기억되는데 김정주는 그때 대천고의 이승호(한국체대)에게 정말 참담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완패를 당했습니다. 당시 대천고는 강석구 충남회장의 휘하에 박현성(불사조, 피닉스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복서, 이미 고인이 됐죠)이라는 특출한 코치가 있었는데, 조폭 출신의 이 코치가 지휘한 선수들의 전투력은 군에 비유하자면 특수부대처럼 막강했습니다. 이 경기에서 김정주는 마치 장비가 장팔사모를 휘두르듯이 무자비하게 난타하는 이승호의 강타를 온몸으로 받으며 쓰러졌습니다. 너무도 처절했던 까닭에 아직도 그때 모습이 생생합니다.

이후에도 김정주는 이승호와의 맞붙었지만 승리의 여신은 늘 이승호 편이었습니다. 이승호가 복싱사관학교인 한체대로 위풍당당하게 입학할 때 김정주는 강원도 원주에 있는 상지대학교로 발길을 돌려야했습니다.

그러나 김정주는 상지대에 진학하면서 전국체전 4연패를 이룩하는 등 완전히 다른 선수로 변신에 성공했습니다. 특히 대학교 4학년 때인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했고, 2004년과 2008년 올림픽에도 출전해 모두 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달성했습니다. 2006년도 도하 아시안게임까지 국가대표로 뛴 김정주는 상지대를 졸업하고 원주시청에 입단해서도 국내 최강자로 활약했고, 전국체전에서는 등 무려 10연패의 금자탑을 쌓았습니다. 참고로 한체대로 진학한 이승호의 활약은 필자에 뇌리에 전혀 각인되어 있지 않을 정도로 평범한 복서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필자가 아마복싱계에 10년 이상 몸 담고 있으면서 느낀 것은 어느날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나 전국무대를 휩쓸던 유망주들이 시나브로 유성처럼 하나둘씩 사라지는 모습들을 많이 지켜봤다는 것입니다. 반면 앞선 3명의 복서들처럼 한때의 좌절과 고난을 잘 극복해 더욱 큰 열매를 딴 경우도 있습니다. 중국 속담에 ‘부파만 즈파짠[不?慢 只?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늦는 것을 두려워 말고 멈추는 것을 두려워하라는 뜻이죠. 복싱과 스포츠는 물론, 세상사에서도 현재 어려움을 겪는 많은 분들이 모두들 잘 극복해냈으면 합니다. [문성길복싱클럽 관장]

P.S. 이달 말 경기도 강화에서 프로 KBF(회장 이인경) 신인왕전이 개최됩니다. 신인왕전의 부활은 프로복싱의 부활의 서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인왕전을 통해서 김태식, 장정구, 박종팔, 백인철, 유명우, 신희섭 등 수많은 챔피언들이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신인왕전의 웰터급에 출전하는 김동영(21, 순천체육관)은 주목할 만한 선수 중 한 명입니다. 일찍 해병대를 제대하고 작년 10월 완주에서 벌어진 루키 퍼레이드에서 2라운드 KO승을 거두며 존재감을 과시했조. 중학교 2학년 때 뒤늦게 복싱에 입문한 김동영은 앞서 아마추어에서도 24전 18승 6패(7KO승)를 기록하며 도민체육대회 두 번이나 우승한 경력이 있습니다. 신장 176cm의 연습벌레로 그를 지도하는, 전 한국 밴텀급 챔피언이자 OPBF 1위였던 박경철(75년생) 관장은 제법 큰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신인답지 않게 복부 공격에도 능하고, 무엇보다도 복싱에 대한 열망이 강하다고 합니다. 참고로 전라도 순천은 우리나라 한국복싱에서 최초의 세계 랭커가 된 서정권 씨의 고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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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터급의 김동영와 박경철 관장.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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