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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성훈의 언플러그드] 99번의 법칙에 걸린 임창용과 오승환
“중신회의는 당자가 처해 있던 처지와 상관없이 다른 이의 아내를 함부로 취하는 것은 관원으로서의 적절치 못한 행위였다 판단을 하였습니다. 허나, 과거 한 때 과오를 범했던 것이 한 사람의 전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과오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있다면 그 과오가 그 후의 삶을 결정짓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는 것이 중신회의의 최종적인 판단입니다.”

대하드라마 <대왕세종> 57회에 나오는 대사 중 일부분이다. 조정으로 복귀하려는 황희를 두고 일종의 청문회를 열고 있는 장면인데, 중신들이 그의 부적절한 전력을 문제 삼았지만 결국 황희는 다시 관복을 입게 된다. 비록 드라마적 요소가 많이 들어있지만, 역사적으로도 황희는 당시 박포의 아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켰으며, 이로 인한 논란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은 황희를 오래 자기 곁에 두었다. 국가 발전에 필요한 인재라면 누구라도 과오와 관계없이 중용하는 인사정책을 폈다. 사형에 처할 만큼의 뇌물을 받은 조말생을 2년간 유배생활을 하게 한 뒤 다시 조정에 불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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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희 정승.


결과적으로 세종의 그 같은 인사는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의 당사자들이 그 후 국가 발전에 일정 부분 이바지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지만, 당시 조선을 개국한 지 30여 년밖에 되지 않아 여전히 인재가 부족했던 상황을 감안한다면, 세종의 처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황희와 조말생 등이 지금의 잣대로 인사청문회를 한다면 아마도 중도 하차했을 것이다. 최근 열린 일부 장관들의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들은 황희와 조말생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미미한 과오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또 국민의당이 영입한 ‘인재’ 3명은 과거 전력 때문에 발표 3시간만에 입당이 취소되었는가 하면, 더불어 민주당의 한 영입 여성 교수는 표절 등의 논란 때문에 자진해서 입당을 취소하는 해프닝이 일어났다. 도덕성의 잣대가 그 높아졌기 때문이다.

정치권에만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게 아니다. 인기 연예인들도 국민 정서에 조금이라도 반하는 언행을 했다가는 그 날로 ‘매장’된다. 아무리 선행을 많이 했어도, 한 가지 잘못을 저지르면 ‘퇴출’된다. 스포츠스타도 마찬가지. 제 아무리 각종 국제대회에서 국위를 선양했어도 말 한마디 또는 부적절한 행위를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한 역도 선수가 후배 선수를 폭행했다는 이유로 10년간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것이 그 좋은 예이다.

물론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이나 운동 선수들이 일정 기간 자숙의 시간을 가진 후에는 죄질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으나 슬그머니 복귀하는 경우도 있다. 여론도 시간이 지나면 이들을 용서해주는 아량을 베풀기도 한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연예인들이 음주운전과 도박 등으로 하차한 후 6개월에서 1년이 지나 여론의 눈치를 살핀 후 복귀했다. 프로 농구 선수들도 불법 스포츠도박 스캔들에 휘말려 올 시즌 초 출전을 하지 못하다가 은근슬쩍 복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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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환(우)과 임창용(좌).


KBO가 해외도박 파문을 일으킨 임창용과 오승환에게 전체 경기의 50% 출장 정지 처분을 내렸다. 사실상 선수생활 연장의 길을 터준 셈이다. 구단들이 마음만 먹으면 이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여론은 여전히 싸늘하다. 솜방망이 징계라는 소리가 높다. 이 때문인지 각 구단들은 속내와는 달리 겉으로는 이들을 쓰지 않겠다고 밝히고 있다.

중요한 것이 하나 있다. 임창용과 오승환이 국내에 남든, 해외로 가든, 이들에게 명예 회복의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이들이 누군가.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이다. 그 동안 이들은 적지 않은 국제대회에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를 위해 뛰었다. 남의 생명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음주운전과 같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다. 상습적인 도박도 아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저지른 범죄가 가볍다는 것이 아니다. 국가대표였다고 해서 면죄부를 받아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세종이 치세했던 조선시대로 돌아가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처럼, 이들의 과오가 앞으로의 삶을 결정짓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본인들도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지 않은가.

99번 잘 하다가도 한 번 잘 못하면 엄청난 욕을 얻어먹는다. 99번 잘 한 것들은 잘 기억하지 않기 때문이다. 야구팬들은 임창용과 오승환이 해외에서 세이브를 올릴 때마다 환호했다. 그들은 팬들에게 많은 기쁨을 주었다. 그런 기억들을 되살려 보자. seanluba@hanmail.net

*필자는 미주 한국일보와 <스포츠투데이>에서 기자, 체육부장 및 연예부장을 역임했고, 현재 스포테인먼트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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