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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현철의 링딩동] ‘최용수 2세’ 김태일 일본 정복 도전
번영체육관 소속에서 일본의 아쓰미짐으로 정식 이적한 김태일이 11월 22일(일요일) 오사카에서 송크람차이 에키나콘(태국)을 상대로 일본 프로복싱 무대의 데뷔전을 치른다. 정작 본인은 담담하게 결전을 기다리고 있지만 양국 관계자들이 온통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는 그가 가진 엄청난 잠재력, 일반 팬들에게 알려진 것 이상의 기량 때문이다. 김태일은 현재 복귀를 준비하고 있는 전 세계챔피언 최용수의 첫 제자로도 유명하다. 태극기와 일장기를 함께 트렁크에 새기고 출장할 김태일이 일본에서 활동할 링네임은 ‘테이루 아쓰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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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일의 일본 데뷔전 포스터. 아직 어떤 타이틀도 가지지 않았던 선수의 등재가 파격적이다. 김태일에 대한 일본 현지의 기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운명적인 만남 - 인우진과 최용수

인우진 관장은 2009년 12월 경기도 구리시에 번영체육관을 개관했다. 지금도 하고 있는 오토바이 사업 관계로 저녁 6시가 되어야 체육관 문을 열 수 있었으니 자연히 관원은 많지 않았다. 당시 남양주공고 1학년이던 김태일은 동네에 체육관이 생기자 호기심이 생겼다. 한 번도 운동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복싱을 해보고 싶어 부친께 말씀드렸더니 한 달만 하는 조건으로 허락해주셨고 복싱의 재미에 빠져들 때쯤 한 달은 금세 지나가고 말았다. 더 가고 싶었지만 회비가 없어서 등록도 못하고 며칠이 지나자 인 관장에게 전화가 왔다. 솔직하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오토바이라도 닦으면 되니 그냥 나오라고 권유하는 관장의 목소리에서 푸근함이 느껴졌다. 이 때까지만 해도 인 관장은 예쁘장한 김태일이 프로선수까지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재미로 시작한 복싱은 김태일의 중요한 일과가 되었고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기량이 늘어갔다. 그렇게 1년이 지나 처음 출전한 생활체육대회에서 두 번 모두 이겼고 2년이 지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정식 아마추어 대회인 경기도 신인선수권 일반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전국 신인선수권에서도 우승한 김태일은 2012년 5월 경기도민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하게 된다. 목사님의 외동아들로 가뜩이나 내성적인 성격에 자주 이사를 다니다 보니 정들 때쯤 헤어져야 할 경우가 많아 속 깊은 친구를 사귀지 못하던 김태일에게 인 관장은 더없이 좋은 친구이자 스승이었다. 취미로 시작한 복싱에서 잠재력을 발견하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조련한 인 관장은 2012년 연말의 신인왕전을 목표로 입대도 미루고 맹훈련을 한다. 그해 가을 부친이 군포 쪽의 교회로 전근을 가면서 인 관장과 함께 동고동락하게 된 태일이 복싱에 청춘을 걸고 매진하자 처음엔 반대하시던 부모님도 그의 진심어린 열정에 결국 승복하고 말았다.

권투계가 어려워지면서 2012년 신인왕전은 열리지 않았고 목표를 상실한 김태일은 허탈했다. 인 관장은 본인의 지도 외에 선수에게 도움이 되는 다른 트레이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인 전 세계챔피언 최용수에게 위탁 지도를 부탁한다. 김태일의 열정을 높이 산 최용수는 흔쾌히 허락했고 1주일에 두 번씩 챔피언의 무료 교습이 시작되었다. 구리와 시흥을 오가는 장거리 과외를 거치면서 업그레이드된 김태일은 2013년 5월 8일 김현식에게 안정적인 판정승을 거두고 프로에 데뷔한다. 지도자로 변신한 최용수복싱짐의 첫 번째 프로선수가 그렇게 탄생했고 데뷔 6전까지 인 관장과 최관장의 호흡 아래 김태일은 6연승을 이어가며 계속 성장했다. 최용수 관장의 든든함과 인우진 관장의 자상함은 큰 힘이었다.

작년 여름 두 개의 체육관을 운영하던 최용수가 조심스럽게 복귀를 결심하면서 더 이상은 김태일을 지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도저히 짬이 나지 않았던 것이다. 최용수의 이탈 때문이었을까? 공교롭게도 7전 째 노사명(청무관)에게 첫 패배를 당했다. 근소 차의 1-2 스플릿 디시전이었다. 그러나 오히려 김태일은 홀가분해졌다. 그동안 연승 중이어서 상당한 부담이 있었는데 지고 나니 마음이 편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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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수 2세'로 불리는 김태일은 외모 또한 최용수처럼 매끈하다.


