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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 (3) 개과천선한 웨스트햄 훌리건들의 이야기 - 라이프 오브 더 풋 솔져, 카스
<헤럴드스포츠>가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2를 연재합니다. 앞서 연재된 시즌1이 기존에 출판된 단행본 '킥 더 무비'를 재구성한 것이라면 시즌2는 새로운 작품을 대상으로 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킥 더 무비 ? 시즌1>에서 우리는 많은 훌리건 영화들을 만나봤습니다. <훌리건스>, <풋볼 팩토리>, <더 펌>, <아이디> 그리고 <어웨이 데이즈>가 그들이었지요. 이들 영화들은 모두 잔인하고 폭력적인 잉글랜드 훌리건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냈습니다. 하지만 진짜가 아닌 허구의 이야기들이었죠. 게다가 영화 속 훌리건들은 결국 자신들의 잘못되고 의미 없는 삶에 대한 반성 없이, 계속 폭력에 자신을 맡깁니다.

그렇다면 실제 훌리건의 삶을 다룬 영화는 없을까요? 당연히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 <라이즈 오브 더 풋솔져(Rise of the footsoldire)>와 <카스(Cass)>가 그들입니다. 재미있는 건 둘 다 런던 웨스트햄 유나이티드(Westham Utd.) 훌리건을 그린 영화라는 점이죠.

사실 웨스트햄의 훌리건 조직인 ICF(인터시티 펌, InterCity Firm)은 잉글랜드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악명 높은 곳입니다. 시즌 1에서 살펴본 <훌리건스>와 <더 펌>도 웨스트햄의 ICF를 모델로 하고 있죠. 특히나 라이벌인 밀월(Millwall FC)와의 경기는 훌리건스 더비(Hooligans derby)라 불릴 정도로 폭력성이 높습니다.

이처럼 영국 훌리건 문화의 중요한 축을 담당해 온 웨스트햄 ICF의 실제 조직원의 이야기가 영화화되었습니다. <라이즈 오브 더 풋솔져>는 일반 조직원이었던 칼튼 리치(Carlton Leach)의 이야기를, <카스>는 흑인임에도 ICF 리더 자리에까지 올랐던 카스 페넌트(Cass Pennant)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한 번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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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로 살던 훌리건, 친구의 죽음에 정신 차리다: <라이즈 오브 더 풋솔져>


훌리건이 판을 치던 1980년대 초 잉글랜드 런던, 칼튼은 제법 덩치도 좋고 싸움도 잘하는 웨스트햄 ICF의 훌리건입니다. 홈이든 원정이든 상대편 훌리건과 치고 받고, 방망이와 칼 같은 흉기까지 휘두르며 폭력에 취해 살던 칼튼.

그의 직업은 나이트 클럽의 문을 지키는 경호원입니다. 문제 손님이나 동네 깡패들로부터 장사를 보호하는 일이죠. 그는 나이트 클럽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좀 더 많은 어깨(muscle)들을 찾아달라는 사장의 부탁을 받습니다. 칼튼은 훌리건 조직에서 싸움 좀 한다는 사람들을 계속 영입하게 되죠.

1980년대 후반이 되면서 잉글랜드의 클럽 곳곳에서는 엑스타시(Ecstasy)라 불리는 신종 마약이 돌게 됩니다. 칼튼은 마약을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마약 판매상인 토니(Tony)와 협력하여 사업을 확장하게 되죠. 그 과정에서 칼튼은 근육을 키우기 위해 스테로이드 주사와 남성 호르몬 주사를 과용합니다. 그 결과, 스테로이드 제제의 부작용으로 자기 몸을 망가뜨리게 되죠.

칼튼은 마약상의 수하 노릇을 하면서, 같이 축구를 보던 친구들이 마약 조직 간의 전쟁에 휘말려 끔찍히 고문당하고 살해당하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평생 남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살아왔던 칼튼은 친구들의 죽음에 복수심을 불태우지만, 갓 결혼한 아내와 자식들을 생각해 참습니다.

그러나, 1995년 칼튼가 각별한 관계로 지내던 토니가 부하들과 함께 리텐던(Rettendon)의 숲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리텐던 살인 사건, Rettendon triple murders). 이 사건을 겪은 뒤 카스는 변합니다. 폭력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남은 가족들에게 큰 슬픔을 주는지 뒤늦게 깨달은 칼튼은 어둠의 세계를 결국 벗어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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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이 날 따라다닌 게 아니야, 내가 불행을 만든 거지: <카스>


1958년 이민 온 자메이카 출신 산모에게서 버림받은 흑인 아이를 백인 가정이 입양합니다. 인종 차별이 극에 달해 있던 그 시기에, 백인 부모는 사랑으로 아이를 키우죠. 아이의 이름은 캐롤 페넌트(Carol Pennant). 하지만 그 이름은 여자 아이 이름이었습니다. 흑인인데다 여자 이름까지 가진 캐롤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합니다.

결국 캐롤은 유명한 복서의 이름을 따 스스로를 카스(Cass)라고 부르기 시작하죠. 인종 차별에 시달리던 카스, 하지만 카스는 웨스트햄 훌리건 조직 안에서만큼은 동료로 인정받습니다. 인종보다도 좋아하는 팀이 우선이라는 리더 스티비(Stevie Hogan)는 그의 롤모델이죠.

