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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와 성(性)] 축구 리그의 승강제, 그리고 헤르페스 교차 감염
축구에는 다른 스포츠에 없는 독특한 리그 운영 방식이 있다. 바로 ‘승강제(Up-Down system)’이다. 승강제는 쉽게 말하면 1부 리그, 2부 리그처럼 축구팀들을 실력에 따라 차등을 둔 리그로 묶은 다음, 시즌이 끝난 뒤에 성적에 따라 몇몇 팀들의 자리를 바꾸는 제도를 말한다. 가령 1부 리그의 꼴지 두 팀과, 2부 리그 상위 두 팀의 자리를 맞바꾸는 식이다.

유럽에서 기원한 축구는 미국에서 탄생한 야구와 달리 포스트 시즌이 없는 경우가 많다. 플레이오프나 챔피언결정전 같은 마지막 토너먼트를 펼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분데스리가의 바이에른 뮌헨이나 우리 K리그의 전북 현대처럼 어느 한 팀이 독주를 펼칠 경우에는, 이미 우승팀이 정해져서 리그의 재미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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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는 2013년 승강제를 도입해 팬들에게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선사한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해 주는 것이 바로 승강제이다. 1부 리그의 중하위권 팀들은 이미 우승은 물 건너갔다고 대충 뛸 수도 있지만 결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꼴찌로 떨어지는 순간, 내년부터는 수준이 낮고 수익도 떨어지는 2부 리그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2부 리그의 상위권 팀들은 1부 리그로 승격하여 대박을 터뜨리는 꿈을 꾸며 마지막까지 치열한 승부를 펼치게 된다.

사실 우리나라 K리그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승강제를 실시하지 않았다. 반면 우리보다 10년 늦게 프로 축구 J리그를 출범시킨 일본은 일찌감치 승강제를 실시하며 국내 축구팬들의 부러움을 샀다. 일본 프로축구의 1부 리그와 2부 리그는 각각 J1과 J2로 나뉜다.

그런데 승강제에 따라 J1과 J2 리그의 일부 팀들이 서로 자리를 바꾸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성병의 세계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헤르페스 바이러스 1형과 2형이 그 주인공이다. 의사들은 각각을 약자로 HSV-1, HSV-2라고 부른다. 명칭부터가 마치 어느 낯선 나라의 1부 및 2부 축구 리그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헤르페스는 스포츠가 아닌 엄연한 질병이다. HSV-1은 주로 입술 주변에, 그리고 HSV-2는 성기 주변에 물집과 통증을 일으키는 바이러스이다.

헤르페스는 사실 굉장히 흔한 질병이다. 미국 질병 관리국 CDC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해마다 77만 명의 사람이 새로 헤르페스에 감염되며, 성인의 15.5%가 HSV-2에 감염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입술에 주로 생기는 HSV-1까지 포함하면 그 비율은 매우 높아진다. 전세계적으로 헤르페스의 감염률은 거의 90%에 육박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보통 HSV-1은 피곤할 때 입술 주변에 증상을 일으키며, HSV-2는 배꼽 아래의 성기와 항문 주변에 감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성기에 HSV-1이 감염되는 일명 ‘교차 감염’이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1999년 워싱턴 대학의 래퍼티 교수 연구팀에 의하면 전체 성기 헤르페스 감염의 17.1%가 HSV-1에 의한 것으로 보고됐다. 호주에서의 연구 결과는 더욱 극적이다. 2006년 해도우(Haddow) 교수 연구팀에 의하면 호주에서 HSV-1의 성기 교차 감염 비율은 1980년에는 3%에 불과했으나 2001년에는 무려 41%까지 상승하였다.

실력에 의해 1부 리그와 2부 리그의 팀들이 이동하는 축구 승강제와 달리, HSV-1과 HSV-2의 교차 감염은 바이러스의 독성이나 강함과는 거리가 있다. 오히려 연구자들은 이러한 교차 감염의 원인을 변화하는 성문화로 설명하는 경향이 강하다. 헤르페스는 침이나 물집의 진물이 점막에 노출되면서 감염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입술에 주로 분포하던 HSV-1이 성기에 많이 감염되는 이유는 성문화가 개방되면서 구강성교의 비율이 높아져서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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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SV-1에 의한 성기 감염은 사실 HSV-2에 비해 재발율이나 질병의 경과가 상대적으로 경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과거 입술에만 생기던 가벼운 질병으로 생각하던 1형 헤르페스가 성기에도 감염될 수 있다는 사실은 새삼 경각심을 일깨워준다. 가장 중요한 점은, 성기에 평소와는 다른 여러 개의 물집이 발생했을 경우 헤르페스의 감염을 의심하고 비뇨기과를 찾아 의료진과 상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2형이든, 혹은 1형이든 말이다. 이준석(비뇨기과 전문의)

*'글쓰는 의사'로 알려진 이준석은 축구 칼럼니스트이자, 비뇨기과 전문의이다. 다수의 스포츠 관련 단행본을 저술했는데 이중 《킥 더 무비》는 '네이버 오늘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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