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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 (12) 인도네시아의 축구 도박꾼 - 가라 가라 볼라
<헤럴드스포츠>가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를 연재합니다. 앞서 연재된 시즌1이 기존에 출판된 단행본 '킥 더 무비'를 재구성한 것이라면 시즌2는 새로운 작품을 대상으로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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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 아시아의 높은 축구 열기에 대해서는 앞서 소개한 인도네시아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알아본 바 있습니다. 그러나 열기가 높은 만큼 부작용도 큰 것이 동남 아시아 축구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본 것처럼 유럽이나 남미 뺨치는 훌리건들의 폭력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부작용으로 축구 도박을 빼 놓을 수 없지요.

축구 도박하면 빼놓을 수 없는 나라가 이웃한 중국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파우>라는 홍콩 영화에서 살펴보았습니다. 범죄 조직이 개입된 축구 도박으로 인해 선수들은 온갖 협박과 회유를 당합니다. 일부러 경기를 져 주는 조건으로 거액의 돈을 받기도 하고,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다리를 잘라 버리겠다고 협박하는 장면이 <파우>에 나왔죠. 그리고 이는 실제로도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이처럼 중국과 동남 아시아는 지나친 축구 도박의 열기로 인해 오히려 자국 축구의 발전에 악영향이 발생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번엔 <파우>로 중국 축구 도박 실태를 살펴 보았으니, 이번에는 동남아 축구 도박을 다룬 영화를 다뤄보죠. 인도네시아 영화, <가라 가라 볼라(Gara Gara Bola)>입니다. 무슨 주문 같죠? 인도네시아 어로 “축구 때문에”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월드컵과 축구 도박

2006년 6월, 인도네시아의 어느 대도시는 독일 월드컵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습니다. 인도네시아가 출전하는 것도 아닌데, 남녀노소 모두가 축구 강국들의 화려한 경기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월드컵이란 꼭 자국 팀을 응원하는 국가주의만은 아닙니다.

헤루(Heru)와 아마드(Ahmad)도 축구에 열광하는 젊은이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조금 다른 이유로 독일 월드컵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바로 축구 도박 때문입니다. 비록 나라에 의해 단속되고 있지만, 월드컵 경기에 수많은 돈이 걸린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돈이 없는 사람들은 심지어 자기 오토바이나 핸드폰을 맡기고 도박에 참여하기도 하죠.

헤루와 아마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역시 2006 독일 월드컵의 매 경기마다 암암리에 이루어지는 도박에 돈을 걸고 있죠. 도박이 이루어지는 방식도 다양합니다. 만일 실력 차이가 현저한 두 팀이 만났다고 쳐 봅시다. 음, 그러니까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월드컵에서 브라질과 인도네시아가 만났다고 가정해 보죠. 인도네시아의 승리에 돈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핸디캡(handicap)”이란 걸 적용하게 됩니다. 브라질에 7점의 핸디캡을 적용해서 브라질이 7점차 이상으로 승리해야 브라질의 승리로 계산하는 방식입니다. 실제로 중국이나 동남아에선 이런 식의 핸디캡 도박이 성행하기 때문에 승부조작과 도박 여부를 수사하기가 더 어렵다고 합니다. 반면 이탈리아와 브라질의 경기처럼 실력이 대등한 팀의 경기는 핸디캡 없이 이루어지고, 이 때의 축구 도박은 “even spread”라고 불립니다.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아마드는 축구 도박을 즐기는 동시에 브로커 역할도 맡고 있습니다. 신용카드가 없어 인터넷으로 도박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하 세계의 도박주에게 대신 돈을 걸어주고 수수료를 타 먹습니다. 반면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친구 헤루는 재미로 축구 도박을 즐기죠.

그런데 독일 월드컵 결승전을 하루 앞둔 어느 날, 축구 도박에 빠져 있던 헤루와 아마드에게 고난이 찾아옵니다. 도박으로 돈을 날린 아마드가 폭력배들에게 쫓기기 시작하고, 아마드가 헤루의 월세를 훔치는 바람에 헤루는 자취방에서 쫓겨나게 되죠.

월드컵 결승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돈을 갚으라는 협박을 받는 아마드. 부유한 집안의 헤루에게 빌리려 하지만, 엄격한 헤루의 부모님에게 축구 도박으로 돈을 날렸다는 사실을 실토할 수 없다며 헤루는 거절합니다.

결국 헤루와 아마드는 헤루 아버지의 숨겨둔 애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시선을 돌립니다. 그 레스토랑 금고를 턴 다음, 그 돈을 독일 월드컵 결승전에 걸어서 돈을 불릴 계획을 세우죠. 결승전은 프랑스 대 이탈리아. 헤루와 아마드는 분명 프랑스가 승리할 테니, 금고만 털면 그 종자돈으로 충분히 폭력배들에게 갚을 돈을 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이 두 친구의 계획은 성공할까요?

근절되지 않는 동남아 축구 도박

사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휴대폰으로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를 알리는 스팸 메시지는 이제 누구라도 한 번은 받아봤을 지경입니다. 게다가 요즘엔 대범하게 문자 메시지가 아닌 직접 통화를 통해 불법 도박에 참여할 사람을 모집한다고 하네요.

이미 불법 축구 도박에 의한 승부 조작을 경험해 본 우리 나라로서는 인도네시아 축구 도박의 심각성을 그린 이 영화가 마냥 강 건너 불구경은 아닌 듯 합니다.

실제로 태국에서는 2002 월드컵 당시 수도 방콕에서만 약 40만 명이 2억 700만 달러를 월드컵 도박에 쏟아 부은 것으로 집계 되어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유로 2004 때는 600 명의 도박꾼과 31 명의 마권업자가 체포되기도 했죠.

태국뿐만이 아닙니다. 베트남 축구 대표팀은 2005년 동남아시아 경기 때, 도박업자들의 회유에 넘어가 미얀마와의 시합 때 일부러 1:0으로 진 사실이 발각되었습니다. 대대적인 단속이 시작되었지만 오히려 지하 시장만 더 커지자, 베트남 정부는 합법적인 축구 도박을 인정하기에 이르죠.

말레이시아의 경우 유로 2000 때 우리 돈으로 약 5천억원에 가까운 축구 도박이 적발되어 192 명이 체포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오죽하면 승부조작으로 감옥에 간 선수와 감독만 뽑아서 교도소 대표팀을 만들어도 말레이시아 최강팀이 탄생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있다고 하네요.

60~70년대에 우리 축구를 위협하던 동남 아시아 축구가 쇠락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축구 도박이 그 중 큰 원인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프로 스포츠의 세계에서 승리하여 좋은 성적을 내는 선수보다, 일부러 져 주는 선수가 도박 조직으로부터 더 큰 사례금을 받으니 기량의 발전이 이뤄지긴 어렵겠죠.

최근 들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 국내 불법 도박 사이트를 보며, 그리고 인도네시아 축구 도박의 심각성을 그린 이 영화, <가라 가라 볼라>를 보며 새삼 경각심을 느끼게 되는군요.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헤럴드스포츠>에서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1(2014년 08월 ~ 2015년 08월)을 연재했고 이어서 시즌2를 연재 중이다. 시즌1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를 재구성했고, 시즌2는 책에 수록되지 않은 새로운 작품들을 담았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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