일본의 관심과 스카우트 과정

그즈음 인우진 관장의 지인을 통해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가서 트레이닝을 하다 보니 김태일의 성장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 중량급의 간판으로 활동하던 전 일본 슈퍼웰터급 챔피언(당시 세계랭커) 오히가시 아키라(46세)씨가 관장으로 있는 아쓰미짐에서도 김태일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오히가시 관장은 재일 한국인 3세였고 그가 현역 시절부터 뒷바라지를 하던 아쓰미짐 회장 역시 재일 한국인 사업가였다. 오사카에서 사업에 크게 성공한 아쓰미 데이겐 회장은 첫 전지훈련에서 김태일을 지켜만 본 후 두 번째 전지훈련 때 인 관장에게 조심스럽게 스카우트 이야기를 건넸다. 곱상한 외모에 숨겨진 김태일의 무서운 잠재력을 발견하고 성실함에 끌렸던 것이다. 인사치례려니 하고 귀담아 듣지 않았던 인 관장은 세 번째 훈련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아쓰미 회장과 오히가시 관장의 표정에서 그들의 진심을 느꼈다.

진지한 고민에 빠진 인 관장은 무엇이 태일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했다. 일단 선수에 대한 대우와 일본 측에서 김태일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파악했다. 국내에서도 한국챔피언은 무난하게 시킬 자신이 있었지만 혼란스러운 현재의 국내 복싱계에서는 그를 세계챔피언으로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또한 일본에서 혹시 실패하고 국내로 유턴하더라도 복싱 경력에 마이너스보다는 플러스가 되리라는 확신이 서자 기꺼이 아무런 보상 없이 매니저권까지 넘겨주게 된다. 인 관장에게 김태일은 자신의 분신과도 같았지만 무엇보다도 선수의 발전이 최우선이었다.

아무런 타이틀도 가지지 않았던 신인으로서 계약금까지 받고 일본 무대에 진출한 첫 사례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또한 아쓰미 회장이 경영하는 회사의 사원으로 급여와 숙식이 모두 제공되며 어학연수까지 받는 조건은 그야말로 파격적이다. 계약금 500만 원 전액은 국내에 소속되었던 프로모션에 위약금 조로 모두 지불했기 때문에 인 관장 본인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보람’과 ‘희망’은 그 어떤 것보다 값졌다. 또한 국내에서의 시합은 전혀 제재하지 않기로 했으므로 국내 링에서도 김태일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김태일은 일본 생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우선 스파링 경험을 많이 쌓는 것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다. 일본에 워낙 두터운 선수층이 있다 보니 다양한 스타일을 대상으로 매주 계속 실전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성장함을 느낀다. 아쓰미짐의 간판스타 나카무라 마사오(20승 19KO 3패, 전 OPBF S페더급 챔피언, 현 IBF 세계랭커)와의 합숙훈련은 특히 도움이 됐고, 오전에 경사로 8Km, 오후에 평지를 10Km씩 뛰다 보니 체력적으로도 자신감이 붙었다. 작년에 나카무라와 4라운드 스파링을 치를 때는 벽을 느꼈지만 지금은 다르다. 두꺼운 선수층에서의 경쟁, 같은 체육관의 대선배나 롤모델을 보고 함께 훈련하며 발전하는 현재 일본의 모습에서 1980년대 국내 복싱의 향수가 묻어나는 듯하다.

일본에서 활동한 국내 복서들

일본으로 스카우트 되어 선수생활을 했던 대표적인 선수들은 최용수, 이동춘, 임재신, 박찬영, 김응식 등이 있었다. 전 WBA Jr.라이트급 챔피언 최용수는 1999년 12월 국내에서 마지막 경기를 가진 후 2002년 봄 약 3천만원을 받고 일본으로 스카우트 된다. 그해 2연속 KO승을 거두고 2003년 1월 WBC 동급 챔피언 시리몽콜 싱마나삭(태국)에게 도전했으나 판정패한 뒤 은퇴했다. 전 WBA 밴텀급 챔피언 박찬영은 선수생활의 말년인 1991년 9월 일본 원정에서 렉스 빌라베르데를 1회 KO로 꺾고 바로 스카우트되어 ‘구시마 산에이’라는 링네임으로 두 경기를 가진 후(모두 KO승) 역시 은퇴했다. 전 OPBF Jr.웰터급 챔피언 김응식 역시 말년인 1989년 11월 일본으로 스카우트되어 두 경기 모두 KO승을 거두고 은퇴한 바 있다. 김응식의 링네임은 ‘데라사와 카즈오’였다.

임재신의 경우는 좀 특별하다. 1988년 국내에서 데뷔, 1승 2패로 저조하게 출발했지만 임재신의 자질을 눈여겨본 김규철 당시 원진체육관장이 친분이 있는 일본의 체육관으로 스카우트를 권유하여 일본에서 테스트매치가 벌어졌다. 이 경기에서 구보 히로유키에게 6회 판정승을 거둔 임재신은 도일 두 번째 경기에서 당시 세계랭커였던 에밀 마쓰시마(WBC 플라이급 챔피언 김용강에게 도전, 판정패)를 꺾는 대이변을 연출한다. 프로전적 2승 2패의 선수가 세계랭커를 10R 판정으로 누른 것이다. 김규철 관장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고 임재신은 이후 일본에 순조롭게 안착, ‘하야시 고타로’라는 링네임으로 활동했다.