세월이 흘러 1980년대 초 카스는 웨스트햄 ICF 내에서 지도자격 위치에 올라갑니다. 당시 훌리거니즘이 극성을 부리자 영국의 언론들은 앞다투어 유명한 훌리건 조직을 취재하죠. 하지만 ICF는 첼시 훌리건들에 비해 찬밥 신세입니다. 악명을 좀 더 높여야겠다고 생각한 카스는 뉴캐슬 훌리건들을 습격합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4년의 징역형을 선고 받습니다. 훌리건이 장기 복역하게 된 건 당시로서는 최초였죠.

출소한 카스는 자신을 키워준 부모님을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엘레인(Elaine)이라는 백인 여성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가집니다. 그리고 나이트 클럽의 경호원을 하면서 안정된 삶을 꿈꾸죠.

그러나 과거 카스가 ICF를 이끌던 시절의 원한을 품고 있던 다른 팀 훌리건들이 카스를 공격합니다. 총격을 받고 쓰러진 카스. 그러나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집니다. 하지만 이 소식에 충격을 받은 카스의 어머니는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복수심에 불탄 카스는 훌리건 조직을 동원해, 자신에게 총격을 가한 훌리건을 기어이 찾아냅니다. 그에게 복수의 총구를 들이댄 순간, 카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어렸을 때부터 카스는 자신이 흑인이라서, 불행이 자신을 쫓아왔다고 믿었죠. 하지만 남에게 총구를 들이댄 자신을 보면서, 결국 불행도 자신이 만든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총구를 내려놓은 카스는 훌리건 생활을 그만둡니다. “이제야 어른이 되었다.”고 말하면서요.

폭력에 노출된 청소년들을 구하라!

영화를 보며, 문명 사회에서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이 내내 놀라웠습니다. 공권력은 온데간데 없고, 단지 다른 색 유니폼을 입었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총구를 겨누는 훌리건들. 특히나 <라이즈 오브 더 풋솔져>에 나오는 범죄자들의 행동은 너무나 극악한 나머지 “과연 세상에 신이 있는가?”라는 물음마저 던지게 합니다.

<라이즈 오브 더 풋솔져>는 1995년 영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리텐던 살인 사건”을 모델로 제작되었습니다. <카스> 역시 헤이젤 참사로 대표되듯, 훌리거니즘이 극에 달했던 1980년대를 살았던 훌리건의 이야기고요.

두 영화의 주인공인 칼튼과 카스는 현재 범죄에서 손을 씻고 새 삶을 살고 있습니다. 칼튼은 영화의 원작이 된 [Muscle]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카스 역시 자신의 삶과 훌리건 세계를 그린 8 권의 책을 썼죠. 둘 다 청소년들이 더 이상 훌리건 조직에 물들지 않도록 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과거 죄과는 결코 용납될 수 없고, 그들의 삶이 영웅시되는 일도 없어야 하겠습니다. 다만, 아직도 인종주의와 폭력에 심취하여 인생을 낭비하는 훌리건들이 많은데, 늦게나마 잘못을 깨닫고 폭력을 그만 둔 그들의 용기는 칭찬받아야 할 것입니다.

영화 속의 조직, ICF는 실제로도 존재하는 조직입니다. 그들이 인터시티 펌(InterCity Firm)이라 불리는 이유가 재미있습니다. 1980년대, 영국 정부는 원정을 가는 훌리건들을 격리하기 위해 아예 특별 열차까지 편성을 했습니다. 축구 특급(Football Specials)라 불리는 열차였죠. 당연히 훌리건 격리를 위한 예비 열차였기에 낡고 지저분했다고 하네요.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는 이런 축구 특급을 이용하지 않고, 좀 더 상위 등급의 열차인 인터시티를 타고 이동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들을 인터시티 펌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합니다. 비슷한 이름이 리즈 유나이티드의 서비스 크루(Service Crew)입니다. 이들 역시 그 지역의 철도 서비스 이름을 따 왔다고 합니다. ICF와 서비스 크루의 엠블럼에 영국 국철 마크가 새겨진 것도 그 이유입니다.

인터시티 펌이 악명을 떨친 데에는, 한 장의 카드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한바탕 패싸움이 끝난 뒤에, 그들은 쓰러진 피해자들에게 명함을 한 장 꽂아놨다고 하네요. 거기에는 “축하한다. 너희는 방금 ICF를 만났다(Congratulations, you've just met the ICF).”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ICF를 그린 영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훌리건즈(Green Street Hooligans)>입니다. 그 영화에는 ICF라는 이름 대신 GSE(Green Street Elite)라는 가상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부르는 응원가나 복장은 그대로입니다. 실제 웨스트햄 경기장인 업튼 파크(Upton Park)에서 울려퍼진다는 비누방울 노래(Bubble song)도 <훌리건즈>와 <카스> 모두에서 불려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지난 영화에서도 계속 살펴봤듯이, 훌리건들은 진정한 축구팬이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축구 그 자체보다 폭력에 대한 탐미와 중독에 빠진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실제 원정을 가서도 경기 자체는 보지 않고, 상대팀 훌리건만 찾아 헤메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할 정도니까요. 웨스트햄을 비롯한 많은 축구팬들이 훌리거니즘을 철저히 여과하는 노력이 있어야 축구장은 본연의 순수함을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개과천선한 칼튼과 카스가 바라는 점도 그런 것 아닐까요?

#글쓴이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며 현재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헤럴드스포츠>에서 이준석의 킥 더 무비 시즌1(2014년 08월 ~ 2015년 08월)을 연재했고 이어서 시즌2를 연재 중이다. 시즌1은 저자가 2013년 3월 펴낸 《킥 더 무비-축구가 영화를 만났을 때》(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를 재구성했고, 시즌2는 책에 수록되지 않은 새로운 작품들을 담았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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