임재신은 일본에서 11연승(7KO)의 파죽지세 끝에 1993년 5월 WBA Jr.밴텀급 챔피언 오니즈카 가쓰야의 3차 방어전 상대로 세계타이틀에 도전했으나 최악의 편파판정 희생양이 되어 경기에서는 승리하고 판정에서는 지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그는 2년 후 국내로 복귀해서 2승(2KO)을 추가하고 24세의 젊은 나이에 링을 떠났다. 이처럼 기라성 같은 선수들도 세계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했고, 패배 후에는 더 이상 선수생활을 지속하지 못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 해도 타지에서의 생활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동춘은 국내 경량급의 대표적인 유망주로 1985년 3월 WBA Jr.밴텀급, 1986년 IBF Jr.밴텀급 등 세계타이틀에 두 차례 도전했다 실패한 바 있다. 이후 1989년 일본으로 스카우트 되어 ‘그레이트 가나야마’라는 링네임으로 활동하며 1992년에는 일본 밴텀급 챔피언에 등극 주가를 높였다. 7차까지 방어에 성공한 이동춘은 1995년 2월 세가와 세쓰오에게 논란 많은 판정패로 타이틀을 내줬고 그 해 9월 리턴매치에서 판정패한 후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특유의 불꽃같은 파이팅으로 일본에서도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나 타국에서 비극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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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동반자 인우진 관장(왼쪽)과 함께. 금년 1월 신민규와의 경기 후.


일본을 정복하고 세계로..

김태일은 금년 1월 신민규(천안손정오비트)에게 6회 판정승을 거둔 후 10개월의 링 공백이 있었지만 꾸준히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해 몸 상태가 최고조에 달해 있다. 실전과 스파링이 차이가 있다 해도 필자가 확인한 김태일의 스파링 모습은 페더급 동양 최고 클래스 수준이었다. 김태일의 일본 훈련을 담당하고 있는 모리야 카즈미 트레이너는 “기량과 센스는 정말 좋다. 체력 역시 굉장히 좋아졌고 현 상태에서도 일본챔피언은 충분하다. 펀치력만 보완된다면 세계챔피언도 가능하다”고 진단했다.

김태일은 본인을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노래를 좋아하고 오토바이를 타는 정도가 취미의 전부다. 술과 담배는 전혀 손에 대지 않고 성실함과 규칙적인 생활은 재미와 거리가 멀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장래는 더욱 ‘맑음’이다. 전지훈련 당시 아쓰미 회장은 조용히 김태일의 인성을 관찰하고 영입 결정을 내렸다. 우선 일본챔피언을 목표로 하는 김태일은 복싱을 처음 시작할 때의 초심으로 각오를 다지고 있다. “제일 잘 할 수 있어서 권투를 했고, 잘 하니까 재미있고, 재미있는 걸 하니까 끝까지 가보고 싶다. 처음에는 반대하시던 어머니가 사주신 24만 원 짜리 파퀴아오 복싱화를 보면 아무리 힘들어도 마음을 다잡게 된다. 응원하시는 모든 분들께 꼭 보답하고 싶다.”

강자들이 우글대는 일본 무대에서 살아남는다면 부와 명예는 어느 정도 보장된다. 인우진 관장의 희생, 아쓰미짐의 전폭적인 지원, 절대적으로 중요한 본인의 노력, 이 삼박자가 제대로 맞아 들어간다면 침체된 국내 복싱계에 새로운 형태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김태일의 도전. 미소년의 모습이지만 웬만해서는 멘탈이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그의 내면이 기대를 갖게 한다. ‘테이루 아쓰미’가 이제 첫 걸음을 뗐다. [SBS복싱해설위원]

■ 김태일 프로필
- 출생 : 1993.05.21
- 소속 : (국내)번영체육관 / (일본)아쓰미복싱짐
- 신장 : 172Cm
- 매니저 : 인우진
- 스탠스 : 오소독스
- 총전적 : 9전 8승(2KO) 1패

■ 전적
2013.05.08. 김현식 4회판정승 (서울) 프로데뷔
2013.08.18. 주혁탁 4회판정승 (서울)
2013.10.27. 나가이 히카루 4회판정승 (안산)
2014.02.09. 최민석 4회판정승 (춘천)
2014.03.16. 고태영 2회TKO승 (서울)
2014.07.19. 허시게토(중국) 6회판정승 (원주)
2014.08.30. 노사명 8회판정패 (예산)
2014.11.09. 김주현 2회TKO승 (서울)
2015.01.12. 신민규 6회판정승 (홍천)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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